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조선대목구 설정과 선교사의 입국
4절 조선교회를 위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노력
1829년 5월 28일
시암 대목구장 플로랑 주교 브뤼기에르 신부를 갑사명의 주교와 시암 대목구 부주교로 임명
1829년 5월 29일
파리 신학교........조선 자원 편지
라미오 신부.......북경 오래 체류. 한문지식 해박. 조선사정 잘 알 것이라 판단, 조선 입국 경로 등 자세한 정보 얻기 위해.
1829 6월 9일
로마 포교성성......조선 선교사 의사 밝힘.
갑사명의 주교, 시암 부주교라고 자칭
(6월29일 성성) 파리외방 조선선교 간청
1829년 6월20일
플로랑 주교 역시 포교성성에 소 주교결심지지. 조선 선교지 파 견 동의. 더 큰 영광위해 소 주교 양보.
1829년 10월1일
욕심에 의한 강변 아닐까 오해 소지 해명
1830년
페낭섬 파견(시암 대목구 소속)
파리외방선교회 신학교가 있음 (아시아 지역 대목구에서 파견한 신학생 모아서 교육. 일명 연합신학교)
1830년 1월 31일
다시 교황청에 조선 파견 간청 편지
(1829년 샤스탕신부 페낭부임, 조선 신자들에게 관심)
* 반대의견
움피에레스(마카오)신부..... 로마 포교성성에 편지 (1829 11, 17)
랑글로와(파리신학교).....포교성성 편지(1830 6,11)
북경교구나 남경교구와 포루투갈 선교사 사이에 갈등우려
북경교구와 조선은 동지사를 파경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계유지 바람직
프랑스는 너무 멀다. 소주교의 열정으로 조선이 아니라 시암 부근 다른 선 교지도 발견가능
시암 대목구 형편상 남는게 낫다( 플로랑 주교 61세 연로)
1833년 9월 파리외방 선교회 조선 선교지 관할 결정으로 첫 번째 난관
해결....소 주교 1832년 9월1일 및 11월 9일자 서한 포교성성에 간청
르그레즈와 신부가 1833년 9월 13일자 소주교에게 파리외방의
조선대목구 관할 결정 서한을 보냈으나 2년 뒤에 (1835년) 서만자에 서 알게됨.
5절 조선대목구 설정
교황 비오 8세 1830년 11월 30일 선종
카펠라리 추기경(그레고리오 16세)교황 즉위
전 포교성성장관, 1824년 유진길 편지 받음 , 랑글로와 신부와 교섭, 소 주교의 조선 선교사 간청 편지 받은 장본인.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재임기에 파리외방선교회와 조선 교회 문제를
시급히 해결 하고자함.
이유는 파리외방본부의 미온적 태도와 마카오 주교의 부정적 의견.
* 새 포교성성 페디치니 추기경 주재로 회의
안건....중국, 인도, 북경교구 관련 조선 선교지 거론
결정.... -브뤼기에르 청원 허락
-중국 신학생 먼저 들어가서 주교입국 수월토록 준비할 때 까지
기다려야한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떠나면 새로운 부주교 임명권 부여
-북경교구에서 독립된 대목구를 조선에 설정하는 것은
소 주교가 조선으로 들어 갈 수 있을때에 허락한다.
- 조선대목구를 파리외방에 위임하느냐 포교성성 직할이냐는
소 주교가 조선에 충분히 안전하게 체류 할 수 있게 된 후로
결정 연기.
단서조항....소 주교 조선 입국을 준비하는 신학생 먼저 파견.
(유방제 신부 242쪽 참조)
두 달 뒤 교황 소칙서 반포
- 조선 대목구 설정
-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임명(갑사 명의 주교 그대로 유지)
이즈음 소 주교 싱가폴 선교지 관련 열중.....엉뚱한 소문(자신의 제안 수포)
6 조선대목구 설정 의의
교황청의 선교 정책과 관련 정리.
조선대목구 설정은 아시아 천주교역사에 중요한 의미.
조선대목구 설정으로 중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포루투갈 보호권 실질적 축소
(대목구 신설 설치)
마카오교구, 북경교구, 남경교구 세 교구의 포루투갈 주교는 보호권 적음.
교황청 직손 대목구 증설 재편성.....격렬한 반항(1831년 최고조)
요동지방 파리외방 선교사 숙소 제공 금지....대목구 신설반대, 부임 방해
소주교 요동지방 북경교구 분리 건의....박해 시 선교사 임시 피신처
신학교 세워 사제양성
소 주교 방해로 끝내 입국 불가......1835년 10월 20일 병사(43세)
교황청 1835년 보호권 약화 조치 다시 시작....방해책 진두지휘하던
남경교구장 겸 북경교구장 서리 피레스 페레이라 주교 1838년 사망
으로 두 교구장 공석. (통 폐합 과정 253~254쪽 참조)
*모든 궁극적인 목적은 포교성성이 직접 아시아 선교를 관장하여 유럽 국가들의 간섭을 배제하고 오직 신앙적인 관점에 입각한 통일적인 선교정책을
펼치려는데 있다.
* 조선대목구가 설정된 성공이유
-성직자 보내 달라는 조선 신자들의 열성적인 청원이 근동력
-감동한 포교성성 관계자들의 도움
-소주교의 근본적인 사명 자각
-기득권 포기하면서까지 헌신적 태도로 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