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오늘의 성인♡ =============== 성 프란치스코(Francis) 축일 10월 4일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또는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인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 (Pietro Bernadone)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의 부친이 출타 중인 틈을 이용하여 어머니가 요한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프랑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개명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젊은 날을 무모할 정도로 낭비하고 노는 일로 보내다가 기사가 될 꿈을 안고 전투에 참가했지만 1202년에 투옥되었다.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잠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듯 보이다가 중병을 앓았고, 병에서 회복한 뒤로는 딴사람이 되었다. 그는 스폴레토(Spoleto)에서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내 교회를 고쳐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옛 생활을 청산하였다. 그는 버려진 옛 산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에서 들은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아버지의 가게에서 물건을 내다 팔아 성당을 수리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부친과 결별하게 되었고, 허름한 농부의 옷을 입고 ‘가난 부인’을 모시는 통회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고, 3년 후인 1210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Innocentius III)가 극도의 가난을 살려는 그와 11명의 동료들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작은 형제회’, 곧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본부는 아시시 교외 산타 마리아 데글리 안젤리 (Santa Maria degli Angeli)에 있는 포르치운콜라(Porziuncola) 성당이었다. 이 작고 허름한 성당에서부터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수도회는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나무로 성장하였다. 이탈리아 내외를 두루 다니면서 형제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단순한 말로 가르쳤다. 그들은 재산과 인간적인 지식 소유를 거부하였고 교계 진출 또한 사양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사제가 아니었고 다만 부제였다고 한다. 1212년에 그는 성녀 클라라(Clara)와 함께 ‘가난한 부인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때 그는 모슬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찾아갈 정도로 선교에 대한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1219년에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가 술탄 말레크 알 카멜의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결국 사라센 선교가 실패로 끝난 줄 알고 성지를 방문한 뒤에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1217년부터 이 수도회 안에는 새로운 기운이 치솟기 시작하여 조직이 강화되면서 발전의 폭이 커졌다. 관구가 형성되고 잉글랜드 (England)를 비롯한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참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스스로 장상직을 사임하였다. 이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재중에 몇몇 회원들이 수도회의 규칙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알고 우고리노(Ugolino) 추기경의 도움으로 규칙을 확정짓고 승인을 받았다. 1224년 그가 라 베르나 산에서 기도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입었는데, 이것은 최초로 공식 확인된 오상이었다. 그리스도의 오상은 그의 일생동안 계속되면서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으며, 2년 후에는 ‘자매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지금도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공경은 세계 도처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가 세운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도 다른 재속회원과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그의 성덕을 본받고 가난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그는 이탈리아어로 ‘태양의 노래’를 지었다. 그는 1226년 10월 3일 운명하였고, 1228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또한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Paulus II)는 그를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아시시의 가난뱅이 프란치스코 만큼 교회 안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다시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는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 성 카이우스(Cajus), 성 파우스투스(Faustus),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성 카이레몬(Chaeremon), 성 루키우스 또는 루치오(Lucius) 축일 10월 4일 성 카이우스(Cajus), 성 파우스투스(Faustus),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성 카이레몬(Chaeremon), 성 루키우스(또는 루치오)와 동료들은 257년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 중에서 성 카이우스와 성 파우스투스는 아마도 10월 3일에 기념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와 함께 순교한 이들과 같은 인물로 보인다. ================================ 성 마르코(Marcus) 성 마르키아누스 또는 마르치아노 (Marcianus,) 축일 10월 4일 성 마르코(Marcus)와 그의 형제인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또는 마르치아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이집트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과 함께 순교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다른 순교자 그룹과 중복된 듯하다. ================================ 성 베드로(Peter) 축일 10월 4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주교인 성 베드로(Petrus)는 이슬람교가 그 지역을 점령했을 때 모하메드를 반대하는 설교를 한 이유로 이슬람교도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를 체포한 사람들은 그를 고문하고 장님으로 만들고 십자가형에 처한 뒤 결국 참수하였다. ================================ 성녀 아우레아(Aurea) 축일 10월 4일 성 엘리기우스(Eligius, 12월 1일)는 프랑스 파리에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의 수녀원을 설립하였고, 633년에 시리아 태생의 성녀 아우레아를 그곳의 원장으로 선택하였다. 성녀 아우레아는 역병으로 인해 160명의 다른 수녀들과 함께 죽기 전까지 33년 동안 원장으로서 수녀원을 돌보았다. ================================ 성 베드로니오(Petronius) 축일 10월 4일 리옹(Lyon)의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에 의하면, 성 베드로니우스(또는 베드로니오)라는 청년이 리옹 시의 중요 직책을 맡고 있던 중 수덕생활을 위하여 세속의 고귀한 신분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팔레스티나 (Palestina)로 여행했는데, 거기서 그리스도교 유물을 수집하기 위하여 많은 세월을 지냈다고 한다. 432년 그는 볼로냐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교회 수리 업무를 제1차 목표로 선정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의 여러 성소를 그대로 재현하는 교회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 성 암몬(Ammon) 축일 10월 4일 성 암몬은 니트리아(Nitria)에 수도원을 세운 최초의 이집트인 교부라고 불린다. 이 말은 확실치는 않지만 암몬이 이집트 사막에서 가장 유명한 은수자였음에는 틀림없다. 부유했던 부모가 죽은 뒤 그는 삼촌과 친척들의 강요에 따라 결혼을 하였으나, 성 바오로 (Paulus)가 로마서에서 결혼보다 동정을 강조한 부분에 매력을 느끼고 이미 동정서원을 하였기 때문에 아내를 설득하여 한 지붕 밑에서 동정을 지키며 18년을 함께 살았다. 그 동안에 그는 사막의 은수자가 되는 훈련과 고행을 끊임없이 계속하다가 반대자들이 모두 물러선 뒤에 니트리아로 들어갔다. 한편 그의 아내는 자기 집에 수도자 생활을 꿈꾸는 여성들을 모았고, 암몬은 6개월에 한번씩 와서 그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지금은 와디 나트런이라고 부르는 니트리아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남동쪽 70마일 거리에 있다. 성 암몬의 제자들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가 함께 모여 사는 편이 낫다는 말을 할때까지 모두가 독립된 움막에서 살았다. 암몬과 안토니우스는 가끔씩 서로를 방문하였다. 암몬은 62세의 일기로 선종했는데, 그와 13일 거리나 떨어진 곳에 살던 성 안토니우스는 암몬의 운명 시각에 그의 영혼이 하늘로 떠올라 가는 것을 환시로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다. ================================ 성 카이우스 또는 카이오(Caius) 성 크리스포(Crispus) 축일 10월 4일 성 카이우스(Cajus, 또는 카이오, 가이오)는 그리스보(Crispus)와 함께 코린토스(Corinthos)에서 성 바오로(Paulus)에게서 세례를 받았고(1고린 1,14), 성 바오로의 동료가 되었으며(로마 16,23), 요한(Joannes)의 셋째 편지의 수신인이다. “원로인 나는 친애하는 가이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진정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요한 1,1) 전승에 따르면, 코린토스의 회장이던 그리스보(사도 18,8)는 아이이나(Aegina) 섬의 주교가 되었고, 카이우스는 테살로니카 (Thessalonica)의 주교로 일하다가 순교하였다. ================================ 성 퀸시오(Quintius) 축일 10월 4일 프랑스 투르(Tours) 태생인 성 퀸티우스 (또는 퀸시오)는 프랑크 왕궁의 관리였다. 그가 여왕의 그릇된 음모를 반대했을 때 여왕은 그를 축출하여 몽트레소르(Montresor) 교외 인드로와스에서 목을 베었다. 그의 순교는 그리스도교 신앙 문제와 직결된 사건이므로 순교 성인으로 공경받는다. 퀸투스(Quintus)로도 불린다. ================================ 성 히에로테오(Hierotheus) 축일 10월 4일 성 히에로테우스(또는 히에로테오)는 교사이자 그리스 아테네의 아레오파고(Areopagos)의 판사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친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사도 바오로(Paulus)의 제자요 주교였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거나 그를 성 디오니시우스보다 후대 (4세기 또는 5세기)의 인물로 본다.
오늘의 성인(10월4일)
2014. 10. 3. 오후 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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