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모성애에 대한 사랑겨운 논리

2005. 10. 21. 오전 3: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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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모성에 대한 사랑겨운 논리

어머니는 가장 연구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어머니는 우리의 정밀조사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어머니는 그 본성을 보든 또는 '어머니'라는 단어의 정의定義를 보든 상대적인 존재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만 '어머니'로서 고려될 수 있다. 이 관계만이 어머니가 자신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고, 우리의 관심을 잡아 끄는 것이다. 자연은 어머니와 태아를 생애 첫 9개월 동안 개체로서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가깝게 이어 준다. 어머니와 태아의 몸은 서로 주고 받는다. 임신기간 동안에 그들은 같은 음식, 같은 피, 그리고 같은 산소를 함께 나눈다. 자연은 아기가 출생 후에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어머니의 가슴에 의존하게 한다. 갓난아기의 눈은 겨우 어머니의 눈과 맞출 정도만 볼 수 있다. 갓난 아기의 귀는 어머니의 심장의 박동소리와 여성 특유의 높은 음조의 소리만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자연은 아기의 민감한 피부가 더욱 편안한 기분을 느끼도록 여성의 피부까지도 그의 남편의 피부보다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몸과 정신을 다해 자신을 초월해서 자기 자녀들을 위해 헌신한다. 그런데 자연이 자녀를 어머니와 이처럼 가깝게 이어 주는데도,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알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신비스런 존재이다. 체스터톤이 쓴 책「브라운 신부」에 이런 말이 나온다. "때로는 사물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눈에 띄지 않을 때가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그야말로 훌륭하신 어머니이다. 그래서 모든 어머니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마리아를 파악하기란 더욱 어렵다. 모든 어머니가 자신을 내어 준다면, 성모 마리아는 더욱더 자신을 내어주신다. 모든 어머니가 자신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성모 마리아는 더욱더 그렇게 하신다. 참된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자신의 영광 따위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으신다. 결국 마리아는 자신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오로지 하느님의 명령만 이행하신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 마리아는 자신이 놀라운 은총들을 받았음을 깨닫는 순간에도 그것들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정한다.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이다"(루가 1,48).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마리아의 영혼이 '찬송'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다(루가 1,47 참조). 그런데 마리아가 늘 상대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토록 미묘한 주제에 접근할 수 있는가? 늘 자신은 뒷전으로 돌리고 당신의 아드님만 생각하시는 이 부인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시작할 수 있겠는가? 「거룩하신 모후님, 하례하나이다」에서 스코트 한 지음/ 정광영 옮김/ 성바오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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