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내 어머니/ 김수환 추기경

2006. 1. 18. 오전 10:25:59

글자


어머니, 내 어머니
어느 날, 가을 들녘이 보고 싶어 시골에 내려갔다.
어느 수도원 손님 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제치고 창문을 여니 가을 하늘 아래 뜰 가득히 피어난
코스모스가 눈에 확 들어왔다. 상쾌한 아침 공기와 함께
그 모습이 얼마나 청초하고 아름다운지 잃어버린
옛 고향 집을 다시 찾은 것만 같았다. 내가 어릴 때 그런
아름다운 뜰이 있는 집에 살아 본 일이 없건만 나의 마음의
고향, 어머니의 모습이 그 꽃밭에서 미소 짓는 것만 같았다.

      우리 어머니는 코스모스처럼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신 데다가

      젊었을 때에는 분명히 그렇게 수려한 분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어머니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나는 이 글을

      쓰지만 어머니의 무엇을 어디서부터 쓰면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신 분, 나를 있게 하고 나를 가장

      사랑하신 분, 나를 위해서는 열 번이면 열 번 다 목숨까지라도

      바치셨을 분… 그런데 나는 아직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이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어머니는 가끔 다리에서 바람이 난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의 뜻을 오랫동안 전혀 알지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내 몸에서 느껴 알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어머니의 무엇을 쓰면 좋을지 알 수가 없다.

      20여 년 전 독일에 있을 때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ich)가 독일

      국회에서 정초에 연설하는 것을 방송으로 들은 일이 있다.

      그 때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독일, 독일, 이 세상 모든 것 위에

      뛰어난 독일… 이라는 우리 독일 국가의 뜻은 결코 객관적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우리 독일이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독일이라는 나라는 어머니 같은 존재요,

      마치 우리 어머니가 객관적으로 평범한 한 여성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세상 제일 가는 어머니듯이

      그렇게 우리 독일도 우리에게는 제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

      내게 있어서도 우리 조국 한국이 제일이고, 우리 어머니 서중화

      여사가 세계에서 제일 가는 어머니시다. 서중화 여사(徐仲和女史).

      여기 `여사'는 내가 우리 어머니에게 처음 붙여 보는 칭호이다.

      가신 지 30년이 되어 가는 우리 어머니는 살아 생전에 그런 대접을

      받아 보신 일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여사'라는 존칭을 붙여야

      할 만큼 사회적 신분이나 학벌이 있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 어머니는 당신의 이름 석자와 하늘 천(天), 따 지(地)

      정도의 기초 한문과 한글 외에 아시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옹기 장사를 하신 우리 아버지와 결혼하신 후, 가난에 쫓겨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옹기나 포목을 이고 다니며

      파는 생활을 거의 평생토록 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말띠였는데

      말띠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대로 그렇게 팔자가 드세다면 드셌다고

      할 수 있는 한평생을 힘겹게 사신 분이시다. 내 마음에 새겨진

      우리 어머니의 영상은 늙으신 모습이다. 70여 년의 온갖 풍상으로

      주름진 그런 모습이다. 그러나 근엄하시면서도 미소를 지으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어머니는 연세가 많아질수록 얼굴이

      더 밝아지시고 미소가 많아지셨던 것 같다. 남편과 자식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신 분… 차츰차츰 삶을

      믿음 속에 받아들이시고 초탈해지셨기 때문일까? 혹은

      당신이 원하신 대로 아들 둘을 신부로 만드시고 뜻을

      다 이루셨기 때문일까? 또는 귀여운 손자 손녀들 때문이었을까?

      우리 어머니에게는 확실히 여장부의 기질을 엿볼 수가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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