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11,05) -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2004. 11. 5. 오전 10: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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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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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필립비 3,17-4,1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내가 벌써 여러 번 여러분에게 일러 준 것을 지금 또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며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오실 구세주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주님을 믿으며 굳세게 살아가십시오.


복음 루가 16,1-8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청지기 한 사람을 두었는데 자기 재산을 그 청지기가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청지기를 불러다가 말했다. ‘자네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짓인가? 이제는 자네를 내 청지기로 둘 수 없으니 자네가 맡은 일을 다 청산하게.’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 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겠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 주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진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팔십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 주었다.
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진 일본의 한 작은 도시에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나쁘다보니 이 부부의 마음에도 여유가 없어졌고요, 그러다보니 예전과 같은 사랑이 가득한 부부 사이의 모습이 아니라 툭하면 다투는 부부가 되었지요. 그래서 남편은 차라리 아내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다투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가게 앞을 왔다 갔다 했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손님이 늘기 시작했고요, 여전히 파리를 날리는 여느 식당과 달리 이 식당만은 손님이 줄을 이었다고 하네요.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서 식당을 찾은 손님들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은 그 식당 주인이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는 이 식당의 음식 맛이 얼마나 좋으면 이 불황에도 주인이 저렇게 쉴 틈 없이 배달을 다닐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손님들이 남편의 행동이 아내와 싸우기 싫어서 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 식당을 찾아오지 않았겠지요. 대신 남편의 그 행동이 장사가 잘되는 한 징표로 알았기에 오히려 불황을 극복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한 행동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우리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하느님과 우리의 해석은 또 얼마나 다를까요? 그런데도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떤 한 행동에 대해서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는 생각보다는 한 가지의 해석, 즉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해석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요? 그리고 그러한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느님이나 내 이웃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약삭빠른 청지기의 비유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주인의 재산을 잘 관리하지 못한 청지기. 그래서 주인은 해고하려 합니다. 이 사실을 알은 청지기는 아주 난감해 하지요. 늘 책상에 앉아서 펜대를 굴리던 사람이 막노동을 할 수도 없고, 구걸을 하자니 자신의 체면에 먹칠하는 것 같고……. 그러던 중에 그는 하나의 꾀를 씁니다.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반절이나 1/4을 탕감해 줌으로써, 자신이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자기 집에 맞아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히 주인이 볼 때는 어떨까요? 부정직한 모습이고 그래서 당장 큰 벌을 내려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주인은 청지기의 이 부정직한 모습을 칭찬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어떻게 약삭빠르고 부정직한 청지기가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바로 우리들의 고정되고 편협된 생활을 바꿔서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사과 10개가 있고, 10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이 사과를 어떻게 나누면 될까요? 하나씩 나누면 공평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공정한 분배는 바로 인간의 뜻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공정한 분배가 늘 최고는 아니라고 하십니다. 만약 그 중에 배고픈 사람이 있다면 배부른 사람은 갖지 않고 배고픈 사람이 하나 더 갖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도 못 갖고 또 어떤 이는 여러 개를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지기의 부정직함을 배우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만을 내세우는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오늘이 되길 기도합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그 사람을 바꾸려 들지 마세요. 오히려 그를 도와주십시오. 아마 그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겁니다.



사소한 행복이 우리를 아름답게 한다

우리는 약간의 이익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행복한 삶이란 나 이외의 것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식어 버린 불꽃이나 어둠 속에 응고된 돌멩이가 아니다.

별을 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발에 채인 돌멩이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행복은 시작된다.

사소한 행복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몇 푼의 돈 때문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을 버리는 것은 불행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다.
하루 한 시간의 행복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댓글 1

  • 2004년 11월 7일 오전 10:34

    우리는 항상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모든것을 판단하곤 으쓱거리지요. 주님 이 교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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