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8월17일)

2014. 8. 14. 오후 2:43:17

글자

♡8월 17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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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드리텔모(Drithelm)

축일 8월 17일 

노섬브리아(Northumbria)에 살던 성 드리텔모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수덕생활을 하고
하느님을 두렵게 여기는 가정을 꾸미고 살았다.
693년 어느 날 그가 평소에 앓던 병이 위중하더니,
저녁에는 죽은 듯이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일어나서,
죽은 자신의 육신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도망갔으나 아내만은
정신없이 서 있었다.
이때 그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겁내지 마시오. 나는 죽음에서 부활하였소.
이제부터는 그전대로 살지 않고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살 것이오.” 그런 후 그는 재산을
아내와 자식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3등분하여
나누어 준 뒤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 이야기를 아무에게나 하지 않고,
지옥을 두려워하며 천상 영복을 바라는 사람에게만
들려주었다 한다.
그가 지옥이나 천국을 보았을 것이라 하여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후 그는
일생동안 독수자처럼 엄격한 고행을 하며 지냄으로써
수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였다고 한다.
성 베다(Beda)는 “그가 지금도 아일랜드에서
독수생활을 하며 놀라운 삶을 산다.”고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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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Rogatus),

성 루스티코(Rusticus)

성 셉티무스(Septimus)

성 세르부스(Servus)

축일 8월 17일 

아프리카의 반달족 왕인 후네릭은 재임 17년에
가톨릭을 반대하는 칙서를 내리고 모든 수도원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카프사 교외의 수도원에 살던 7명의 수도승인
성 리베라투스(Liberatus),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로가투스(Rogatus),
성 루스티쿠스(Rusticus또는 루스티코),
성 셉티무스(Septimus)와 성 세르부스(Servus)는
그들의 강압에 못 이겨 아리우스파(Arianism)와
타협하려다가 용기를 내어 죽음으로써 이에 항거하였다.
이때 그들의 대표자가 성 리베라투스 수도원장이었다.
그들은 쇠사슬로 묶인 채 지하 감방에 갇혔다.
그러나 간수에게 뇌물을 준 어느 신자가 밤낮으로
그들을 방문하였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그들은
곧 카르타고(Carthago)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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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마(Mamas)

축일 8월 17일 

성 마마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 살던 양치기였으나,
전심으로 하느님을 섬기려는 열망이 불같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박해자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직 소년이었는데 너무나 열심하고
또 용감하여 아우렐리아누스 앞에까지 끌려가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어느 전설에 따르면 그 도시의 산속에서 이리들과
같이 살았지만 아주 평화스럽게 야생동물과 지냈으며,
꿀과 우유만으로 생활했다고 하며,
순교한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과 함께
사라졌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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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론(Myron)

축일 8월 17일 

터키 마르마라(Marmara) 해의 섬인 키지쿠스의
신부였던 성 미론은 그의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온 박해자들 앞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순교하였다.
박해자들은 그를 살해하고 성당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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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Paul)

성녀 율리아나(Juliana)

축일 8월 17일 

남매 사이인 성 바오로(Paulus)와
성녀 율리아나(Juliana)는 전설에 의하면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한 박해가 시작될 무렵
팔레스티나(Palestina)의 프톨레마이스(Ptolemais)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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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축일 8월 17일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시리아 출신으로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
부근에서 은수자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신원에 대한 다소의 혼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교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1518년에 로마 순교록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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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세비오(Eusebius)

축일 8월 17일 

그리스인으로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는 308년에
교황 성 마르첼루스 1세(Marcellus I)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선임자로부터 배교자
처리 문제에 관한 논쟁을 물려받았다.
선임 교황은 적당한 통회를 하고 공적으로
용서받아야만 배교자들을 교회로 다시 받아들인다는
정책을 고수했고, 에우세비우스도 이를 따랐다.
이 때문에 배교자 그룹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되었는데, 그들은 헤라클리오를 대립교황으로
옹립한 뒤에 보속 없이 곧바로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이 끝없이 계속되자 황제 막센티우스가
개입하여 헤라클리우스와 에우세비우스를
시칠리아(Sicilia)로 쫓아내었다.
에우세비우스는 불과 4개월 간 재임한 후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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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클라라(Clare)

축일 8월 17일 

프란치스코회과 아우구스티니아노회 사이에는
성녀 클라라 수녀가 서로 자기 수도회의 성녀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있었다.
그 이유는 성녀 클라라(Clara)가 요안나(Joanna)의
지도를 받으면서 15년 동안 은둔소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곧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폴레토의 주교에게
정규 수도원 생활을 간청하여 허가를 받을 때,
그 주교가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의 회칙을 주었다.
이들의 은둔소는 1290년에 수도원으로 세워졌고,
요안나가 죽고 난 뒤에 클라라는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의 생활은 그 엄격성과 높은 덕으로 유명하다.
하루의 대부분은 침묵으로 지냈고, 눈이 오더라도
맨발로 다녔으며, 하루에 주님의 기도를 백 번씩
바쳤다고 한다.
그녀의 말과 표양은 공동체가 완덕을 지향하는데
큰 격려가 되었고, 하느님과의 일치는 관상생활의
모범이 되었다.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수도원의 재산을 수도원 밖의
사람들도 이용하도록 배려하는 등 획기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클라라는 우리 주님의 고난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졌다.
이 때문에 클라라는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모상이
인각되었다고 전해온다. 성녀는 1881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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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요안나 들라누에(Joan delanoue)

축일 : 8월 17일

그녀의 부친은 앙주의 소뮈르에서 포목상을 하던
사람으로 12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모친의
사망 후에 집과 가게를 상속받았고, 같은
이름을 가진 조카와 가업을 이어나갔다.
그녀와 조카는 상술이 뛰어났으나 주일과 축일도
문을 열었기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질 못했고, 또 그녀는 돈에 푹 빠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마음은 착하고 고왔지만,
신앙은 겉돌고 있었다. 1693년의 공헌축일에
낯설은 어느 노부인이 그녀에게 나타남으로써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녀는 프란치스가라는
과부인데, 순례를 하고 지냈지만 영적생활은
뛰어났으므로 요안나에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
"나는 굶주렸으나 너는 내게 음식을 주지 않았고..."
하는 성서 말씀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회개하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프란치스까의 계시 내용에 따라
고아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작은 집을 짓고 12명의 고아를 돌보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이 집을 "섭리의 집"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발전하여 1717년경에는 거대한
섭리의 집이 되었다. 이 수녀회가 소위
소뮈르의 섭리의 성 안나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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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히야친토(Hyacinth)

축일 8월 17일 

서폴란드의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1185년 폴란드 남서부 슐레지엔(Schlesien) 근처
란카 성에서 태어난 성 히야킨투스(Hyacinthus,
또는 히야친토)는 크라쿠프와 프라하(Praha)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볼로냐(Bologna)에서 법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폴란드로 돌아와서
크라쿠프 교구장의 비서가 되었다.
1220년 주교와 함께 로마(Rome)에 갔다가 그곳에
와 있던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폴란드로 돌아와서 1222년 크라쿠프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설립하고 그 수도원을 중심으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비롯하여 프러시아
(Prussia)와 리투아니아(Lithuania) 전역을 돌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57년 8월 15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폴란드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는 그는
1594년에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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