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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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체타스 (Nicetas)
축일 : 10월 6일
그는 황녀 이레네의 집안인 관계로
궁중 관리로 재직하던 중, 787년의
제 2차 니체아 공의회 궁중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 이 즈음에 그는
시실리의 지방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므로 철수한 뒤,
콘스탄티노블에 있는 크리소니케 수도원에서
수도자로 생활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성상을
가지고 몇몇 수도자와 더불어 수도원을 떠났는데,
그 이유는 레오 5세 황제가 성상 파괴를
재개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성상파괴주의자들을 피하여 늘 이곳 저곳으로
피해다니다가, 마침내 파플라고나아의
카타시아에 피난처를 마련하여 여생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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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룰 (LULL)
축일 : 10월 6일
웨스트 색손국의 잉글랜드 사람인 룰은
자신이 공부했고 또 서품받은 말머스버리
수도원에 교육기관을 세웠으나, 선교 사명을
새로이 자각하게 되자 독일로 건너가
성 보니파시오의 영접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위대한 성인과 함께 사도직을 수행하였지만,
그를 반대하는 박해도 많았다. 그 후 751년에
성인의 심부름으로 로마에 갔다가 프리시아를
거쳐 마인쯔로 갔다. 성좌는 롤의 선교지를 풀다
교구에서 면속시키므로써 마인쯔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매우 정열적인 사목자였으며, 거의
30여 년 동안이나 교구를 다스려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또 그의 학덕은 프랑스와
로마에까지 널리 알려졌고, 기도와 단식 그리고
미사에 관한 세부지침 등을 마련하여 지키게
했으며, 교황의 서거일에는 합당한 미사를 봉헌하고,
또 동료들의 사망시에도 미사를 의무적으로
봉헌케 하는 등 놀라운 배려를 했던 최초의
주교이다. 만년에 그는 헤르스펠트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귀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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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Mary Francisca)
축일 10월 6일
성녀 마리아 프란치스카(Maria Francisca)는
안나 마리아 로사 니콜레트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16세 때에 부친이 어느 집안의 자제와
혼인하도록 강요하였으나 자신은 이미 하느님만
사랑하기로 결심한 후였다. 그러므로 그의
부친은 그녀를 방안에 가두고 빵과 물만 주는 등
갖은 학대를 하였으나 그녀는 이것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한 단계로 받아들이고 인내하였고,
어머니가 그녀를 설득하려 하자 자신은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겠다는 뜻만 밝혔다.
이리하여 그녀는 1731년 9월 8일에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는데, 그녀의
주요 신심은 주님의 수난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녀는 그 후 38년 동안이나 교구사제인
돈 요한 페시리의 사제관에서 일하였다.
마리아는 신비스런 현상들이 몸에서 일어남을
감지하기 시작했는데, 십자가의 길이나
사순절의 금요일이 되면 예수 수난에 버금가는
고통을 앓기 시작하였으니 게세마니(Gethsemane)
동산의 번뇌, 매 맞음, 가시관을 쓰심, 모욕,
침 뱉음, 죽음에 이르는 고통 등이었다.
사실 그녀는 오상 성흔을 이미 받았던 것이다.
이외에도 그녀에게는 신체적인 고통이 따랐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자발적인 고행까지 행하였다.
한번은 연옥 영혼들의 고통을 체험하였다.
마리아 프란치스카는 프랑스 혁명 초기까지
살았다. 그녀는 이 혁명의 무서움을 미리
예언하였다. 유해는 나폴리의 산타 루치아 델몬테
성당에 묻혔고, 1867년에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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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브루노(Bruno)
축일 10월 6일
성 브루노는 독일 쾰른(Kol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좋은 교육을 받은 것 외에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지만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고 전해진다. 쾰른의 성 구니베르토
학교를 거쳐 프랑스의 랭스(Reims)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1055년경에 쾰른으로 되돌아 와서 사제로
서품되었고, 다시 1056년에 랭스로 가서
신학교수가 되었다. 다음 해에 그는 그 학교의
학장이 되어 1074년까지 재직하였다.
그때 그는 성직매매로 랭스의 주교좌를 획득했던
자신의 대주교 마나세(Manasses)를 탄핵하는
일에 앞장섰다. 브루노는 그를 고발하고
그의 직책에서 사임을 요청하여 이를 성취하였으며,
이를 눈여겨 본 랭스의 교구민들이 그를 대주교로
원하였으나 그는 은수생활을 결심하였다.
그는 1082년 마침내 2명의 동료와 함께 랭스를
떠나 몰렘(Molesme)의 성 로베르투스(Robertus)의
지도하에 은수자가 되었지만, 1084년에 그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그르노블(Grenoble)로
이주하여 적막한 알프스 산 속에 은수처를
마련하였다. 그르노블의 주교인 샤토뇌프의
성 후고(Hugo)는 샤르트뢰즈(Chartreuse)라는
장소를 브루노에게 제공해주었다.
이곳에 브루노와 동료들은 경당과 개인 방을
만들고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며 생활하였다. 이것이 곧
카르투지오회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극도의
가난생활을 하기 위하여 노동하고 기도하며
성서를 베끼는 작업을 하였으나, 그들의
규칙을 글로 쓰지는 않았다.
1090년 브루노는 옛 제자였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의 부름을
받고 로마(Rome)로 갔다. 교황의 명에 순명하여
은수처를 떠난 브루노는 이후 교황의 고문으로서
성직자들의 개혁 등 교회의 여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협력하였다. 얼마 후 브루노는
교황을 설득하여 다시 은수생활로 돌아가게
되었다. 로마를 떠나 제자들과 함께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에 정착한
브루노는 샤르트뢰즈에서와 같은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들의 생활에 감명을 받은
시칠리아(Sicilia)의 영주 로제(Roger)
백작으로부터 라 토레(La Torre)의 땅을
기증받아 이곳에 ‘라 토레의 성 마리아’라는
은수처를 설립하고 운명할 때까지 엄격한
은수생활을 하였다. 또한 그는 시편과
성 바오로(Paulus)의 편지들에 대한 주석을 썼다.
공적인 명예를 거부하는 카르투지오회의
규칙에 따라 공식적으로 시성식을 거행하지
않았고, 다만 레오 10세 교황이 1514년 그를
구두로 시성하여 카르투지오회 내에서 브루노에
대한 공경 예절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162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축일이 10월 6일로 정해졌으며,
1674년에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는
모든 교회가 브루노의 축일을 지키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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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피데스(Fides)
성녀 알베르타(Alberta)
축일 10월 6일
성녀 피데스에 대한 공경은 중세기에
확산되어 특히 잉글랜드(England)와
프랑스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녀는 아마도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아쟁에서
순교한 듯 보이나 순교사회는 신빙성이
결여된다고 한다. 성 바오로(Paulus) 대성당의
지하 성당이 이 성녀의 본당이었다는 말도
전해온다. 순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루어졌고, 벌겋게 달군
놋쇠 위에서 고문을 받다가 거룩하게 순교하였다.
성녀 알베르타(Alberta) 역시 성녀 피데스와
함께 처형되었는데, 이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첫 번째 순교자 중의 일원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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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피파니아 (Epiphania)
축일: 10월 6일
파비아의 수도승이었다.
성녀는 Retrude라고도 불리운다.
Rachis(744-749) 왕의 딸로 태어났다.
성녀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영광을 위해
토요일에는 음식을 먹지않는 봉헌을 하였다.
성녀의 생애동안 놀라운 기적을 많이
일으켰으며, 수도승 생활을 46년간 살았으며,
796년경 10월 6일에 64세의 일기로 임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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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뇨(Magnus)
축일 10월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에서 태어난
성 마그누스(또는 마뇨)는 트레비소(Treviso) 지방
오데르초(Oderzo)의 주교가 되었다.
그런데 638년 롬바르드족(Lombards)이 쳐들어왔을 때
그는 자신의 주교좌를 헤라클레아
(오늘날의 치타 누오바, Citta Nuova)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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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가르(Sagar)
축일 10월 6일
성 사가르는 프리지아
(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 지방
라오디케아의 주교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사도 베드로(Petrus)의
제자였다고 하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통치 중에 순교하였다. 그는 사갈(Sagal)로도 불린다.
오늘의 성인(10월6일)
2014. 10. 4. 오후 10: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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