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정해박해
1. 박해의 원인
1827년 2월 전라도 곡성군 사기막골터의 덕실마을에서 남한산성의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의 아들 한백겸이 새신자인 주막주인 전씨의 부인에게
행패를 부리자, 평소 천주교신자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던 전씨가 신자들을 곡성현감에 고발한 일
2.박해의 전개
박해의 불길이 곡성, 장성, 순창, 임실, 고산, 전주 등 전라도를 휩쓸었고 전주감영에서만 240여명의 신자들이 수감 되었다.
심문과정중 다른 신자들의 이름이 드러났고, 그들 중에는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신자들이 있어 결과적으로 박해는 다른 지방에까지 번져 나갔다. 예를 들면, 경상도 상주의 신태보, 서울의 이경언, 충청도 단양의 박경화 등 이리하여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서울등지에서 2~5월까지 넉 달 사이에 500여명이 체포되었고, 20여명이 순교를 하였고 나머지는 배교하여 석방됨으로써 정해박해가 종식 되었다.
전라도지방의 천주교회는 거의 궤멸상태에 빠지게 된 정해박해는 어느 박해와는 달리 그 기간이 짧았으면서도 탄합의 정도가 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3. 박해의 순교자들의 특징
첫째) 그들의 출신 : 조선사회에서 일정한 지위를 지녔던 가문출신
이성지/이성삼형제 – 무관의 양반 집안 출신
박보록 – 충청도 홍주의 부유한 양반가문 출생
신태보 – 양반 출신
김세박 – 김범우의 친척이며 중인인 서울의 역관 집안
김사건 – 충청도 서산의 부유한 중인 집안 출신
정태봉 – 충청도 덕산의 양인 가문 출생
둘째) 신앙활동의 특징: 신앙서적을 베껴 보급하고, 상본을 그리는 등 서적을
통해 신앙을 전하는 활동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김세박, 안군심 – 교회 서적을 필사해 팔아서 생계 유지
이성삼 – 천주교 서적을 베껴 주기도 하고 팔기도 함
신태보 – 샤스탕신부님 요청에 의해 옥중일기를 씀
이경언 – 이순이 루갈다의 동생으로 옥중수기를 씀
셋째) 비신자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일에 열심.
이일언, 신태보는 주변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선교함
넷째) 신앙생활을 위해 이주한 점: 신유박해이후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이리 저리 이주함.
이안드레아,이성지와 이성삼,김세박,안군심,이재행,신태보등.
다섯째) 긴 옥살이 였다는 점.
전라 감사 이광운은 추위와 굶주림에 약한 인간의 나약함을 매우
교묘하게 이용해 붙잡힌 교우들의 많은 수를 배교하게 했다.
사형의 시행을 가능한 피하였고, 사형선고가 내려져도 무한정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긴 옥살이의 고통으로 많은 배교자가 생기고 옥살이
도중에 병사하거나 기해박해가 몰아 닥쳤을 때 순교하였다.
이성지와 안군심이 9년, 김사건, 신태보, 김대권, 이재행, 이일언,
이태권, 정태봉이 12년에서 13년이였다.
그래서 이들은 기해박해의 순교자가 아니라 정해박해의 순교자로
분류해야 옳을 것이다.
여섯째) 이들이 체포된 경위가 대개 이웃이나 배교자등에 의한 밀고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 천주교에 대한 경계심과
공포심이 팽배했음을 알려 주는 동시에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순교를
각오하며 지켜 나갔던 신자들의 신앙심을 드러내준다.
긴 시간을 옥에서 지내면서도 끝까지 신앙에 흔들림이 없던 정해박해
순교자들은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 특별히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