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10,23) -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2004. 10. 23. 오후 9: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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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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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페소 4,7-16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각각 다른 은총을 알맞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성서에도,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사로잡은 자들을 데리고 가셨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셨다."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올라가셨다는 말은 또한 땅 아래의 세계에까지 내려가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내려가셨던 바로 그분이 모든 것을 완성하시려고 하늘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선물을 은총으로 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 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인간의 간교한 유혹이나 속임수로써 사람들을 잘못에 빠뜨리는 교설의 풍랑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랍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와 같이 하여 사岵막?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복음 루가 13,1-9
바로 그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빌라도가 희생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하여 그 흘린 피가 제물에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일러 드렸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변을 당한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 탑이 무너질 때 깔려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죄가 많은 사람들인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 나무에 열매가 열렸나 하고 가 보았지만 열매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포도원에기에게 '내가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따 볼까 하고 벌써 삼 년째나 여기 왔으나 열매가 달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아예 잘라 버려라. 쓸데없이 땅만 썩일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하였다.
그러자 포도원지기는 '주인님, 이 나무를 금년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때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어 버리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었을 때 아버지 몸에서 5억 마리의 정자가 나오는데 그중에서 가장 빠른 정자 한 마리만 어머니 난자에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죽게 된다. 난자 속에 들어간 정자 한 마리만 어머니 배 속에서 열 달 동안 자란 뒤에 이 세상에 한 아기로 나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순간 제 자신이 무척이나 뿌듯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냐하면 나는 5억 중에서 1등을 한 선택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우수한 존재인 동시에 특별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하고 특별한 우리들이 잘못되는 것을 주님께서 원하실까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복음을 통해 아주 강한 어조로 그리고 바른 이해를 위해서 비유 말씀까지 동원해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망할 것이다.”

사실 당시의 사람들은 병에 걸린 삶,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하느님의 벌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못되는 것은 바로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내가 못나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요. 이렇게 자신 없는 행동들을 가지면 가질수록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안에서도 예수님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 있을 때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 삶 안에서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 하면서 주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따라서 주님께서는 귀하고 특별한 우리들이 이러한 쓸데없는 생각으로 괜한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아무런 일도 내게 닥치지 않는다 해도, 회개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즉, 안일한 삶을 간직한다면 결국은 쫄딱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배 따뜻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죄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착각을 갖지 말고, 더 열심히 죄를 짓지 않기 노력하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사랑 가득한 말씀에 대해서 우리들은 어떤 식으로 응답하고 있나요?

“네~~”라는 자신감 있는 어조로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하십니까? 아니면 “아니,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라는 자신 없는 행동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우리는 5억 중에서 특별히 뽑힌 사람입니다. 그만큼 특별한 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 각자는 사랑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이제까지의 안일한 삶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맞게 생활하는 것 뿐…….


나는 할 수 없다고 주저한 적은 없나요? 오늘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해봅시다.



어린 소년의 눈물

어느 날, 할아버지 한 분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암 진단을 받은 그 날부터 이 할아버지는 매우 난폭해져 식구들을 향해서 욕을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욕을 퍼붓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고 병실에 입원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간호사와 의사들에게까지도 포악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할아버지의 옛날 친구들을 들여보냈지만 친구들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기의 친구들에서 큰 소리를 치며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이번에는 할아버지와 절친하게 지냈던 은사들을 보내보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신부님을 보냈더니 신부님도 욕만 먹고 쫓겨났습니다. 카운슬러를 들여보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 동네에서 이 할아버지가 가끔 만나던 동네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쫓아왔습니다. 식구들이 반 호기심으로 '그럼 네가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만나 봐라' 하며 그 아이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30분 동안 어린 소년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오더니 그 이후로 이 할아버지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태도가 갑자기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고 사람들도 만나시고 얘기도 하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이상해서 그 어린 소년을 붙들고 묻습니다.

'너, 할아버지하고 무슨 얘기를 했니?'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할아버지하고 20~30분 동안 함께 있었잖니, 너는 그동안 도대체 뭘 했니?'

그랬더니 그 어린 소년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요, 할아버지하고 같이 울었어요.'

댓글 1

  • 2004년 10월 25일 오후 2:55

    마음이 열려 있는 꼬마속에 주님이 오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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