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10,03) -연중 제27주일 다해

2004. 10. 3. 오후 12: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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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3일 연중 제27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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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하바꾹 1,2-3; 2,2-4
"주님,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이 소리,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호소하는 이 억울한 일, 언제 풀어 주시렵니까? 어인 일로 이렇듯이 애매한 일을 당하게 하시고 이 고생살이를 못 본 체하십니까? 보이느니 약탈과 억압뿐이오, 터지느니 시비와 말다툼뿐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받은 말을 누구나 알아보도록 판에 새겨 두어라. 네가 본 일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끝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쉬 오지 않더라도 기다려라. 기어이 오고야 만다.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제2독서 디모테오 2서 1,6-8.13-14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다시 그대를 깨우쳐 줍니다. 내가 그대에게 안수했을 때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그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시오.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우리 주님을 위해서 증인이 된 것이나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죄수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시오.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얻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생활 원칙으로 삼으시오. 또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그대가 맡은 훌륭한 보화를 잘 간직하시오.


복음 루가 17,5-10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니까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농사나 양 치는 일을 하는 종을 데리고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어서 와서 밥부터 먹어라.' 하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오히려 '내 저녁부터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 나서 음식을 먹어라.' 하지 않겠느냐? 그 종이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아주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제목은 ‘아기가 열 받을 때’입니다. 정말로 아기가 열 받을 만한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1. 싼 데다 또 쌌는데도 “요즘 기저귀는 참 좋아”하면서 안 갈아 줄 때.
2. 자기가 낳아 놓고는 “누굴 닮아 이렇게 못 생겼어”하며 푸념할 때.
3. “아빠, 엄마”도 발음하기 힘든데 “작은 할머니 해봐”하고 조를 때.
4. 아무 데서나 벗기고 기저귀 갈 때(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말야~).
5. 기는 것도 힘든데 고작 새우깡을 미끼로 걸어 보라고 꼬실 때.
6. 자꾸 웃으라고 윽박지를 때(삶이 늘 행복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어때요? 생각해보니까 아기들이 이럴 경우에 열 받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을 열 받게 하는 행동들을 유심히 쳐다보니까, 내가 나의 이웃들에게 행하는 모습인 동시에 또한 주님께 하는 행동과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내 중심의 사고라는 것이지요. 나의 기준에 맞춰서 상대가 행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에 나의 이웃은 얼마나 열 받을까요? 또한 우리가 믿고 따른다는 그래서 사랑한다고 감히 말하고 있는 주님께서는 얼마나 화가 나실까요?

오늘 복음에서도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을 하라고 했는데, 우리들은 이 모습과 정반대로 주님을 내 밑에 두고서 행동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원숭이 한 마리가 완두콩이 가득 찬 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원숭이는 기뻐하며 두 손에 완두콩을 한 움큼씩 쥐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다른 원숭이에게 빼앗길까봐 나뭇잎 뒤에 숨어서 맛있게 완두콩을 먹고 있었어요.

그때 원숭이 손 안에 있던 완두콩 한 알이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습니다. 순간 원숭이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손에 쥐고 있던 완두콩을 전부 놓칠 뻔했지요. 얼른 땅으로 내려온 원숭이는 몸을 숙이고 나무 근처를 살폈습니다. 그러나 떨어진 완두콩은 잘 보이지를 않는 것이에요.

마침내 원숭이는 두 손에 쥐고 있던 완두콩을 모두 내버린 채 떨어진 완두콩 한 알을 찾는데 온 신경을 쏟습니다. 나무 주위를 샅샅이 뒤졌지만 완두콩 한 알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원숭이는 천금을 잃은 듯 한숨을 푹푹 쉬면서, 자신에 손에 쥐고 있었던 완두콩까지 내버린 채 빈손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두 손 가득히 있던 완두콩 중에서 단 한 개의 완두콩은 아주 작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연연하다보니 결국은 두 손 가득히 있던 완두콩마저 잊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도 이런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즉,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두 손 가득히 들어있는 주님의 사랑을 버려두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들은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은 반드시 행동을 뒤따르게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세요. 그들이 그냥 말로만 ‘사랑해’라고 말합니까? 분명히 행동으로 그 사랑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노력을 지금 당장 실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주님께 해야 할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말만 하는 사랑이 아닌, 행동을 하는 사랑을 합시다.



포기하지 말라(‘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의 여행’ 중에서)

때로는 잘못되더라도
그대가 터벅대며 걷는 길이 오르막이더라도
자금은 부족하고 빚은 늘어나더라도
미소를 짓고 싶어도 한숨만 세어 나오더라도
근심이 그대를 짓누르더라도
그래, 필요하다면 쉬어라. 하지만 포기하지는 말라.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는 법.
수많은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지 않던가?
성공의 기운이 엿보이면 그 기운을 꼭 잡으라.
성공이 뒤늦게 찾아온다고 포기하지 말라.
어느 날 불어온 바람이 그대에게 성공을 안겨줄 테니까.

성공은 실패에서 태어나는 법.
의혹의 그림자가 은빛으로 물들더라도
그대는 성공이 가까웠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까이 있을 수 있을테니까.
그대에게 커다란 시렴이 닥치더라도 싸움을 포기하지 말라.
최악의 상태로 치닫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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