♡9월 6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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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나시아노(Donatian)
성 만수에투스(Mansuetus),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푸스쿨루스(Fusculus)
성 프레시디우스(Praesidius)
성 레투스(Laetus)
축일 9월 6일
484년 반달의 아리우스파(Arianism) 국왕
후네릭은 아프리카의 모든 가톨릭 성당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는 명을 내리고,
그들 대신에 아리우스파 성직자들을 배치하였다.
이때 수많은 주교와 성직자들이 쫓겨났는데,
성문 밖에서 후네릭이 그들의 일부와 우연히
마주쳤다. 이때 주교들은 그에게 격렬히
항의하고 불의에 대하여 고발하였다고 한다.
이때 성 도나티아누스
(Donatianus, 또는 도나시아노)와 다른
네 명의 주교, 즉 성 만수에투스(Mansuetus),
게르마누스(Germanus), 푸스쿨루스(Fusculus)
그리고 프레시디우스(Praesidius)가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매를 맞고 사막으로
유배당하였다가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모두 죽었다. 소 랩티스의 주교이던
성 레투스(Laetus)는 열심하고 배움이 많은
사람으로 그 역시 후네릭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그래서 그는 더러운 지하
감방에서 지내다가 결국은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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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베라토(Liberatus)
축일 9월 6일
1868년 비오 9세(Pius IX)가
성 리베라투스(또는 리베라토)의 공경을
허락하였으나 전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브룬포르테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였지만, 은수자로서 관상생활만
하였다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46장과 47장에 성모님의 환시를 본
무명의 수도자는 리베라투스가
틀림없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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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카리오(Macarius)
성 파우스투스(Faustus)
축일 9월 6일
성 파우스투스(Faustus) 신부와
성 마카리우스(또는 마카리오)를 포함해서
모두 12명의 신자들이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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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가(Bega)
축일 9월 6일
믿을만한 전설에 의하면 성녀 베가는
아일랜드 왕의 딸로서 노르웨이 국왕
아들과 결혼하려고 약속한 날에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기적적으로
컴벌랜드(Cumberland) 연안의 어느 마을로
들어가서, 한동안은 은수자로 생활하다가
성 아이다누스(Aidanus)로부터 수도복을
받았으며 세인트 비즈(Saint Bees)에
수도원을 세웠다. 원장으로서 그녀는
가난하고 억압받던 사람들을 구제하여
많은 추종자들이 모였고, 생전에 큰 공경을
받았다고 한다. 베아(Bee)로도 불린다.
축일은 9월 6일 또는 10월 31일에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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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니오(Petronius)
축일 9월 6일
성 베드로니우스(또는 베드로니오)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로서,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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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트란드(Bertrand)
축일 9월 6일
베르트란드는 님(Nimes) 교구의
가리규 태생으로 알비파(Albigenses) 이단과
내란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서 성장하였다.
그 역시 처음에는 정통교리를 배웠지만
이단의 유혹은 주변에 늘 있었기 때문에
그 위험성도 잘 알고 있었다. 1208년 그는
처음으로 성 도미니코(Dominicus)를 만났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1215년 베르트란드는
도미니코 주위에 모인 6명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16명으로 불어나면서
큰 수도회가 될 조짐을 보였다.
그는 사부 도미니코의 명에 따라
파리 수도원을 세웠고, 볼로냐 수도원 등
수많은 수도원을 세우는데 공을 세웠다.
1221년 볼로냐(Bologna)에서 개최된
제 2차 총회는 수도회를 8개 관구로 나누었고,
이때 베르트란드는 프로방스 관구를 맡았다.
이때 그는 유명한 마르세유(Marseilles)
대수도원을 세웠다.
그의 제자인 베르나르두스 구이도니스 형제는
그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
“그분의 관조, 단식 그리고 다른 모든
보속행위로써 성 베르트란드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신 성부를 본받는데 성공하였으며,
참으로 스승에 비길만한 제자가 되었고,
성 도미니코를 그대로 닮은 위대한 수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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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아타(Beata)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성 상티아누스(Sanctianus, 또는 상티아노)
축일 9월 6일
베아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녀는 두 명인데,
3월 8일이 축일인 성녀 베아타는 아프리카 출신의
순교자이다. 초기 교회의 기록에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로가투스(Rogatus) 등의
순교자 명단과 함께 이 성녀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의 순교에 관한 기록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는 있다.
9월 6일이 축일인 또 다른 순교자 성녀 베아타는
본래 에스파냐 출신이지만, 박해를 피해 현재의
프랑스 지역으로 피난하였으나, 결국 박해 중에
붙잡혀 273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성 상티아누스(Sanctianus)와 함께 상스에서 순교하였다.
훗날 성녀의 무덤 위에 성당이 세워졌으며,
성녀 베아타를 포함한 세 명의 순교자에 대한
상스에서의 공경 예식은 중세와 근세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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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제니오(Eugene)
성 코티두스(Cottidus)
축일 9월 6일
성 코티두스(Cottidus) 부제와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를
비롯해서 여러 명의 동료 신자들이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순교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순교행전이
분실되어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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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
축일 9월 6일
‘거룩한 사제이신 엘레우테리우스’란 호칭이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대화” 속에
여러 번 나온다. 성 엘레우테리우스
(또는 엘레우테리오)는 이탈리아 스폴레토 교외
성 마르코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한번은 어느 수녀원에 유숙하였을 때 밤새도록
악령에 시달리는 어떤 소년을 돌보아 주도록
요청받았다. 성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으나,
그 소년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그는 “악마가 수녀님들과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명을 부르면
악마는 얼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런 다음 그 소년이 완전해질 때까지
밤새워 기도하였다.
또 한 번은 어느 해 성 토요일에
성 그레고리우스께서 병이 들어 매우
위험하였는데, 그는 엘레우테리우스에게
기도해 주기를 청하자 곧 병이 나았다고도 한다.
성인은 성 그레고리우스의 로마(Rome)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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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네시포로(Onesiphorus)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축일 9월 6일
성 오네시포루스(또는 오네시포로)는
사도 바오로(Paulus)의 디모테오 2서에서
언급되었다. “주님께서 오네시포로의 집안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감옥에 갇힌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로마에 와서는 나를
찾느라고 굉장히 애쓴 끝에 나를 만났습니다.
내가 에페소에 있을 때에 그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였는지 그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1,16-18). 또 4장 19절에서는
“브리스카와 아퀼라에게 문안하고
오네시포로의 가족들에게 문한해 주시오”라고
언급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성 오네시포루스는
사도 바오로를 따라 에스파냐까지 갔다가
동방의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 부근
어느 곳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순교하였다.
그는 야생말 사이에 묶여 사지가 찢어지는
잔인한 방법으로 순교하였다.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는
성 오네시포루스 집안의 하인으로서
주인의 사명과 순교까지도 함께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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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즈가리야(Zachary)
축일 9월 6일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에 하나인
즈가리야서는 자카리아
(Zacharias, 또는 즈가리야)라는 한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긴
이야기를 하면서, ‘은전 서른 닢’과
관련된 예레미야(Jeremias) 예언자의 말이
실현되었다고 밝혔다(마태 27,9-10). 그런데
이 표현은 즈가리야서 11장 12-13절에 나온다.
이로써 즈가리야서 전반부와 11장을
중심으로 한 후반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즉 이사야(Isaias) 예언서와
마찬가지로 즈가리야 예언서 역시 한 사람의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없다.
예언자 자카리아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즈가리야서 제1부(1-8장)에 의하면 예언자
자카리아는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기야의 아들”(1,1. 7)로
전해진다. 그는 예언자 하깨(Haggai)와
동시대 인물로서, 기원전 520년 8월 또는
9월부터(1,1) 518년 11월까지(7,1) 활동했다.
하깨가 종교적인 이상(理想)을 불러일으키는데
헌신했다면(하깨 1,14), 자카리아는
성실성에 대한 호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이 이상을
실현시키는데 최선을 다한 예언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전의 역할을 그처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단식문제에 대한
답변 장면(7,1-3; 8,18-19), ‘거룩한 땅’과
성성(聖性)에 대한 깊은 관심(2,16; 5,1-4. 5-11)
등으로 미루어 자카리아의 신분이 사제였음이
거의 확실하며(느헤 12,16 참조), 또한
옛 예언자들의 정신적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1,3-6; 7,4-14; 8,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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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로(Faro)
성 카뇨알도(Cagnoald)
축일 9월 6일
성 파로(Faro)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귀족의 아들로 몇 년 동안
국왕 다고베르트(Dagobert)의 무관으로 근무하였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 그의 누이인
성녀 부르군도파라(Burgundofara)의 권유로
사제품을 받았고, 637년에는 모(Meaux) 지방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은 길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성 베다(Beda)에 의하면 그는 특히
캔터베리(Canterbury)의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를 후원한 것으로 나타난다.
성 파로의 남동생은 랑(Laon)의 주교
성 카뇨알두스(Cagnoaldus, 또는 카뇨알도)이고,
여동생은 성녀 부르군도파라(4월 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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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페레그리노(Peregrine)
축일 9월 6일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또는 페레그리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성 프란치스코가
1220년에 이탈리아의 볼로냐(Bologna)에서
설교하던 해에는 그곳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때 그의 친구 리체리오(Rizzerio)는
성인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고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려고 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받아들였으나 페레그리누스의 지식이
풍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수사로 살게 하였다.
그는 사부님의 말씀대로 일생을 평수사로 살았다.
그는 인내와 겸손의 모범이었다고 한다.
오늘의 성인(9월6일)
2014. 9. 6. 오후 6: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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