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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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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필립비 1,1-1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오로와 디모테오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필립비의 모든 성도들과 교회 지도자들과 그 보조자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나는 여러분을 생갈할 때마다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복음을 전하는 데 협력해 온 것을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에게 훌륭한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계속하실 것이며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수호하고 입증할 때에 나와 함께 은총을 나누어 받으며 고생을 같이 해 온 사람들로서 항상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니 내가 여러분을 그런 생각으로 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지극한 사랑으로 여러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하느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기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참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추어 점덤 더 풍성해져서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순결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게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올바른 일을 많이 하여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 루가 14,1-6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예수 앞에는 수종 병자 한 사람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일이 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병자의 손을 붙잡으시고 고쳐서 돌려 보내신 다음 그들에게 다시 물으셨다. "너희는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다면 안식일이라고 당장 구해 내지 않고 내버려 두겠느냐?"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못하였다.
오늘 새벽,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일어난 시간이 4시. 평소의 기상 시간은 2시에서 3시 사이인데,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인지(김종성 신부님 대신 인터넷 방송을 했었답니다) 4시에 일어난 것이었지요.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저는 무척 바빠집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요. 그 중의 한 가지가 알람시계를 켜 놓는 것이지요. 두 개의 알람시계는 물론 핸드폰까지 알람을 맞춰서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이 새벽에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알람시계가 고장 났을까? 아니었습니다. 다시 돌려서 알람을 확인해보니 모든 시계와 핸드폰은 정확하게 소리를 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피곤해서 그랬을까요? 약간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귀를 막고 잔 것도 아닌데, 그 모든 소리를 하나도 못 들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요.
이유는 이것이었습니다. 어제 저는 잠자리에 들기 전,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그리고 제가 즐겨보는 스포츠 채널을 보다가 그냥 잠든 것입니다. 따라서 끄지 않은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소리를 내었던 것이고요, 시계가 일어나라고 알람 소리를 요란하게 내어도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로 인해서 들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소리로 인해서 꼭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면서 내 일상의 삶에서 꼭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소리는 저의 내면에서 계속 외치시는 주님의 말씀이지요.
주님께서는 늘 말씀하십니다. 다른 소리를 듣고서 그대로 따라하지 말고,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사랑만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말씀보다는 나의 편함과 나에게 이득이 되어 보이는 말이 왜 그토록 크게 들릴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의 지도자들인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꾸짖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에 그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에 틀린 이야기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에 동감을 하면서도 이제부터 예수님을 제거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자리를 유지해주는 악의 말에 더 귀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 말씀을 잘들을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드러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나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리고 내게 어떤 손해가 다가오면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나 역시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면 결국은 악마의 소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타적인 삶, 즉 사랑의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삶이 가득 찬 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이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이제 나를 죽이고 대신 주님을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을 가르쳐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침묵 속에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교만과 아집의 굴레(칼릴지브란의 아름다운 생각에서) 편견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편을 나누어 아군과 적군으로 구분합니다.
계층과 파벌에 따라 맹목적으로 찬성하고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의 경우도 그렇고 정치의 상황도 그렇습니다.
혹은 우리의 이웃과도 그렇고 가족 간에도 그런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믿고 있는 그런 아집과 집착은 올바른 것일까요?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에 사는 우리끼리 그런 구분을 한다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일까요?
대답은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