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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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발도(검은)(Ewald le Noir)
성 에발도(금발의)(Ewald le Blond)
축일 10월 3일
노섬브리아(Northumbria) 출신인
성 에발두스(Ewaldus, 또는 에발도)는
두 사람으로 형제간이다. 이들은
아일랜드에서 교육을 받은 후 694년에
독일 베스트팔렌(Westfalen)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이 두 사람은 ‘검은 에발두스’와
‘금발의 에발두스’(Ewald le Blond)란
별명으로 구분해야 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서로 닮았다고 한다.
이들 형제는 도르트문트(Dortmund)의
아플렐베케(Aplerbeke)에서 야만인들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이 야만인들은 에발두스 형제가
그 지방의 지도자들과 친분을 두텁게 하여
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킴과 동시에
야만적인 의식을 폐지하도록 종용하였기 때문에
죽였다고 한다. 그 지방의 족장은 살인자들을
사형에 처하고 이 형제를 높이 공경하였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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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Maria Josepha Rossello)
축일 10월 3일
알비솔라 마리나(Marina) 태생인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Maria Josepha Rossello)는 짐꾼의
아홉 자녀 가운데 하나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사업과 지도자적인 기질을 보였다.
1837년 그녀는 리구리아(Liguria)의
사보나 주교에게 소녀와 처녀들을 위해
일하려는 소망을 피력하였다. 이렇게
소규모로 출발한 이 단체는 나중에 병원과
학교 등을 거느린 ‘자비의 모후 수녀회’로
크게 발전하였다. 1875년 첫 수도원이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의
아메리카스에 세워졌다.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Liguria)의
사보나(Savona)에서 가까운 알비솔라 마리나(
Albisola Marina)에서 짐꾼의 아홉 자녀 가운데
하나로 태어난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Maria Josepha Rossello)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찍이
수도생활을 원했으나 건강 등의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6세 때에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었다.
1837년 그녀의 재능을 알아 본 사보나 교구의
주교가 그녀에게 집을 한 채 주고 소녀와 처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소규모로 출발한 이 단체는 나중에 병원과
학교 등을 거느린 ‘자비의 모후 수녀회’로 크게
발전하였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는 40년 이상 이
수녀회를 운영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이미 그녀의 생전에
이탈리아와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활발히 퍼져 나갔다.
1880년 12월 7일 선종한 그녀는 1938년 11월 6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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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막시미아노(Maximian)
축일 10월 3일
성 막시미아누스(또는 막시미아노)는
누미디아(Numidia, 오늘날의 북아프리카) 지방
바가이의 주교이다.
그는 도나투스파(Donatism) 이단이 한창 아프리카에
혼란을 일으킬 때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성 막시미아누스는 그 지방 그리스도인들이
반발하고 도나투스파 이단의 결정적인 적개심에서
기인한 밀레비스(Milevis) 공의회에서
그의 사의가 승인되자 주교좌에서 사임하였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이단들은 그를 탑 위에서
집어 던졌다.
간신히 이단들의 공격에서 살아난 성 막시미아누스는
이탈리아로 갔고 그곳에서 호노리우스 황제로부터
그의 노고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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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칸디도(Candidus)
축일 10월 3일
성 칸디두스(또는 칸디도)는 로마(Rome)의 순교자로서
순교 후 에스퀼리네(Esquiline) 언덕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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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라르도(Gerard)
축일 10월 3일
성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880년경
벨기에 나무르(Namur) 교구의 포스(Fosse) 근교인
스타브(Stave)의 귀족 집안에서 상티오(Santio)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머니 플렉트루드(Plectrud)는 리에주(Liege)의
주교인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조카였다.
당시 귀족 신분의 자제들처럼 성 게라르두스 역시
기사 교육을 받았는데, 군대 안에서도
그의 경건함은 모든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신의 영지인 브로뉴에 있는 한 경당을 크게
재건하고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의 유해를 안치했다.
917년경 나무르 공작은 성 게라르두스에게 프랑스
사절의 임무를 맡겼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수행원들을 파리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에서 머물렀다.
그곳에서 수도승들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사절의 임무를 마친 후 나무르 공작과 스테파누스
주교의 허락을 얻어 다시 생드니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수도자가 되어 생활하였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 뒤 브로뉴로 돌아온 그는 수도원 근처의 작은
골방에 칩거하면서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였다.
919년 그는 성 베드로와 성 에우게니우스에게
재봉헌된 브로뉴의 성당에 토지를 기증하였다.
923년 새 수도원의 아빠스가 된 그는 수도원이
자리를 잡고 평화롭게 성장하던 934년,
로렌(Lorraine)의 지슬베르(Gislebert) 공작으로부터
에노(Hainaut)에 있는 수도원을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개혁해 달라는 임무를 받았다.
이러한 그의 개혁 운동은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만
일곱 개의 수도원에서 행해졌는데, 그 후 이 운동은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으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개혁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953년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브로뉴로 돌아가
몽 블랑델(Mont-Blandel) 수도원의 아빠스가 되었다.
그는 로마로 교황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개혁한 공동체들을 방문하였다.
그 후 브로뉴에서 머물다가 959년 10월 3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브로뉴에 안치되었고,
1131년 리에주의 주교인 알렉산데르(Alexander)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의 대리로
성인의 시신을 기리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이 예식은 사실상 시성과 동등한 효과를 지닌 것이었다.
17세기 이후 게르마누스는 성인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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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로일라노(Froilan)
성 아틸라누스(Attilanus)
축일 10월 3일
성 프로일라누스(Froilanus, 또는 프로일라노)와
아틸라누스(Attilanus) 주교는 무어인들의
에스파냐 침략 초기에 살았던 성인들로
로마 순교록에 기록이 남아 있다.
성 프로일라누스는 에스파냐 북서부 갈리시아
(Galicia)의 루고(Lugo) 출신으로 18세 때부터
황야의 은수자로 살았는데, 그분의 제자 가운데
아틸라누스가 있었다. 그 당시 그는 15세에
불과하였다. 이 두 성인은 옛 카스티야(Castilla)
지방의 모레루엘라에서 은수자 공동체를 이끌어
오던 중 함께 주교로 승품되어 각각 임지로
떠났다. 성 프로일라누스는 에스파냐
은수생활의 재건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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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시키오(Hesychius)
축일 10월 3일
성 헤시키우스(또는 헤시키오)는
성 힐라리온(Hilarion)의 제자로서 스승을
수행하여 팔레스티나(Palestina)를 떠나
이집트로 갔던 은수자이다. 그는 기적을
행하고 예언하는 은수자로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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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미니코 스파다포라(Dominic Spadafora)
축일 : 10월 3일
그는 메씨나에서 출생하고, 팔레르모에서
설교회에 입회하였으며, 사제로 서품된 후에
는 파두아의 연구소로 파견되어, 이곳에서
학위를 받으면서 몇 년동안 가르쳤다.
그 후 그는 팔레르모로 파견되어 설교하러
다녔는데 큰 성과를 거두게 되자, 이번에는
로마 총본부의 임원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는 몬떼 체리뇨네 근교에 은총의 모후
경당에서 새 사업을 시작하기 위하여 로마를
떠났다. 그는 이곳에서 28년을 살면서
선교여행을 하는 등, 수많은 활동을 통하여
구령사업에 전념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아무런 병도 없이 갑자기 운명하였다.
1521년 12월 21일 저녁 기도 후에 그는 수도원
에서 강론하고 또 수도자들에게 강의한 후에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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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파고의 성 디오니시오(Dionytius)
축일 : 10월 3일
사도행전 17:34
몇몇 사람이 바울로 편이 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 중에는 아레오파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니시오를
비롯하여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다.
사도행전 17:23~34의 기사에 나오는 인물이다.
사도 바오로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대한
설교를 아테네의 아레오바고(군신의 언덕)
법정에서 행하였을 때,
그에게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 디오니시오 판사와 다마리스라는 여자는
후일 사도 바오로에 의하여 개종하고
크리스챤이 되었다.
특히, 코린토의 성 디오니시오의 말씀에 따르면,
판사 디오니시오가 아테네의 첫 주교가 되었으며,
또 그는 95년의 도미씨안의 크리스챤 박해 때
화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의 순교록은 그와 파리의
성 디오니시오 주교 순교자(축일:10월9일,258년?)를
혼돈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바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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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디오니시오(Dionysius)
성 파우스투스(Faustus),
성 카이우스(Cajus),
성 베드로(Petrus),
성 바오로(Paulus)
축일 10월 3일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는
성 파우스투스(Faustus), 성 카이우스(Cajus),
성 베드로(Petrus), 성 바오로(Paulus)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250년에 리비아(Libya)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체포되어 알렉산드리아로 이송되어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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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켄틀루프(Thomas Cantelupe)
축일 : 10월 3일
히어포드의 성 토마스라고도 부르는
성 토마스는 노르만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서,
헨리 3세의 무관인 바론 윌리암 켄틀루프의
아들이다. 그는 잉글랜드 햄블리돈에서 태어나
삼촌인 워르체스터의 왈터 주교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 후 토마스는 부친과 함께 1245년의
리용공의회에 참석했는데, 아마도 그 이후에
사제로 서품된듯 하다. 그 후 그는 오를레앙과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옥스포드에서는
교회법을 교수하였으며, 1262년에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정의와 융화를 바탕으로
직무를 수행하였으나, 시몬 드 몽포르의
죽음을 계기로 파리로 은퇴하였다가,
1274년에 히어포드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교구의 개혁을 조심스럽게 단행하였고,
속권에 의해 유린된 교회 권리를 회복시켰으며,
참으로 지혜롭게 교구를 지도하였다.
그의 만년은 주로 켄터버리 대주교인
존 펙크햄과의 교회법적 논쟁으로 보냈는데,
1282년에는 그 대주교에 의하여 파문 처분을
당하였다. 이 사건을 교황에게 상소하기 위하여
로마로 가던 중, 몬떼피아스꼬네에서 서거하였다.
그는 1320년에 요한 2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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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왈드(Hewald)
축일 : 10월 3일
성 빌리브로드를 따라 프리지아로 파견된
선교사인데, 그느 색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전통 종교와 관습이 사라질까
겁을 내던 주민들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주민들은 그를 죽여 강물에 던졌는데,
교회사가인 성 베다는 그의 시신이 발견되어
쾰른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그는 웨스트팔리아
도르트문트의 수호성인이다.
오늘의 성인(10월3일)
2014. 10. 2. 오후 5: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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