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아기를 가졌다.

2005. 11. 6. 오후 10:3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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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아기를 가졌다 요한은 독자들로 하여금 계약궤의 출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맞이하도록 준비시킨다. 예를 들면, 재앙을 가져오는 일곱 번째 천사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 뒤에 계약궤가 나타났다고 요한은 전한다. 이것은 옛 계약의 이스라엘에게는 분명하게 다가오는 암시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큰 전쟁을 벌였을 때, 하느님은 선택된 백성에게 계약궤를 앞세우고 전투에 임하라고 명하셨다. 특히 묵시록 11장 15절은 여호수아서 6장 13절을 연상하게 한다.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예리고와 전쟁을 하는데, 6일 동안 7명의 사제들이 앞장서서 계약궤를 모시고 성읍 주변을 돌다가 7일째 되는 날 일제히 나팔을 불자 그 성읍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계약구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였다. 왜냐하면 그 궤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보호와 권능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한 묵시록도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천상 이스라엘 역시 계약궤가 현존하는 가운데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같이, 계약궤는 특별히 굉장한 효과를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궤가 보이면서,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떨어졌습니다"(묵시 11,19) 당신이 1세기에 유다인으로 성장한 독자라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한 번도 계약궤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당신의 모든 종교적 문화적 소양은 당신으로 하여금 계약궤가 성전에서 복구되기를 갈망하도록 가르쳐 왔다. 요한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독자들을 거의 희롱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계약궤에 수반되는 요란한 소리와 격렬함을 묘사허고 있다. 거의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도록 극적인 긴장을 끌어가고 있다. 독자는 요한이 계약궤를 보는 것처럼 자신도 그것을 보기를 원하게 된다. 그런데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을 보면 어딘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성서를 보면, 11장 끝 부분에서 잘 나가다가 느닷없이 삐걱거리면서 끝난다. 요한은 우리에게 계약궤를 약속하지만, 그 약속 장면은 갑작스럽게 끝나 버리고 만다. 그런데 묵시록을 몇 개의 장으로나누는 것은 - 다른 성서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 중세의 성서 필사자들에 의해 인위적이고 강제적으로 조정된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한의 원본 묵시록에서는 장의 구별이 없었다. 곧, 묵시록은 죽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11장 끝 부분에서 이미지들에 대한 직접적인 머리말처럼 소개되는 특별한 효과들이 이제 12장 첫 부분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함께 묶어 하나의 사건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앞에 있는 계약궤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묵시11,19-12,2) 요한은 이렇게 우리에게 계약궤를 보여준 것이다. 계약궤는 바로 여인이다. 묵시록은 참으로 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앞에서 우리는 도시로 나타나는 신부를 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부인으로 나타나는 계약궤를 본다. - 말씀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어머니 - 「거룩하신 모후님, 하례하나이다」에서 스코트 한 지음/ 정광영 옮김/ 성바오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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