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8월21일)

2014. 8. 26. 오전 10:59:12

글자

♡8월 2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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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구니포르토(Gunifort)

축일 8월 21일 

성 구니포르투스(Gunifortus, 또는 구니포르토)의
전설은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2월 7일)
왕의 것과 상당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그는 영국 또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이탈리아의
파비아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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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룩소리오(Luxorius)

성 카메리누스(Camerinus),

성 키셀루스(Cisellus)

축일 : 8월 21일

성 룩소리우스(또는 룩소리오), 카메리누스(Camerinus),
키셀루스(Cisellus)의 행전에 의하면,
룩소리우스는 로마(Rome)의 군인으로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고, 시편을 즐겨
낭송하였는데 그는 이 시편의 내용에 매료되어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그가 시편 84를 읽을 때 그리스도교의
하느님보다 나은 신은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작시를 이렇게 불렀다.
“오! 주여, 저를 당신의 길로 이끄시오면,
당신 진리 안에서 걷겠나이다.” 이뿐만 아니라
시편 118을 읽고는, “당신 종에게 풍성한 은총을
허락하시고, 기운을 북돋아 주소서. 그러하오면
저는 당신 말씀을 지키리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복음서를 접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며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지방 총독인
델피우스는 룩소리우스가 거주하던 이탈리아
서안의 사르데냐(Sardegna) 섬에 황제의 칙령을
공고하고 박해를 시작하였다.
룩소리우스는 군인이었으므로 더 큰 죄인으로
지목되어 즉시 총독에게 끌려갔는데,
이때 두 소년도 함께 체포되었다.
이들이 곧 키셀루스와 카메리누스이다.
이들 두 소년은 세례를 받기 위하여 깨끗한 옷을
입은 채로 끌려갔다.
델피우스는 룩소리우스에게 그리스도를 배반하도록
명하였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그래서 모진 고문이 시작되었는데 그 동안에도
그는 태연하게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할 뿐이었다. 나이 어린 두 소년에게도
똑같이 거절을 당하자, 화가 치민 총독은 칼로 쳐
죽이라고 명하여 포룸 트라야눔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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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Bernard)

성녀 그라시아(Gratia) 

성녀 마리아(Maria)

축일: 8월 21일

순교자. 성 베르나르도는,
바렌사(Valenza)의 사라센 왕국의 칼렛(Carlet)의
에미르(족장)이었던 알만조(Almanzor)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으며, 성인은 형과 두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이 두 여동생이 바로
성녀 그라시아와 성녀 마리아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바렌사 궁정에서 형과 함께
궁정 교육을 받았다. 어느날 성인은 일군의
노예해방을 협정하기 위해 카타로냐(Catalogna)에
파견되었다. 임무수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성인은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하루밤을 꼬박
숲속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어느 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천사들이 노래하는듯한 합창을 듣게 되었다.
이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의 친절한 환대를 받았다.
흰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승들의 덕행과 겸손에 대해
큰 감명을 받게 되었다. 그후 성인은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교육을 받고, 수도원으로
입회하게 되었다. 수도원에서 그는 수도원
재산관리를 맡았는데, 이때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동냥을 많이 하여 더러는 수도원의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때 그의 가족들은 회교도 신자들이었는데,
이들 가족들을 가톨릭 신자로 회개시켰다.
두 여동생의 본래의 이름은 조라이드(Zoraide),
자이다(Zaida)이었는데, 세례를 받으면서
그라시아(Grazia)와 마리아(Maria)로 개명하였다.

이후 성 베르나르도와 두 여동생은, 가톨릭을
박해하는 에미르(족장)의 눈을 피해 도망을 갔지만
붙잡혀서 순교를 당하였다.
이들은 알지라(Alzira)에 묻혔다.
후에 이들을 기념하여 아라고나(Aragona)의
왕이었던 야고보 1세가 성당을 건립하였다.
아라고나의 수도승들은 7월 23일에 축일로 기념하였으나,
1871년부터 베르나르도 성인은 5월 19일로 옮겨서
지내게 되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이
세 성인들을 6월 1일에 기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순교한 날이 8월 21일이므로
이 날을 기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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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막시미아노(Maximian)

성 보노소스(bonosus)
 
축일  8월 21일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군대의 상징으로 두라고 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명(첫 글자만 짜 맞춘 글자)을 뜯어내고,
이방인의 신들을 조각한 상징물을 달라고
명하였을 때,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열렬한
신자이던 성 보노수스(Bonosus)와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또는 막시미아노)는
이를 거부하였다. 황제의 사촌인 율리아누스 백작이
이를 보고 괘씸히 여겨 그들에게 로마신의
공경을 강요하며 고문하였다. 이때 보노수스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이따위 신들에게
예배드릴 순 없다”고 용감히 맞섰기 때문에,
같은 태도를 취하였던 동료 장교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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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바사(Bassa)

성 테오고니오(Theogonius)

성 피델리스(Fidelis)

성 아가피오(Agapius) 
 
축일  8월 21일 

성녀 바사는 이교도 사제의 부인이었다.
그녀의 아들들인 성 테오고니우스(Theogonius)와
성 아가피우스(Agapius) 그리고
성 피델리스(Fideli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유죄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성녀 바사는 그들의 고통에
동참해서 그들이 순교할 때까지 용기와 충실성을
지키도록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그들은 모두 에데사(Edess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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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 프톨로메오(Bernard Ptolomaeus)

축일  8월 21일 

이탈리아 시에나(Siena) 출신인
성 베르나르두스 프톨로메우스
(Bernardus Ptolomaeus, 또는 베르나르도 프톨로메오)는
요한(Joannes)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지방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사회에 진출하였다.
매우 신심이 깊었던 그는 갑작스럽게 ‘회심’하여
모든 것을 뿌리친 뒤 은둔소로 피신하였다.

그는 두 사람의 다른 시에나 사람과 함께 살았는데,
암브로시우스 피콜로미니와 파트리키우스 파트리치였다.
이들 셋은 시에나의 황무지인 몬테아미아타의
숲 속에서 지냈다. 이리하여 그들은 아레초(Arezzo)의
주교로부터 베네딕토 회칙을 받고 회수도자가 되었다.

요한 프톨로메우스는 이때 베르나르두스로 개명하고,
그들의 은둔소명을 따라 1319년
‘몬테 올리비에토의 성모회’라는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두스와 함께 시에나의 수호성인이다.
올리베타노회는 베네딕토회와는 독립된 수도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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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오 10세(Pius X)
 
축일  8월 21일 

1835년 6월 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리에제(Riese)에서 우체부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의 10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
(Giuseppe Melchiorre Sarto)는 어머니의 신앙에
많은 영향을 받아 1850년에 파도바(Padova)
신학교에 들어갔다. 1858년에 사제가 된 그는
향후 17년 동안 본당 사목자로서 생활하다가
1884년 9월에 만투아(Mantua)의 주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베네치아의 추기경과 대주교가
되었으나, 베네치아 정부와의 문제로 인하여
18개월 간 부임하지 못하였다.

그는 레오 13세(Leo XIII)를 계승하여
교황이 되었다. 그는 교회법 개정을 착수했고,
불가타 성서 개역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시편과 성무일도서 개정을 명하였다.
특히 그는 성체를 자주 영하도록 권장하였다.
그의 재임기간은 ‘근대주의’와의 투쟁이 많았고,
1910년에는 프랑스 사회 운동인
‘시용’(Sillon)을 비난하였다.

교황 비오 10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22일 후인 1914년 8월 20일에,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것을 개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1051년 6월 3일 복자품에 올랐으며,
1954년 5월 29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그럼으로써 1712년 비오 5세가
시성된 후 처음으로 시성된 교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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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이우스 솔리우스 아폴리나리스 시도니우스
(Gaius Solius Apollinaris Sidonius,또는 시도니오)

축일  8월 21일 

성 가이우스 솔리우스 아폴리나리스 시도니우스
(Gaius Solius Apollinaris Sidonius,
또는 시도니오)는 프랑스 지방의 리옹(Lyon)에서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아를(Arles)에서
고전 공부를 하였고, 비에난의 골라우디아누스
마메르투스의 문하생이 되었다. 또한 그는
455년에 황제가 된 아비투스(Avitus)의 딸인
파피아닐라와 결혼하였으며, 450년경부터
로마(Rome)의 황제궁에서 몇 년을 지냈고,
468년에는 로마의 총독이 되었다.

그 후 은퇴하여 오베르뉴(Auvergne)에서
지내던 중에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세속적인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고 더욱 단순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또 대기근 중에는 방대한
구호사업을 펼쳐 교회의 애덕을 증명하였다.
그는 뛰어난 설교가였고 또 저명한 시인이었는데,
현재 24편의 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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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축일  8월 21일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로마 제국의 군단 사령관 또는 그의 부관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나스타시우스 코르니쿨라리우스
(Anastasius Cornicularius, 아나스타시오 부관)
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는 로마(Rome) 부근
살로네(Salone)에서 성 아가피투스(Agapitus)의
죽음을 보고 개종하였고,
그 결과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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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브라함(Abraham)
 
축일  8월 21일 
  
성 아브라함은 그의 출생지인
스몰렌스크에서 수도자가 되었으며
성서 연구와 설교에 전념하였다.
그는 엄격하고 군인다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수많은 평신도들이 그를 추종하였는데,
그 이유는 병든 자와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그의 따뜻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직자들 사이에는 적이 많았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스몰렌스크의 주교는
그를 시험하고자 5년 동안이나 그를
암울하게 지내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주교는
다시 그를 시험한 후 조그마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자, 여기서 아브라함은
평화스럽게 여생을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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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비토(Avitus)

축일 8월 21일 

성 아비투스(또는 아비토)는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의 친구로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 지방
클레르몽의 제18대 주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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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프레피오(Euprepius) 

축일  8월 21일 

성 에우프레피우스(또는 에우프레피오)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초대주교였다.
교회 전승은 사도 베드로(Petrus)가 그를
베로나로 파견했다고 한 번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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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치리아카(Cyriaca) 또는 도미니카(Dominica) 

축일  8월 21일 

도미니카(Dominica)로도 알려진
성녀 키리아카(또는 치리아카)는
로마의 부유한 집안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자기 집을 피신처로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8월 10일) 부제
순교자와 다른 신자들이 자선활동을 전개하던
단체의 본부로 사용하도록 적극 협력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신앙과
이런 행위 때문에 매를 맞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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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콰드라토(Quadratus)
 
축일  8월 21일 

북아프리카 우티카의 주교인
성 콰드라투스(또는 콰드라토)는
로마 제국의 박해로 끔찍한 고통을 받고
순교했으며, 대부분의 그의 신자들 역시
순교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그를 칭송했으며, 다른 아프리카의 교회들
또한 그와 동료 순교자들에 대해
깊은 존경을 드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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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테르노(Paternus)
 
축일  8월 21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의
이집트 사람인 성 파테르누스(또는 파테르노)는
이탈리아의 로마(Rome)에서 지내다가
폰디(Fondi)에서 체포되어 그곳의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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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리바토(Privatus) 

축일  8월 21일 

프랑스 제보당의 주교인
성 프리바투스(또는 프리바토)는 게르만족
또는 야만족이 쳐들어 왔을 때 신자들이
숨은 장소를 밝히라는 요구를 거부한 후
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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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훔벨리나(Humbeline)

축일 : 8월 21일

성 베르나르도의 여동생인 그녀는
프랑스의 디죵에서 태어나 귀족이던
귀드 마르시와 결혼하였고, 귀족적인
생활을 하며 살았다. 어느날 그녀가
오빠를 만났을 때 화려한 옷과 생활태도의
지적을 받게 되자, 매우 부끄러워하며
마음으로부터 회개의 빛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몇 년 후, 그녀는 남편의 허락을 받고서
쥴리-레-논네의 베네딕또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그곳의 원장이던 엘리사벳을 계승하여
원장이 되어 엄격한 생활을 통하여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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