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10월1일)

2014. 10. 1. 오전 7:38:07

글자
♡10월 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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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그레고리오 계몽주의자, 주교(326년 순교)
축일 : 10월 1일
정확하지는 않으나 그는 아르메니아의 
코스로프 1세를 제거했던 아나크의 아들이라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부친과 함께
체사레아로 피신하여 살았는데, 그는 여기서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코스로프의 아들 티지다테스가 즉위하면서 그들의
귀향이 허가되었고, 그레고리오의 노력에 의하여
왕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그리스도 교회가
아르메니아의 국교임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아쉬티샷의 주교로 축성되면서부터
아르메니아 교회를 제도화시켰고, 이방인 성직자를
양성하여 복음화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그는 아르메니아의 사도로 공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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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오(Nicholas)
 
축일  10월 1일 
니콜라우스(Nicolaus, 또는 니콜라오)는 
고향 땅 아브루치(Abruzzi)에서 교구사제로
봉사하다가 로마(Rome)를 여행했는데, 이때
그는 수도생활에 대한 강한 성소를 느꼈다.
이리하여 그는 성 히에로니무스 회에 관련되는
회칙으로 은수자회를 설립했는데,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는
피렌체(Firenze)에 있던 폐허화된 어느
수도원을 하사하였다. 그 후 로마로 돌아온
그는 야니쿨룸에 또 다른 공동체를 세웠다.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함이 그의
행업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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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돔니노(Domninus)
 
축일 10월 1일 
 
성 돔니누스(또는 돔니노)는 막시미아누스 황제 때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그리스인들에 의해 10월 1일에 공경을 받는
성 돔니누스는 3월 30일에 기념하는 성 돔니누스와
같은 인물이다. 성 빅토르(Victor)와 약 10명의
일행은 다른 장소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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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데레사(Teresa)
 
축일  10월 1일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Basse-Normandie)의 
알랑송(Alencon)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Louis Martin)과
젤리 게랭(Zelie Guerin)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성녀 테레사
(Teresia, 또는 데레사)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
(Marie Francoise Therese Martin)이며,
소화(小花) 테레사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석 달 동안 심하게 알았는데, 때로는 경련과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의식을 잃기도
하였다. 그녀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테레사는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넘쳐 드는 것을 체험하였고,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잊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고 한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
즉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며 필요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혈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성탄절에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고통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테레사는 14세에
리지외의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청하였다. 이 카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테레사의
두 언니, 마리(Marie)와 폴린느(Pauline)가
입회해 있었다. 그러나 그 수녀원에서는
테레사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하였다. 테레사와 그녀의 아버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를 청하기도 하였고,
또 아버지와 언니 셀린느(Celine)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게
개인적으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다. 이때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 하고
대답하였는데, 그녀가 1888년 4월 9일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것은
나이 15세 때였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테레사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
(Marie Gonzague) 원장수녀에 의해서 생긴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였다.
테레사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생활에
열중하였다.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녀가 이룬 하느님과의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는
그 어느 수녀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1893년 테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다. 그녀의 ‘작은 길’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죽기 18개월 전에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죽기 얼마 전 병상에 눕기까지
테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1897년 9월 30일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은 일 년 후 카르멜 수녀회의 
통상 관습대로 그녀의 자서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여러 카르멜 수녀원에서 읽혀졌고,
이 자서전을 요구하는 부수가 점차 늘어나자
공식적으로 이를 출판하였다. 그 후 15년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테레사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이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 비오 11세는 테레사가 죽은 지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아기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선포하였다.
테레사는 로마를 순례한 것 외에는 
고향인 알랑송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살았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또한 1944년 5월 3일에는 성녀 잔 다르크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그녀가 남긴 저서로는
“성녀 소화 테레사 자서전”,
“성녀 소화 테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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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1873-1897)
축일;10월 1일
"나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리지외의 봉쇄 수녀원에서 숨어 살던
갈멜 수녀인 예수 아기의 데레사가 한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숨은 희생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영혼을 회개시켰던 것이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성인들 가운데서 이 젊은 
수녀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은 얼마 안된다.
그녀의 자서전과도 같은 '한영혼의 이야기'는
전세계에서 읽혀지며 사랑을 받고 있다.
데레사 마르탱은 15세에 수녀원에 들어가
24세가 되던 1897년에
세상을 떠났다.
갈멜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평온 
무사한 것이었고 주로 모든 집안 일을
하는 것이었다. 데레사는 시간을 구속한다는
거룩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시간은 따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은밀한 고통 안에서 구원의 고통을
보았으며 그 고통은 참으로 그녀의
사도직이 되었다.
데레사는 "영혼을 구하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갈멜수녀원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기 얼마 전에
"나는 지상에서 선행을 하면서 나의 천국에서
지내고 싶다."고 썼다.
설명 ; 데레사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소금'이라는 말과 그이미지에 대하여 많이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위험하리만큼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되었고
성취욕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데레사는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밖에 있는
어떤 것을 하려했으며 조용한 사랑의 행위로써
자신을 잊으려고 애썼다.
데레사는 우리가 생명을 잃으면 그 생명을 얻고,
땅에 떨어진 씨앗이 살기 위해서는 썩어야 한다는
복음적인 역설을 실지로 살아간 위대한 본보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현대인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동료들과 떼어 놓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리되게 만든다.
현대인은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을 배워야 하며,
자신의 밖으로 자신을 끌어 낸 하느님을 관상하며
자신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다른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이것이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가 지닌 직관이며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가치있는 것이다.
인용 ; 성녀 데레사는 일생 동안 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어렸을때 데레사는 석 달 동안이나 병석에 누어 있었는데
그 어려운 고비를 겪고 의식을 잃어 정신이 계속 희미했다.
그 후 그녀는 계속 허약했으나 그래도 수녀원의 식당과
세탁실에서 힘든 일을 했다.
데레사는 심리적으로 신앙의 빛이 모두 꺼진 것처럼
보이는 끝없는 어둠의 시기를 겪었다.
데레사는 그녀의 생명이 다해 가던 마지막 해에는
폐결핵으로 서서히 탈진되었다.
그래도 죽기 얼마 전인 9월 30일 그녀는
"아직도 나는 고통을 덜 받았다."고 중얼거렸다.
데레사는 참으로 장한 여인이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병과 고통을 하소연하며 운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을 아는 한 위인의 위대한 점이다.
허약함과 병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와 구원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연금술이기도 하다.
데레사가 선교의 수호자가 된 것에 대하여 이상한 점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을 사랑 안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외에 누사람들 이외에 누가 참으로
세상을 회개시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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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미지오(Remigius)
 
축일  10월 1일 
라옹(Laon)의 에밀리우스(Aemilius) 백작과 
성녀 칠리니아(Cilinia)의 아들로 태어난
성 레미기우스(또는 레미지오)는
성 프린키피우스(Principius)의 형이다.
랭스에서 교육받은 레미기우스는 학식이
뛰어나고 성덕이 높았기 때문에 불과 22세인
459년에 랭스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70여 년 동안 재직하면서
프랑크족의 개종을 시도하였다. 496년
이교도인 북부 프랑스 지방의 왕
클로비스(Clovis)가 그에 의하여 개종함으로써,
북부 전역에 그리스도 교회가 뿌리 내리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성 레미기우스는 열렬한 정통교회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아리우스파(Arianism)를
적극 몰아냈으며, 어느 아리우스파 주교를
회개시킨 사례도 있다. 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힘찬 주교였고, 프랑크족들의 사도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황 레오 9세는
1049년 성인의 유품들을 생 르미(Saint-Remi)
대수도원으로 옮겼다. 레미(Lemi)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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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로마노 작곡가(Romanus the Melodist)
 
축일  10월 1일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비잔틴 찬미가 
저자로서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는 유대인 출신인 듯하며 홈스에서
이주해온 시리아 사람이다. 그는
베이루트(Beirut)에서 부제로 지냈고
그 후 콘스탄티노플로 왔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다만 수천 곡의
찬미가 가운데 80여 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 찬미가는 매우 극적이고
생기발랄하며 전례에 꼭 맞는 아름다운
시들인데, 현대인의 취향에는 다소 긴듯하고
또 산만한듯하게 느껴진다고도 평을 하지만,
뛰어난 영성과 신앙을 묘사하는 가사들이다.
로마누스는 소위 콘타키온이라 부르는
찬미가 형태에 전통적인 형태를 부여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첫 번째
시는 성탄을 노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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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멜로로(Melorus)
 
축일  10월 1일 
성 멜로루스(또는 말로로)는 
브르타뉴(Bretagne)의 콘누이이유 공작
밀리아누스의 아들인데, 일곱 살 때
그의 삼촌 리볼두스가 밀리아누스를
살해하고 권력을 빼앗았다. 이리하여
그는 강제로 어느 수도원에 수용되었는데,
이때 그는 14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신심이 탁월하고 또 여러 가지 기적이
계속하여 일어나자 그를 두렵게 여기던
삼촌이 그의 부하를 보내 살해하였다.
성 멜로루스의 성화는 로마(Rome)에 있는
영국 대학 성당 벽에 걸려있다.
밀로르(Mylor)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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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보(Bavo)혹은 알로윈(Allowin)
축일  10월 1일  
성 바보는 부유한 지주로서 훌륭한 부인을 
맞이하였으나, 그의 생활은 아주 무질서하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은 지
얼마 뒤부터 그는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 아만두스(Amandus)의 지도하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리하여 그는 성인을 따라
프랑스와 플랑드르(Flandre) 지방의 전교여행에
수행하면서 자신의 지난 생활을 크게 속죄하였다.
우연한 어느 기회에 바보는 전에 농노로 팔았던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사람을
다시 풀어주고 켄트의 원장 플로베르투스의
수도원 근방 숲에서 은수자로 살게 만들어
주었다. 그 후 바보 자신도 은수자로 여생을
살다가 성 바보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운명하였다.
알로윈(Allowin)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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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리시무스(Verissimus)
성녀 율리아(Julia) 
성녀 막시마(Maxima)
축일 10월 1일  
 
성 베리시무스(Verissimus)는 그의 자매인
성녀 율리아와 성녀 막시마(Maxima)와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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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레타(Aretas)와 504명의 동료 순교자들
축일 10월 1일  
 
비록 로마 순교록의 10월 1일자 목록에
성 아레타와 504명의 동료 순교자들에 대해
언급되어 있으나, 그들은 나그란(Nagran)의 순교자로
 알려져 10월 24일에 기념하는 이들과
동일인물일 수 있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은 분명히
성 아레타와 504명의 동료 순교자들이 로마(Rome)에서
순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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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리스쿠스(Priscus)
성 크레스켄스(Crescens) 
성 에바그리오(Evagrius) 
 
축일 10월 1일 
 
성 프리스쿠스(Priscus)와 성 크레스켄스(Crescens)
그리고 성 에바그리우스(또는 에바그리오)는
흑해 연안의 토미(Tomi)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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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10월 1일
 
요한(Joannes)은 체코의 두클라에서 태어나
일생을 거의 다 은수자로 살았다. 그러나
그가 로오우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면서부터 선교 활동에 전념하였는데,
그의 설교와 표양은 수많은 루테니아인
(Ruthenian, 고대 키예프와 러시아 주민)들을
개종시켰으며 후스 이단자 개종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폴란드(Poland)와 리투아니아
(Lithuania)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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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Francis) 
축일  10월 1일  
체코라고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
(Franciscus, 또는 프란체스코)는 처음에
프란치스코 3회원이 되어 살다가
이탈리아 페자로의 몬테 산 바르톨로메우스
(Bartholomaeus) 언덕 위에 은둔소를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생활 태도와
자비심이 크게 돋보이게 되자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어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런 생활을 거의 50년이나 하였다.
또한 그는 성 미켈리나 메텔리로 하여금
‘자비회’를 설립하도록 도왔고, 알메테로에
순례자를 위한 집을 세우기도 하였다.
교황 비오 9세(Pius IX)는
그에 대한 공경을 승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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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제르, 주교(679년 순교)
축일 : 10월 2일
그는 663년에 오텅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아주 엄격한 주교로 소문났다.
그러나 그는 뜻하지 않는 정치극에 휘말리게 되어
주교좌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적들로부터 살해당하였다.
이때문에 그는 순교자로도 공경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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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아톤(Piaton)
 
축일 10월 1일 
 
이탈리아의 베네벤토(Benevento)에서 태어난
성 피아톤은 교회 초기의 복음선포자로서
벨기에의 투르네(Tournai)와 프랑스의
샤르트르(Chartres) 지방을 복음화하였다.
그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로마
당국에 의해 투르네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7세기에 성 엘리기우스(Eligius)에
의해 발견되어 샤르트르에 모셔졌다.
그는 피아트(Piat)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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