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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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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페소 6,1-9 자녀 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하신 계명은 약속이 붙어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그 약속은,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고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것입니다.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 남의 종이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의를 다하여 자기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눈가림으로만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사람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기쁘게 섬기십시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가 종이든 종이 아니든 각기 주님께로부터 그만한 상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주인 된 사람들도 자기 종들에게 같은 정신으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종들을 협박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나 여러분에게 주인이 되시는 분은 하늘에 계시며 또 그분은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대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복음 루가 13,22-30 그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되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할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은 다 하느님 나라에 있는데 너희만 밖에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성탄절 아침, 한 아이가 성당의 말구유 속에 모셔진 예수님 형상을 세발자전거에 싣고 마당 안을 내닫고 있는 것이었어요. 이 광경을 사무실에서 보고 깜짝 놀란 신부님께서는 달려가서 아이를 붙잡고 예수님의 형상을 거두어 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무어라고 신부님께 말하는 것이었어요. 신부님께서는 난처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결국 빈손으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사무실에 있었던 사람들이 왜 빈손으로 오시냐고 묻자 그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에게 자전거를 주면 아기 예수님을 첫 손님으로 태워주겠다고 하느님께 약속을 했다네요. 그리고 어젯밤, 성탄절 선물로 부모님에게서 자전거를 받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키는 중이랍니다.”
어린 꼬마의 순수한 마음에 제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면서 주님께 대한 나의 행동들을 반성하게 됩니다. 기도를 하면서, 또한 일상의 삶 안에서 얼마나 주님께 많은 약속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많은 약속에 대해서 충실한 모습을 한 번도 주님께 보이지 않았던 저의 잘못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주님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또한 수많은 약속 위반을 하고 있으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생활하고 있는 이기적인 내 자신도 동시에 바라보게 되네요.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 안 되겠지요?”
이 사람이 말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은 다 하느님 나라에 있는데 너희만 밖에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이 부분을 통해, 앞선 질문을 던진 사람은 바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바로 자신들은 선택받았다고 스스로 주장했던 유다인들이었지요. 결국 이 사람이 말한 의도는, 자기를 비롯한 유다인들은 당연히 구원받을 것으로 제쳐두고서 다른 이방인들은 선택된 민족이 아니니 구원받지 못할 것이 아니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생각에 대해서 일침을 던지십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하느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고 기억하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에 대한 신학적인 지식과 교리를 깊이 알고 깨닫고 있다 하더라도, 진정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그리고 내 삶의 가장 귀한 중심 자리에 모시지 못한다면 결국은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보다는 구원의 가능성이 더 많겠지요.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형편없이 산다면, 그들은 그 좁은 문에서 지나온 삶을 후회하면서 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께 대한 약속을 계속해서 위반하였던 이기적인 내 모습을 반성하는 이 아침. 내 자신의 구원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뜻에 맞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누구와 한 약속이든지 약속을 했다면 꼭 지킵시다.
삶을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가을 명상집 "삶이 아름다운 이유" 中에서) 먼저 크고 깨끗한 마음이라는 냄비를 준비한 후 냄비를 열정이라는 불에 달군다. 충분히 달구어 지면 자신감을 교만이라는 눈금이 안보일 만큼 붓는다. 자신감이 잘 채워지고 나면 성실함과 노력이라는 양념을 충분히 넣어준다. 우정이라는 양념을 어느 정도 넣어주면 훨씬 담백한 맛을 낼 수 있으니 꼭 잊지 말고 넣어준다.
약간의 특별한 맛을 원할 경우 이성간의 사랑을 넣어주면 좀 더 특별해진다.
이 사랑이 너무 뜨거워지면 집착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생기지 않도록 불조절을 잘 해야 한다. 만약 생길 경우는 절제라는 국자로 집착을 걷어내면 된다. 이때 , 실패하면 실연이라는 맛이 나는데 이 맛은 아주 써서 어쩌면 음식을 망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 쓴맛을 없애고 싶을 경우 약간의 용서나 너그러움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넣어주면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 깊은 맛을 원할 경우는 약간의 선행과 관용을 넣어주면 된다.
가끔 질투, 욕심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계속 방치해 두면 음식이 타게 되므로 그때그때 제거한다. 또한 가끔 권태라는 나쁜 향이 생기는데 도전과 의욕이라는 향료를 넣어서 없앤다.
이쯤에 만약 삶이라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힘들어서 지치게 돼서 포기하고 싶어지면 신앙이라는 큰 재료를 넣어주면 새로운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기쁨이라는 맛이 더해 가는데 그 맛이 더해져 잘 어우러지면 진정한 자유라는 맛이 생기게 된다.
그 후에 평안과 감사함이라는 행복한 향이 더해짐으로 음식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이 향은 아주 특별한 것이라서 이웃에게 베풀어 주고 싶게 된다.
이정도면 어느 정도 요리는 끝난 셈이다. 마지막으로 진실이라는 양념을 넣어 한 소끔 끓인 후 간을 본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소스를 충분히 뿌려주면 이 모든 맛이 더욱 잘 어우러져서 정말 맛있고 깊은 맛이 나는 "삶"이라는 음식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