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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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네스타보(Nestabus)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성 제노(Zeno)
성 네스토르(Nestor)
축일 9월 8일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가 통치할 때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네스타부스(또는 네스타보), 제노(Zeno) 그리고
다른 신자 3명이 팔레스티나(Palestina)
가자 지방의 이방인 신전 파괴 사건과 관련되어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았다. 폭도들은
원형 경기장에 모여 성소 파괴자의 처벌을
요구하였다. 이어서 그들은 대군중을 규합하여
마치 난리나 난 듯이 난동을 부리면서 감옥 문을
때려 부수고, 에우세비우스, 네스타부스,
제노를 끌어내어 돌과 막대기로 닥치는 대로
때리며 자백을 강요하였다. 위의 세 분은 참으로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길가에 버려졌다.
두개골이 깨어지는 등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도 부족하여 그들은
횃불을 밝혀들고 시체를 태웠다.
그날 밤 어느 부인이 몰래 치명자들의 유품을
골라내어, 또 다른 제노라는 사람에게 건네주고
마후마로 도망치게 하였다. 그는 이 유해를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통치 때까지 잘 간직하였고,
나중에 주교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성 에우세비우스, 네스타부스, 제노 외의
다른 순교자 3명 중의 한 명이
성 네스토르(Nestor)로 밝혀졌다. 네스토르는
폭도화된 그 군중들이 죽은 줄 알고 길가에
버렸는데, 후일 주교가 된 제노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 보니 살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을
넘기기 못하고 후유증으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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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네오테리오(Neoterius)
성 암몬(Ammon),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
축일 9월 8일
성 암몬(Ammon),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
성 네오테리우스(또는 네오테리오)를
비롯한 25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모두 알려졌지만, 순교 날짜나 다른 정보는
전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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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디모테오(Timothy)
성 파우스투스(Faustus)
축일 9월 8일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또는 디모테오)와
성 파우스투스(Faustus)는 시리아(Syria)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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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나탈리아 (natalia)
축일 9월 8일
니코메디아의 성 아드리아노의 아내이다.
비잔틴 전례에서는 8월 26일에 경축한다.
성녀 나탈리아는, 막시미아노 로마 황제때
신앙박해로 감옥에 갇힌 남편 성 아드리아노와
동료 신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형벌로 받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나중에는 성녀도
남편의 뒤를 따라 순교한다.
서양 순교록에서는 9월 8일에
성녀의 축일을 경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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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디시보드(Disibod)
축일 9월 8일
성 디시보드는 아일랜드 사람으로
자기 고향에서 주교로 봉직하였다.
그는 매우 호소력을 지닌 설교가이자 사도였으며,
신도들의 신심을 뜨겁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는 7세기 중엽에 아일랜드를 떠나
독일 선교에 나섰다. 그는 빈엔 근교
나헤 계곡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이
나중에 유명한 디센베르그 수도원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여기서 인근 주민들을
사목하면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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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리카르다 (Richardis)
축일 9월 8일
알사스의 백작 딸인 성녀 리카르다는
22세 때에 게르만 왕 루이스의 아들인
찰스 팻트와 결혼하였다. 19년 후, 그는
남편과 함께 로마로 가서 교황 요한 8세로부터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와 황후로 대관하였다.
그후 찰스 황제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위하여 리카르다를 모함에 빠지게 했고,
이에 대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타오르는
불길 위를 지나가는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맨발로 불길 위를 걸어갔으나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누명을 벗었으나,
남편과는 별거키로 하여 안들로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녀는 수녀들의 생활을
그대로 실천하고 보속하면서 평화롭게 살다
가 선종하였다. 리카르다는 스트라스부르그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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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축일: 9월 8일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동방교회에서 서방교회로 전해진 축일입니다.
5세기 말 부터 예루살렘에 있던 마리아 성당
(오늘날 성 안나 성당) 축성일인 9월8일에
지켜졌습니다.
성모 탄신 축일에 관해서 성서에는 언급된 바가
없으나 가톨릭 신학과 교의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야고보의 원복음서를 비롯한 몇몇 외경에 전해집니다.
8세기에 동방 교회에서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는
자신의 설교에 이 축일은 증언하였습니다.
로마에서는
교황 성 세르지오 1세가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젤라시오 전례서와 그레고리오 전례서에도
언급되어 있으며 이들 전례서를 통해
서부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켜진 것은 11세기 부터였습니다.
공식적인 교회 기록으로는 잘츠부르크
주교대의원회의 문헌에 이 축일이
오늘 날짜로 나온다.(오늘의 말씀에서)
옛 전승에 따르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는 요아킴과 안나이다.
야고보의 원 복음서와 다른 외경에 의하면,
요아킴은 나자렛에서 태어나 안나와 결혼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한 때 그는 광야에서 40일간을 기도하며
자식을 기원했다.
그러던 어느날 안나가 아기를 낳으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노라고 약속함으로써
천사로부터 아기를 낳는다는 전갈을 듣고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 마리아가 곧 예수의 모친이다.
요아킴은 후일 성전에서 예수를 증언한 뒤에
곧 바로 운명했다고 한다.
한편 또다른 전승에 의하면
안나는 나자렛 태생으로 유목민
아카르의 딸이다.
그녀는 20세 때에 요아킴과 결혼하여
40세에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분들에 대한 공경은
6세기경부터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어
서방교회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요아킴은 더 늦게부터 공경을 받았다.
두 사람의 성덕과 영웅적인 행위는 성서 속에서
마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 분위기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마리아의 어린시절에 관한 전설를 읽거나
성서에 나타나는상황으로 추측해볼 때
마리아가 여러 세대에 걸쳐 신심 깊은 생활을
해온 집안의 종교적인 전통에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사 결정에 대한 마리아의 결단력,
그녀의 끊임없는 기도 행위,
율법에 대한 모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확고 부동함, 친척들에 대한 헌신,
이 모든 것들은 마리아의 가정이
과거의 가장 좋은 것들을 간직하면서도
다음 세대를 기꺼이 기다리는 화목하고 굳게
뭉쳐진 가정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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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르지오 1세(Sergius I)
축일 9월 8일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 살던
어느 상인의 아들인 성 세르기우스
(또는 세르지오)는 이탈리아의
팔레르모(Palermo)에서 태어났고,
로마에서 교육을 받은 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687년 12월 15일에 교황 코논을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교황 선출에는 잡음이 많았고, 또 그가
트룰라눔에서 개최한 공의회 칙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을 때 유스티니아노 황제와
위험스런 논쟁에 말려들었다. 만일 세르기우스가
이 칙서를 인정하게 되면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와 대등한 교회 구조상의 위치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황제는 자카리아(Zacharias)란
심복을 로마로 파견하여 교황을 체포해
오도록 하였으나, 로마 시민들이 단결하여
이를 저지하고 자카리아를 축출하였다.
이 사건은 황제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689년 세르기우스는 웨식스(Wessex)의 왕인
체드왈라에게 세례를 주었고, 695년에는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에게
주교품을 주어 영국 선교와 독일 그리고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를 격려하였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세르기우스 교황은 직접
로마에 있던 음악학교(스콜라 칸토룸)를 다니면서
전례 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미사 중에 ‘하느님의 어린 양’(아뉴스 데이)을
노래하도록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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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나(Ina)
성녀 에텔부르가(Ethelburga)
축일 9월 8일
성 이나(Ina)는 웨식스의 앵글로 색슨 왕으로
말썽꾸러기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인
성녀 에텔부르가는 왕의 권력과 소유를 올바로
사용하도록 그를 인도하였다. 그래서 성 이나는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수도원을 복구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또한 그는 726년에 그의
아내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기 위해 왕위를
양위하였다. 그리고 그 부부는 로마(Rome)에서
경건함과 참회 속에서 그들의 삶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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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드리아노 (adrian)
축일 : 9월 8일
니코메디아의 궁중 관리였던 아드리아노는
일단의 신자 무리들의 인내심과 열렬한 믿음에
감동하여, 비록 자신이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인이라고 공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는 즉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는데,
그의 아내 나딸리아는 옥중의 남편을 찾아다니며
신앙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사형 언도를 받고,
방문객의 면담이 금지되자, 아내는 소년 복장으로
위장하고, 관리들을 매수하여 남편의 온갖 고통을
위로하고 신심을 굳게해 주었다. 그가 죽는
현장에 아내도 참석하여 처절한 죽음을 목격하였다.
한편 나딸리아는 자신과 강제로 결혼하려는
니코메디아의 어느 궁중 관리의 손아귀를 벗어나
콘스탄티노블로 피신하여 여생을 지냈다.
아드리아노는 군인들과 푸주한의 수호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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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코르비니아노(Corbinian)
축일 9월 8일
프랑스 샤트르 태생인 성 코르비니아누스
(Corbinianus, 또는 코르비니아노)는
세례명이 발데지소(Waldegiso)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코르비니아누스로
개명하였다고 하나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14년 동안이나 샤트르(Chatres)에서
독수자 생활을 하였는데 수많은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그는 수도 공동체를 세웠다.
그 다음에 코르비니아누스는 로마(Rome)로 갔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는 그를
독일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는데 아마도
그 즈음에 주교로 축성된 듯하다. 그는
바이에른(Bayern) 지방의 프라이징으로 파견되어
열렬한 선교사로서 활약하던 중 자신의 후원자이던
그리모알드(Grimoald) 공작의 결혼을 공적으로
반대하게 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왜냐하면
공작이 자기 동생의 미망인인 빌트루다와
결혼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르비니아누스는 특히 그 미망인의
원한을 사게 되었고, 그녀가 자신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발견하자마자 미란으로 피신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리모알드가 전투에서
희생될 때까지 머물렀다. 그 후
코르비니아누스는 바이에른 지방에서
선교사로서 활동하며 여생을 보냈고
오베르마이스(Obermais)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의 상징은 곰인데, 이 곰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이 쓴 가면이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오늘의 성인(9월8일)
2014. 9. 6. 오후 6: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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