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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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마노(Romanus)
축일 8월 24일
네피(Nepi)의 주교. 순교자. 철학자.
성 톨로메오를 만나 이방인 철학자이었던
로마노는 회개하였으며, 사도들로부터
성 톨로메오와 함께 직접 교리교육을 받은 성인이다.
성 로마노는 성 톨로메오와 함께 로마신들을
거부하다가 로마 황제 클라우디오 1세(41-54년)로부터
감옥에 갇히게 되며, 나중에 순교를 겪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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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미카엘라 데메지에르
(Maria Michaela Desmaisieres)
축일 8월 24일
에스파냐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성녀
마리아 미카엘라 데메지에르
(Maria Michaela Desmaisieres)는 아기 때에
어머니를 잃고 자라났다. 그녀는 결혼하라는
모든 요구를 물리치고는 파리(Paris)와
브뤼셀(Brussel)의 에스파냐 대사이던
오빠와 함께 몇 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의
임무가 주로 연회에 참석하는 등 외적으로
화려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매일
영성체를 하고 또 고행복을 입고 지냄으로써
이 모든 세속적인 일들을 이기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하루의 대부분을 버림받은 사람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데 주력하였다.
에스파냐로 돌아온 그녀는 즉시 이 일을 위한
조직을 갖추었다. 이 수녀회가
‘성체와 애덕의 시녀회’이며, 1859년에 그녀 자신이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회는 주로 거리의
여성들을 돌보았는데, 설립자가 생존해 있을 때에
성좌의 인가를 받고 날로 성장하였다. 그녀는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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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
축일;8월 24일
신약에서 바르톨로메오는 사도들의 명단에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필립보에 의해 예수께
부름을 받았던 갈릴래아에 있는 가나의
나타나엘과 동일하게 본다.
나타나엘은 가나에서 태어났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하시며 그를
크게 창찬하셨다. 나타나엘이 주님께 그를 어떻게
아셨는가를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필립보가 너를
찾아가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포하는 엄청난 계시는 나타나엘로 하여금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외치게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는 그보다 더욱 큰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나타나엘은 더욱 큰 일을 보았다.
그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래아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예수를 본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못한 채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고있었다. 아침에, 그들은 호숫가에
어떤 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아무도 그가
예수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물을 다시 던지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서 그들은
너무도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어 그물을
끌어당길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자 요한이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라고 소리쳤다.
그들이 배를 호숫가로 끌고 왔을 때 그들은 불이
타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불 위에는 고기 몇 마리와
빵이 놓여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고기 몇 마리를
더 가져오라고 하여 그들과 함께 식사하고자 하셨다.
요한은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지만 사도중의
어느 누구도 감히 그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았다고 말한다.
요한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이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세 번째였다.
설명 ; 바르톨로메오 또는 나타나엘, 어느 경우이든
우리는 대부분의 사도들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직면하게 된다.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주춧돌이었으며
그 12지파의 자손들이 전세계에 퍼져있다. 그들의
개인적 인격은 이차적인 것이다. 그들은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고도 세상을 밝히기 위해 육화하신
말씀을 인간적인 말로 전하며, 그들이 직접 체험한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전통을 이어가는
위대한 임무를 수행한 것이었다.
그들의 성덕은 자신의 내적 명상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기쁜 소식이란 모든 이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형제가 될 성덕에로 초대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단순한 사실은 인간에게 만일 하느님이 자기 관심의
전체가 아니라면 이 인생이란 전반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자신의 거룩함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성은 하느님의 가장 소중한 창조물이다.
인용 ; "그리스도께서 그러했듯이 사도들도 항상
하느님의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민중과
지도자들 앞에서 '용감히 하느님의 말씀을'
강론하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복음 그자체가 이를 믿는 이에게 진실로
구원을 주는 하느님의 힘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유순과 겸손을
따르면서…설교했다."(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1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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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불림 받았다는 기록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는 필립보의 인도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요한 1,47)는
평을 들은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이라고 여겨진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인도와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설교하였고, 그곳에서 아스티야제스 왕에 의하여
참수를 당해 순교하였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는 카스피 해안의 아바나폴리스,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바르톨로메우스의 복음서는 위경이고,
프세우도-젤리시오에 의하여 단죄되었다.
그의 문장은 칼과 벗긴 살가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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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도에노(Audoenus)
축일 8월 24일
오웬(Owen), 우엔(Ouen) 등으로도 불리는
성 아우도에누스(또는 아우도에노)는
성 오테르(Authaire)의 아들로 프랑스
수아송(Soissons) 교외 상시(Sancy) 태생이다.
그는 성 메다르두스(Medardus)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클로테르 2세 궁중에서 일하던 중에
수상까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레베(Rebais)에
첫 번째 수도원을 세우면서부터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록 그는 평신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직매매를 적극 반대하면서 신앙 부흥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 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다가
641년에는 루앙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새 수도원의
건축에 열을 올렸으며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프랑스의 복음화에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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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우레아(Aurea)
축일 8월 24일
비록 성녀 아우레아의 순교행전은 종교적인
허구이지만, 그녀는 로마(Rome) 근교 오스티아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참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그녀는 로마의 동정녀로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도운 이유로 오스티아에서 익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아우레아는 목에 맷돌을 매달고
바다로 던져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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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밀리아(Emily)
축일 8월 24일
15세부터 30세까지 비알라르의 성녀 에밀리아(Aemilia)는
홀로 된 그녀의 부친을 도와 드리며,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Languedoc)의 게일락(Gaillac)에 있는
부친의 소유지에 살던 어린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 후 1832년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그 돈으로 게일락에 집을
구입한 후부터 조직적인 방법으로 자선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를 도우려는 다른 지원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1835년에는 알제리(Algeria)에 제2의 활동 기지를 세웠다.
여기서부터 그녀의 사업은 날로 발전하였으나,
알제리의 주교 몬시뇰 듀푹과의 분쟁으로 인하여
큰 공경에 빠졌다. 이윽고 1842년에 그 주교는
에밀리아 원장을 파문해 버렸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였으나 결국 그녀는
공동체와 함께 프랑스로 철수해야 하였다.
그 후 10여 년 동안은 에밀리아 원장의 수도회는
예루살렘과 호주 등지를 포함하는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이 수도회는 성 요셉 수녀회인데, 초창기에는 비록
알제리에서와 같은 불행한 일들이 있었지만,
성녀 에밀리아는 매우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로
진정한 사랑에 영감을 받은 분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녀의 시성식에서 에밀리아는 ‘현명하고 이해심
많으며 또 다정다감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성녀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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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티키오(Eutychius)
축일 8월 24일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인 프리지아 출신인
성 유디코(라틴어 표기는 에우티키우스, 또는 에우티키오)는
드로아 공동체에서 사도 바오로(Paulus)의 설교를
듣다가 삼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가 바오로 사도에 의해
다시 목숨을 건진 사람이다(사도 20,7-12). 그는
사도 요한(Joannes)과 더불어 파트모스(Patmos) 섬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복음사가 요한이 묵시록을
저술하는 동안에는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다가 여러 차례나 투옥되어 신앙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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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Jane Antide Thouret)
축일 8월 24일
프랑스 상시-러-롱에서 1765년 11월 27일에
태어난 성녀 요안나 앙티드 투레
(Joanna-Antide Thouret)는 제혁업자의 딸로
그녀의 나이 16세 때 어머니가 사망하자
가사를 전담하다가, 1787년에 파리(Paris)의
성 빈첸시오 애덕 자매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1793년 혁명 정부가 프랑스의 수도회를
해체시켰을 때, 그녀는 그때까지 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시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여기서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고,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한편 혁명으로
피해 다니는 사제들을 숨겨주었다. 이 사건 때문에
그녀는 1796년 스위스로 도망가야 했다.
그 후 그녀는 브장송(Besanion)에서 학교를
개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4명의 자매들과 함께
1799년에 학교를 세웠다.
그녀의 공동체가 급성장하자 앙티드는 벨러브에
불우여성 수용소를 세웠다.
1807년 그녀의 회칙이 브장송의 러 코즈
대주교로부터 승인받자 이 단체는 스위스,
사부아(Savoie), 나폴리(Napoli) 등지로 확산되었다.
1818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는 이 단체를
성 빈첸시오 드 폴의 보호 아래 있는 애덕의 딸
수녀회란 이름으로 승인하였다. 만년에 그녀는
이탈리아에 수녀회를 세우는데 전념하다가
1826년 8월 24일 운명하였고,
1934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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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타시온(Tation)
축일 8월 24일
성 타티온(또는 타시온)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클라우디오폴리스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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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트리치오(Patrick)
축일 8월 24일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또는 파트리치오)는
그에 대한 전승이 충돌하여 혼돈을 주는
성인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아일랜드의
성 파트리키우스(3월 17일)와 혈족이자
동시대인이거나 또는 프랑스 느베르(Nevers)의
수도원의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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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톨로메오(Ptolemy)
축일 8월 24일
성 프톨로메우스(Ptolomaeus, 또는 프톨로메오)는
사도 베드로(Petrus)의 제자로 그에 의해
이탈리아 토스카나(Toscana) 지방 네피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자신의 교구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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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밀리아 드 비알랄(emily de vialar)
축일 : 8월 24일
15세부터 30세까지 에밀리는 홀아비가 된
그녀의 부친을 도와 드리고, 알그독의
게일락에 있는 부친의 소유지에 살던 어린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그 후
1832년에 그녀가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고,
이 돈으로 게일락에 집을 구입한 후부터
조직적인 방법으로 자선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를 도우려는 다른 지원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1835년에는 알제리아에 제 2의
활동 기지를 세웠다. 여기서부터 그녀의 사업은
날로 발전하였으나, 알제리아의 주교
몬시뇰 듀폭과의 분쟁으로 인하여 큰 공경에 빠졌다.
이윽고, 1842년에 그 주교는 마더 에밀리를
파문해 버렸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였으나, 결국은 그녀와 공동체가 프랑스로
철수해야 하였다. 그 후 10여 년 동안은 마더 에밀리의
수도회는 예루살렘과 호주 등지를 포함하는
여러나라로 퍼져나갔다. 이 수도회는
성 요셉 수녀회인데, 초창기에는 비록
알제리에서와 같은 불행한 일들이 있었지만,
성녀 에밀리는 매우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로
진정한 사랑에 영감받은 분으로 널리 알려졌던 것이다.
그녀의 시성식에서 에밀리는 "현명하고 이해심
많으며 또 다정다감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성녀로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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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게오르기우스 림니오타(Georgius Limniota,
또는 제오르지오)
축일 8월 24일
성 게오르기우스 림니오타(Georgius Limniota,
또는 제오르지오)는 소아시아 지방 올림푸스 산의
은수자로 95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성인들의 유해와 성화상을 옹호한 이유로
이사우리아(Isauria) 왕조의 레오 황제에 의해
고문을 당한 뒤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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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엔 혹은 오웬(Ouen or Owen)
축일 : 8월 24일
우엔, 오웬, 오도에누스 등으로 불리는 그는
성 오테르의 아들이며, 프랑스 쏘와송 교외
상시 태생이다.
그는 성 메다르드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클로테르 2세 궁중에서 일하던 중에 수상까지 되자,
레베에 첫 번째 수도원을 세우면서부터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비록 그는 평신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직매매를
적극 반대하면서 신앙 부흥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그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다가, 641년에는
루앙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새 수도원의 건축에 열을 올렸으며, 선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프랑스의 복음화에 초석이 되었다.
오늘의 성인(8월24일)
2014. 8. 26. 오전 11: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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