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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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녀 델피나(Delphina)
성 엘제아리우스(Elzearius)
축일 9월 27일
사브란의 성 엘제아리우스(Elzearius)는
프로방스의 앙수이의 부친 성에서 태어났고,
모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는 마르세유
(Marseilles)의 성 빅토르(Victor) 수도원의
원장인 사브란의 빌리암(William)으로부터
교육받고 성장하였다. 그 원장은 그의
아저씨였는데 매우 엄격한 교육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퓌이-미셸의
성주 딸인 글랑데브의 델피나와 약혼한 상태였다.
그와 그녀는 16세 때 결혼은 하였지만
프란치스코 수도자의 영향을 받은 델피나가
동정 결혼을 남편에게 제의하여 늘 동정부부로서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이 거룩한 부부는
관상과 기도를 중심으로 사회활동을 하였으며,
선행과 애덕 실천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며
삶으로써 주위의 귀감이 되었다.
엘제아리우스는 매일같이 성무일도를 바쳤다.
그의 나이 23세 때에 부친의 명예와 유산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이에 따르는 온갖
위험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열렬한
신심과 지혜로써 세속적인 재물을 다스렸다.
또한 그는 국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의 일을
돌보기도 하였는데, 왕의 부탁으로
파리(Paris)로 갔다가 중병을 얻고 죽게 되었다.
이때 그는 즉시 총고백을 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사를 매일 묵상함으로써 온갖 고통을
이겨냈다. 노자성체를 영하면서는 이렇게
외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희망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인 어느 프란치스코
회원의 팔에 안겨 영광된 삶을 마쳤다.
1309년경에 그는 자신의 조카인 그리모아드의
빌리암의 대부를 섰는데, 빌리암은 나중에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 교황이 되어
그의 대부인 엘제아리우스를 시성하였다.
한편 델피나는 남편을 사별한 뒤 37년을
더 살았는데, 그녀는 그 동안에 클라라회의
수녀복을 입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 부부가 프란치스코 재속 3회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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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첸시오 드 폴(Vincent de Paul)
축일 9월 27일
프랑스의 농부인 쟝 드 폴과
베르트랑드 드 모라스의 6남매 중 셋째 아들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는
프랑스의 프루이(Prouy)에서 태어나 닥스(Dax)
대학교와 툴루즈(Toulouse)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160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1605년 그는 어떤 부인의 기부금을 받기 위해
마르세유(Marseilles)에 갔다 돌아오던 중에
해적들에게 잡혀 튀니지에서 노예로 팔려가는
불운을 겪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1607년 아비뇽(Avignon)으로
탈출하였고, 그 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로마(Rome)로 갔으나 1609년에 앙리 4세에 대한
비밀 임무를 띠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이때 그는 파리(Paris)에서 발로아의
마르그리트 왕비의 전담사제가 되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사업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618년 그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
(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을 파리에서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1625년 그는 선교회를 설립했는데 이 회는
'빈첸시오회와 라자로회'로 알려졌고,
주로 농부들에게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하여 본당
단위의 회를 구성하였으며, 1633년에는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과
더불어 '애덕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병원과 고아원을 세웠으며, 북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대속하였고 새로운
신학교를 세움으로써 사제 양성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해외 선교사 파견을 물론
프롱드 전쟁의 희생자 구호소를 세웠고
또 영적인 저술을 남겼다.
귀족적이고도 충성스러운 성격을 지녔던 그는
인간의 고통과 비참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일생을 다 바친 것이며, 그러한 인간악을
유발하는 환경을 제거하는데 적극성을 내보인
탁월한 인본주의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1737년 6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2세
(Clemens XII)에 의하여 시성되었으며,
1885년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모든
자선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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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데리투스(Aderitus, 또는 아데리토)
축일 9월 27일
그리스 태생인 성 아데리투스(Aderitus, 또는 아데리토)는
사제가 된 후 이탈리아 라벤나의 초대주교였던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7월 23일)를 계승하여
라벤나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유해는 라벤나 근교 클라세(Classe)의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대성당에 모셔져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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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둘포(Adulf)
성 요한(Joannes)
축일 9월 27일
성 아둘푸스(Adulphus, 또는 아둘포)와
성 요한(Joannes)은 이슬람교도인 아버지와
그리스도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이다.
그들은 에스파냐의 세비야(Sevilla)에서 살다가
아브탈 라흐만 2세(Abd ar-Rahman II) 왕의
박해 중에 체포되어 코르도바(Curdoba)에서
순교하였다. 성 아둘푸스는 아돌푸스
(Adolph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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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피카리스(Epicharis)
축일 9월 27일
성녀 에피카리스는 로마 원로원 의원의 부인으로
비잔티움(Byzantium, Constantinople의
옛 이름으로 지금의 Istanbul)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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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마르코(John Mark)
축일 9월 27일
10세기 이전의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요한(Joannes)은 페니키아(Phoenicia,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 지방 바빌론의 주교로서
묘사되었다. 그는 아마도 사도행전 12장 12절
(이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는 마르코라고도 불리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과
25절(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사명을
다 마치고 마르코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다시 돌아갔다)에
언급된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와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현대의 학자들은 그를 복음사가 성 마르코(Marcus)와
동일인물로 본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성 요한 마르코를
복음사가 성 마르코와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를 비블로스(Byblos)의 주교라고 하며 9월 27일에
축일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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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카이우스(Cajus, 또는 카이오)
축일 9월 27일
성 카이우스(Cajus, 또는 카이오)는 초세기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로서 24년간 사목하였다.
그는 순교자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 6월 19일)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6월 19일) 형제의
아버지인 성 비탈리스(Vitalis, 4월 28일)에게
세례를 주었다.
성 카이우스 주교의 유해는 1571년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
(Carolus Borromeo, 11월 4일)에 의해 밀라노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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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덴티우스(Fidentius)
성 테렌티우스(Terentius, 또는 성 테렌시오)
축일 9월 27일
순교자 성 피덴티우스(Fidentius)와
성 테렌티우스(Terentius, 또는 테렌시오)의
유해는 12세기에 이탈리아의 토디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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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힐라리우스(Hilarius)
성 플로렌티누스(Florentinus또는 플로렌시노)
축일 9월 27일
프랑스 태생의 은수자였던 성 힐라리우스(Hilarius)는
성 플로렌티누스(또는 플로렌시노)와 함께
이교도들의 침략에 의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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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힐트루데(Hiltrude)
축일 9월 27일
성녀 힐트루데(Hiltrudis)는 프랑스
리시스(Liessies)의 베네딕토회의 수녀로서
인근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그녀의 오빠
군드라드(Gundrad)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