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의 은총(어느 자매님의 글 중에서)

2015. 7. 22. 오전 11:14:08

글자

출퇴근하면서 묵주기도를 하기 시작하니, 좋은 점이 있다.

타인에 대한 쓸데없는 관심을 줄이게되고,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그런 시중의 뉴스로 머리가 소란스럽지 아니하고

그 시간에 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많아졌다.

가만히 성모송을 반복적으로 외다보면,

꼭 아이가 엄마에게 보채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 막무가내식 보챔과 그렇게 할 수있다는 어머니에 대한 포근함이 이 기도의 시작이 아닐까...

 

하찮은 자존심으로 무장한 나, 우리들..

뭘 내세울게 있다고 그렇게 눈에 핏발 세우며 다투며 분개했나...

출근할때는 전투에 나서는 전사처럼 비장한 각오로 나서, 나도 모르게 그런 세월 동안 얼굴에 험한 주름이 잡히지 않았나...

어머니에게 그냥, "엄마 잘못했어요, 그런데 이것 좀 들어주시고 저것도 들어주세요"할 수만 있다면.

일이 잘되고 안되는 것도 하느님의 뜻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 무시를 당해 화가 날때도, 우리 예수님만큼 모욕받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생각만 할 수 있어도,

얼마나 행복인가.

 

죄의 원천은 내가 아닌 타인의 것에 대한 관심과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타인의 물건부터, 내 여자 아닌 다른 여자에 대한 관심과 욕심 등 등...

 

주님이 주신 은혜인,

자기에게 주어진 배우자와 그로 인한 가족들과 함께

포도나무를 풍성하게 키우듯이 잘키우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텐데,

그런 자기 손의 축복은 모르고 남의 손의 떡만 보며 갈등하고 살아가는 형상이란!

그런 곁눈질의 시작이 마귀의 유혹이다.

그런 곁눈질의 유혹을 이겨내고 자기 옆의 같이 늙어가는 주름진 아내를 보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답고 고귀한 사람이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한창때의 사람들은 아름답다.

이브가 선악과를 보고 반해서 따먹었듯이, 그런 아름다움 속에는 가시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 누군가를 위해 최대한 아름다워지기 위해 피는 꽃임을 알아야하고,

그것은 나를위한 꽃이 아니고, 나에게는 선악과와 다름없다는 것을 직시해야한다.

 

걸어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바치는 묵주기도는, 지향하는 기도도 들어주시고,

나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시고, 이런 마귀가 오지 않도록 막아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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