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11,02) - 위령의 날

2004. 11. 2. 오전 9:37:52

글자

2004년 11월 2일 위령의 날
재생 클릭!!


제1독서 욥기 19,1-23-27ㄴ
욥이 말을 받았다. "아, 누가 있어 나의 말을 기록해 두랴? 누가 있어 구리판에 새겨 두랴? 쇠나 놋정으로 바위에 새겨, 길이길이 보존해 주랴?
나는 믿는다, 나의 변호인이 살아 있음을! 나의 후견인이 마침내 땅 위에 나타나리라.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제2독서 로마서 5,5-11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얻었으니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하느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던 때에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하물며 그분과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에 와서 우리가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하게 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으로 우리는 지금 하느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복음 마태 5,1-12ㄱ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겋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날 때부터 허약한 체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약한 체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은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힘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이렇게 집 안에만 갇혀서 100년을 사느니 세상을 돌아다니며 1년을 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생각 뒤 그는 끊임없이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체력이 길러지자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신경마비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선 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도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을 달려야 하는 경기는 그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체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그는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마지막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해변 길을 달리고 있는데 조금 앞에서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달리는 여인이 보입니다.

석양빛에 물든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에서 약간 어색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빨리 달려서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습니다.

그가 다가가자 여인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눈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페달을 밟은 그녀의 발이 하나뿐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그녀와 함께 달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경기를 포기해야겠다고 가졌던 생각을 버립니다. 왜냐하면 한 발로 그날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여인의 모습에서 큰 용기를 얻었거든요.

자신은 두 발을 가지고도 힘들어하며 괴롭게 달리고 있는데 그 여인은 한 발로도 웃으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한 발만으로도 웃으며 달릴 수 있다면, 두 발이 다 있는 자신이 웃지 못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자주 갖게 되는 착각은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런 착각에 빠질 때, 우리 주위에는 우리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또한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최선을 다해 웃으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문제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위령의 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그 분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이런 위령의 날을 정한 것은 돌아가신 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서 똑바로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위령의 날은 과거에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날인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얼마나 제대로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즉, 내게 다가오는 그 많은 시련과 고통에 대해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잃지 않고 그 뜻에 맞게 똑바로 살고 있나요?

주님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세상에서 살기 전에 지금 우리에게 있는 이 시간에 충실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최선의 방법을 따를 때, 오늘 복음에 나오는 행복선언이 바로 내게 진정으로 다가오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날 것 그대로(‘풍경’ 중에서, 2004.11)

야생에 사는 생명은 비만이 없습니다.
늘 민첩하게 움직이느라
사람처럼 살이 찔 여유가 없어서일까요?
약육강식이라는 치열한 생존 방식 탓일까요?
모두 맞는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제 양껏만 먹기 때문이랍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입니다.
경치가 좋아서 다들 산으로 들로만 나가기 때문에
오죽 했으면 마음의 양식을 쌓으라고
‘독서의 계절’이라고 소리높여 강조하겠습니까?

스스로 만족하고 욕심을 버려야 할 것과
삶을 위해 진정 살찌워야 할 것을 구분하는 11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언젠가는 나누어지니까요.

댓글 1

  • 2004년 11월 2일 오전 9:41

    위령의 날~죽은 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도 아무런 후회없도록 현재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