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조선대목구 설정과 선교사의 입국
제1절 조선대목구의 설정
조선교회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교구 설정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대목구로 발전하였으며, 무척이나 낯선 먼 유럽 땅 프랑스에서 주교와 사제들이 조선 대목구를 담당하는 선교사로 오게 되었을까?
1. 조선교회에 대한 교황청의 관심
1824년(혹은 1825년) 유진길등이 교황께 올린 서한이 조선교회를 북경교구에서 분리시켜야한다는 내용의 포교성성 마카오 대표부 책임자 옴피에레스 신부 의견서를 첨부하여 로마로 전달되었다. 교황청 내에서 해외선교에 대한 새로운 열기가 고조되던 시점에 전달되면서 이 서한은 성직자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교황청이 나서기는 난관이 많았다. 우선 조선교회에 재치권을 행사하고 있던 북경교구의 상황으로 모든 방안을 위임할 수도 없었고, 파드로아도(보호권)때문이기도 했다.
16세기 이후 포르투갈의 아시아지역 패권상실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추구하고 선교사들의 전횡이 계속되자 교황청은 선교활동의 순수성 보장과 선교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포교성성 설치나 파리외방전교회 같은 선교단체 설립등, 보호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감행하게 되었다.
북경교구의 권리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포교성성의 궁극적인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고 있었다.
2. 교황청과 파리 외방전교회의 교섭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되시는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은 유진길의 서한을 접수하면서 유럽의 선교회들 중에 조선 선교를 단독으로 감당할 곳으로 먼저 예수회와 교섭을 벌였지만 실패하고 프랑스에 있던 파리 외방전교회로 눈을 돌렸다.
1827년 9월1일, 1827년 11월 17일, 두 차례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 장상인 랑글로와 신부에게 조선의 신자들을 맡아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여러 사정들을 언급하며 조선 선교지를 맡는 일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였고 의견을 개진하는 동안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교섭이 연기되는 듯하였다. 한편 카펠라리 추기경은 1828년 1월 26일 다시 편지를 보냈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조선 선교지를 담당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과 함께 파리 외방전교회관할의 시암대목구와 관련된 두 가지 내용을 담은 교황의 소칙서가 반포되었음을 전하였다. 그것은 대목구장에게 계승권을 지닌 부주교를 임명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과 대목구장이 사망하였을 경우 그 권한을 브뤼기에르 신부가 행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3. 브뤼기에르 신부의 청원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파리 외방전교회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조선이라는 새로운 선교지를 맡을 여력이 없어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의사를 밝히면서 조선교회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끊어질 위기였다.
이때 파리 신학교 본부에 1829년 5월 19일 날짜의 브뤼기에르 신부의 도착으로 조선교회의 운명은 기사회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포교성성과 파리 외방전교회간의 교섭이 계속될 때 파리 신학교에서는 조선 선교지 문제를 놓고 회원들의 의사를 묻기 위해 공동서한을 보낸적이 있다. 이 서한을 방콕에서 브뤼기에르 신부가 보게 된 것은 1829년 초였지만 편지를 받기 전부터 조선교회에 대해 들은바 있었음이 1827년 2월 파리 신학교의 랑글로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나 있고 조선이라는 나라와 그곳의 신자들에 대해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진취적인 기상의 브뤼기에르 신부는 공동서한을 읽으면서 애초에 조선 선교를 맡을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느끼고 가엾은 조선 신자들의 절박한 간청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즉시 교구장 플로랑 주교와 상의하였다. 그의 뜻에는 동의하지만 자신의 뒤를 이어줄 사람으로 점찍어둔 브뤼기에르 신부의 의욕은 불안하기도 하였다. 일단 승계권을 가진 부주교로 임명하기에 이르고 브뤼기에르 신부 역시 주교의 임명이 조선 선교에 도움이 될 것을 예견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과 결심을 담아 파리 신학교 장상들과 각지의 회원들에게 서한을 작성하여 1829년 5월 19일 보냈다. 조선 선교의 어려움을 밝힌 변명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이라도 조선 선교사를 자원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이 편지를 통해 브뤼기에르 신부의 열정과 만나보지도 못한 조선 신자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공동서한에서 제시된 내용에 대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각
1) 기금의 부족은 전교회의 후원금과 포교성성의 보조금으로. 그러나언제나 자금은 부족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따르는 걱정은 있지만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느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선교지들을 도와주신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할 뿐
2) 선교사가 없다. 가장 설득력 없는 이유. 언제 어느 때라고 더 많은 지원자가 있었던 적이 없었지만 열심한 조선의 신자들이 여러 번 교황께 올린 편지를 구해 신학교에 보내 학생들에게 보게 한다면 많은 선교사를 갖게 될 것이다.
3) 다른 선교지에도 부족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저 불쌍한 조선 사람들의 경우만큼 절박하지는 않다. 지구 반대편 끝에서 온갖 유혹과 허약한 신앙을 이겨내기 위해 도움을 간청하는 조선 선교지에 대해 책임이 없다, 아직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4) 입국이 힘들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조선 사람들은 편지를 로마에 까지 보낼 수 있었는데 신부 한 사람 그 나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겠는가! 비록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 하여도 당신의 사도들을 모든 민족들에게 가서 가르치라 하실 때 조선을 빼지 않으셨다면 하느님께는 불가능하지 않으것이다.
5) 마지막으로 충분히 검토하고도 미루어야 한다고 결정이 된다면 아주 간단한 계획 하나를 제안하려 한다. 포교성성과 장래의 약속은 하지 말고 지금은 신부 1,2명 정도만 보내겠다 제안하고, 이 위험한 사업을 기꺼이 맡는 것은 제가 주교님께도 말씀드렸고, 교황청에도 편지를 보냈으니~~ 저 열심하고 불쌍한 새 신자들의 운명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4. 조선교회를 위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노력
5. 조선대목구의 설정
6.조선대목구설정의 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