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10,26) -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2004. 10. 26. 오전 9:48:27

글자

2004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재생 클릭!!


제1독서 에페소 5,21-3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 아내 된 사람들은 주님께 순종하듯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의 구원자로서 그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주인이 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씻는 예식과 말씀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습니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티나 주름이나 그 밖의 어떤 추한 점도 없이 거룩하고 흠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 된 사람들도 자기 아내를 제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자기 몸을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 몸을 기르고 보살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를 기르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입니다.
성서에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으로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 준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서 남편 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고 아내 된 사람은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복음 루가 13,18-21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으며 또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겨자씨 한 알을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싹이 돋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겨자씨와 같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 덩이가 부풀어 올랐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누룩과 같다."





한 레스토랑에 두 명의 손님이 식사를 하려 왔습니다. 두 명이 자리에 앉자 웨이터가 메뉴판을 건네며 말합니다.

“손님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리고는 손으로 엉덩이를 자꾸 만지고 있는 것이었어요. 식사를 하려고 온 손님의 직업이 의사인지라 궁금하여 웨이터에게 이렇게 물었지요.

“혹시 치질 있습니까?”

웨이터는 그 말을 듣고 무뚝뚝하게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손님 메뉴판에 있는 것만 주문하십시오.”

분명 이 대답은 손님이 기대했던 답과는 다른 것이었지요. 오히려 이 사람은 자신이 원했던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 머쓱해지는 기분까지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늘 자신이 원했던 답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환상 속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을 곧잘 듣곤 하지요. 즉, 내 삶은 내 뜻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자주 이런 환상 속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런 환상 속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으로써, 언젠가는 과거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치하에서 누렸던 그 명성을 언젠가는 다시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스스로를 60~70미터 이상 자라는 레바논의 커다란 삼나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 겨자씨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유다인의 세계관에서 보면 질서는 거룩하고, 무질서는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밭에다 심을 수 있는 것들에 관해서도 아주 엄격한 규칙이 존재했었지요. 특히 겨자씨는 급속하게 퍼져서 다른 채소에 폐해를 입히기 때문에 밭에다는 심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를 밭에다 뿌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다음에 나오는 누룩 역시 그 당시에는 그렇게 좋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이 누룩은 부패의 상징으로 일상생활에서 불결한 것으로 표상되곤 했었습니다. 이처럼 부정한 것을 통해서 가장 거룩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니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었지요. 그보다는 하느님의 더없이 크신 일들이 거창한 형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대성전에서, 높다란 건물에서, 화려한 대형 무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 나라는 누구나가 언제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하느님 나라는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은밀하게 드러납니다. 나의 가족 안에서, 나의 친구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지요.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런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환상,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기쁘게 지금 현재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칩시다.



지식이라는 것(조원진의 '내 안으로 흐르는 바람' 中에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며,
지식은 쌓을수록 자신의 모자람에 부끄러운 겸손을 만든다.
지식이 있다하여, 그 지식만을 내세워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10년 이상 동안 공부를 해왔다는 과정을
권위로 내세우려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깨달음의 본질은 보지 못한 채
정보 전달이라는 지식의 단면만을 보고
습득한 수집자에 불과 할 것이다.

지식을 쌓건, 예술을 하건, 집안에서 작은 화초를 가꾸건 간에
그의 주어진 삶과 목표에의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는 이미 삶의 범주를 초월한 범인일 것이다.
자연의 이치와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 속의 난제에 해답을 주는 스승일 것이다.

댓글 1

  • 2004년 10월 26일 오전 9:52

    남편된 사람은 아내를 그리고 아내된 사람은 남편을 사랑하며, 존경해야 합니다,오늘의 말씀 되새깁니다,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