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오늘의 성인♡
===============
성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 8월 25일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프랑크인으로서 크레디톤의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의 주목을 받게 되어
그의 제자 겸 보조자가 되었다. 그는
위트레흐트의 수도원을 책임 맡았는데,
이곳은 영국에 갈 선교사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754년에 스승인 성 보니파티우스가 순교하자,
그 자신이 20년 동안이나 프리슬란트(Friesland)
선교단을 이끌었다. 그가 주교였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
성녀 루칠라(Lucilla)
성 네메시오(Nemesius)
축일 8월 25일
성녀 루칠라(Lucilla)의 아버지인
성 네메시우스(또는 네메시오)는 로마 군대의
호민관이었다. 그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성녀 루칠라를 치유해 준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에 의해
딸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 후 로마의 부제가 된 성 네메시우스는
딸과 함께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
성 루도비코(Louis)
축일 8월 25일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프와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 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들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대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1243년의 남 프랑스의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를
테임브르그에서 격퇴하였으며, 포와투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다미에타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그의 맏아들에게 했던 유언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키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주일 후에
이질에 걸려 운명하였다.
성인은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자신이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의
남자 수호성인이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임종시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 데메지에르(M.M.D.SIERES)
축일 8월 25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기 때에 어머니를 잃고 자라났다.
그녀는 결혼하라는 모든 요구를 물리치고는,
파리와 브루쎌의 스페인 대사이던 오빠와 함께
몇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의 임무는 주로
연회에 참석하는 등 외적으로 화려한 일들이므로,
매일 영성체를 하고 또 고행복을 입고
지내므로써 이 모든 세속적인 일들을 이기려고
하였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버림받은 사람,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데 주력하였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녀는 즉시 이 일을 위한
조직을 갖추었다. 이 수녀회가 소위 성체와
애덕의 시녀회이며, 1859년에 그녀 자신이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회는 주로 거리의 여성들을
돌보았는데, 창설자가 생존해 있을 때에 성좌의
인가를 받고 날로 성장하였다.
그녀는 1934년에 시성되었다.
================================
성 마지노(Maginus)
축일 8월 25일
성 마기누스(또는 마지노)는 에스파냐 타라고나
지방을 복음화한 선교사로 로마 제국의 박해 때
체포되었다. 그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
성 멘나 (mennas)
축일 8월 25일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콘스탄티노블의 사제로
봉직 하던중 536년에 교황 아가비도에 의하여
총주교로 착좌하셨다. 성 멘나는 그리스도
단성론자이던 전임자 안티모의 실책을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하여 개혁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나갔다.
544년, 유스띠니안 황제는 그를 뛰어난 신학자로
인정하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그리스도 단성론자와의
화해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황제의 화해 칙서는
교황 비질리우스에 의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으로
그 역시 서명을 거절하였다. 그는 이단 문제로
분쟁이 끊이질 않던 시기에 교황께 충성하고
순종함으로써 이단 확산 방지에 큰 기여를
하였던 것이다
================================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성 빈첸시오(Vincentius)
성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축일 8월 25일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성 빈첸시오(Vincentius)와
성 페레그리누스(Peregrinus)는 콤모두스 황제의
박해 때 이탈리아의 로마(Rome)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고문대에서 사지를 늘어뜨리는 고문을 받고
매를 맞고 불에 지지는 형벌을 받은 후
끝이 날카로운 채찍으로 죽을 때까지 맞아
순교한 후 로마의 카타콤바에 묻혔다.
그 후 성 에우세비우스와 성 폰티아누스의 유해는
863년에 교황 성 니콜라우스(Nicolaus, 11월 13일)에
의해 프랑스의 비엔(Vienne)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성 페레그리누스의 유해는 현재 미국
미네소타주(Minnesota) 대학촌의 성 요한 수도원
성당에 모셔져 있다.
================================
성녀 파트리치아(Patricia)
축일 8월 25일
전설에 의하면 성녀 파트리치아는
콘스탄티노플의 왕가 출신으로 결혼을
피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도망하여 로마(Rome)에서
하느님께 동정 서원을 하였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다시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로 와서 운명하였다.
그녀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이며, 그곳의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와 똑같이
그녀의 피가 융해되어 흐르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
성녀 에베(Ebbe)
축일 8월 25일
성녀 에베는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성 오스왈드(Oswald)와 오스위(Oswi)의 동생으로
오스위는 그녀를 스코트의 왕에게 결혼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린디스파른(Lindisfarne)의 성 피난(Finan)으로부터
수도복을 받았다. 이때 오스위는 그녀에게
델웬트의 땅을 주었는데, 그녀는 여기에
엡체스터(Ebchester)라는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그녀는 골딩엄(Goldingham)으로 자리를 옮겨
두 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이곳에서 에베는
성녀 힐다(Hilda), 성 쿠트베르투스(Cuthbertus)
그리고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 등과
친분을 맺으면서 더욱 정진하여 그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수녀원장으로서의
능력은 탁월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역사가인
성 베다(Beda)의 지적이다. 에바(Ebba)로도 불린다.
================================
성 요셉(Joseph)
축일 8월 25일
아버지 페드로(Don Pedro Calasanza)와
어머니 마리아(Maria Gastonea)의 막내아들인
성 요셉(Josephus)은 에스파냐 아라곤(Aragun)의
페트랄타 데 라 살(Petralta de la Sal) 근처의
칼라산사(Calasanza)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스타디야(Estadilla)에서 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하였으며, 레리다(Lerida)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571-1577년). 그리고
발렌시아(Valencia) 대학과 알칼라 데 에나레스
(Alcala de Henares)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 어머니와 형이 사망하자,
아버지는 요셉이 돌아와 결혼하여 가문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물리치고 1583년 12월 17일
우르겔(Urgel)의 주교인 우고 암브로시우스
(Hugo Ambrosius)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요셉은 알바라신 교구에서 활동하였다.
교구장 주교는 요셉을 자신의 고문 신학자이자
주교대리로 임명하여 피레네 산맥의 외딴
지역들에 대한 성직자들의 개혁과 신앙 재건을
위하여 파견되었다. 요셉은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592년 로마(Rome)로 가서
콜론나(Colonna) 추기경을 만났는데,
추기경은 요셉을 자신의 고문 신학자 겸
조카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로마에서
교육과 자선 활동을 위한 공동체 설립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일반 국민들의
무지와 윤리적 타락, 특히 부모가 죽은 뒤
버림받은 고아들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깨닫고 티베르 강을 끼고 있는
빈민가에서 유럽 최초의 무료 공립학교를
개설하였다. 그는 1597년에 두 사제의 도움으로
이 학교를 연 다음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마침내
1617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는 요셉이 설립한
학교를 공식 수도회로 승인해 주었고,
많은 이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이와 유사한
많은 학교들이 설립되어 학생수가 천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1621년 11월 18일에 그의 공동체는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은 수도회가 되었으며,
요셉은 이 수도회의 종신 총장이 되었다.
초창기의 사제들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다.
요셉은 초급과 중급 학교의 체계화에 기여하였다.
그는 교과과정을 면밀히 구성하였고 어린이들이
선(善)을 사랑하도록 교육 원칙을 세웠다.
“어린이들이 처음부터 신앙과 문학 교육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삶이 행복함을 알게 된다.”고
그는 기록하였다. 이들 학교는 에스파냐,
보헤미아(Bohemia), 폴란드, 이탈리아 등
수많은 나라에 세워졌다. 그러나 설립자의 만년은
야심을 가진 후계자들의 심각한 분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또 다른 욥처럼 용기를 발휘하였지만
그의 수도회에 대한 신뢰는 그가 죽은 후에야
되살아났다. 그는 로마에서 1648년 8월 25일에
운명하였고, 1748년 8월 7일 시복되었으며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그를 ‘모든 그리스도교 학교의 천상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
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Joan antide thouret)
축일 8월 25일
프랑스 상시-러-롱에서 1765년 11월 27일에
태어난 그녀는 제혁업자의 딸인데, 그녀의
나이 16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가사를 전담하다가,
1787년에 파리의 성 빈센트 애덕자매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1793년, 혁명 정부가 프랑스의 수도회를
해체시켰을 때, 그녀는 그때까지 서약하지 않았으므로,
상시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여기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고,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한편,
혁명으로 피해다니는 사제들을 숨겨주었다.
이 사건 때문에 그녀는 1796년 스위스로
도망가야 했다. 그 후 그녀는 베상송에서
학교를 개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4명의
자매들과 함께 1799년에 학교를 세웠다.
그녀의 공동체가 급성장하자, 앙티드는 벨러브에
불우여성 수용소를 세웠다. 1807년, 그녀의 회칙이
베상송의 러 코즈 대주교로부터 승인받자,
이 단체는 스위스, 사보이, 나폴리 등지로
확산되었으며, 1818년 교황 비오 7세는
성 빈첸시오 데 바울로의 보호아래 있는
애덕의 딸 수녀회란 이름으로 승인하게 되었다.
만년에 그녀는 이탈리아에 수녀회를 세우느데
전념하다가 1826년 8월 24일 운명하였고,
1934년 시성되셨다.
================================
성 율리아노(Julian)
축일 8월 25일
역사가 바로니우스(Baronius)에 의하면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시리아의 사제로 그 외에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
성 제네시오(Genesius)
축일 8월 25일
성 게네시우스(또는 제네시오)는
프랑스 지방의 아를에 살던 필경사인데,
예비신자로 있을 때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를 명하는 칙서를 쓰라는 명을
받았다. 이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므로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즉시 체포되어 론 강변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혈세를 받은 셈이다.
================================
성 제네시오(Genesius)
축일 8월 25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중 무대에서
그리스도교의 성사를 풍자한 연극을 공연하였는데,
배우 성 게네시우스(또는 제네시오)는 세례를
받으려고 준비하는 예비자로 출연하였다.
이 예식이 공연되던 중에 그는 갑자기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겠다는 생각이 불같이 타올라
세례를 받았다. 그가 이 사실을 황제에게 선언하자
황제는 그를 재판장 플라우티아누스에게 넘겼다.
재판관이 이교신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라는
요구를 하자 그는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거절하고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게네시우스는 배우의 수호성인이다.
================================
성 제룬시오(Geruntius)
축일 8월 25일
성 게룬티우스(또는 제룬시오)는
에스파냐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였고,
세비야(Sevilla) 부근 탈코의 주교로서 순교하였다.
오늘의 성인(8월25일)
2014. 8. 26. 오전 11:06:15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