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시절 친구랑
사우나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장난을 치다 그만 옆에 있던
아저씨의 배로 비누가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아저씨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따뜻했던
목욕탕이 냉동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저씨는 소위 말하는 깍두기 아저씨였습니다.
요것들이 죽고 싶나...
우린 때도 못 밀고 사우나를 떠야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하는 건
아저씨의 팔뚝 문신이었습니다.
착하게 살자.
그 아저씨에게 착하게 살자는 문신은
무슨 의미였겠습니까.
과연 그 아저씨가
착하게 살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몸에 그 글귀를 적어놓았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지는 건 더욱 아닙니다.
착하게 살려면
그만큼 자기의 희생을 감수해야합니다.
착한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 바보 같습니다.
하느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착한 나머지
얼마나 바보인지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제가 신학생으로 살아가면서
길을 잃고 방황 했을 때 적어놓았던
일기장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목자를 따라 양떼와 함께 지내다..
하루도 빠짐없이 똑같은 목자와 똑같은 양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풀들과 냇물은...
이제 지겨워집니다.
왠지 저 언덕 너머에는
맛있는 풀과 시원한 냇물이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몰래 목자와 양떼를 뒤로 하고
저 언덕을 넘어가 봅니다.
하지만 곧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왜 길을 잃었을까요.
목자의 소리와 지팡이에 집중하지 않고...
나만의 생각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더 맛있고 풍성한 풀들을 찾아...
가보지 못한 곳을 가려고 했습니다.
목자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우리를 데려다 주는데...
그냥 착한 목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되는데...
나 자신의
호기심과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해는 지려하고...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며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은...금세 싫증이 났고,
보기 좋던 꽃과 잎들도 금세 시들어버렸습니다.
이제 배까지 고픕니다.
육체적인 갈증과 허덕임은 견딜 수 있겠으나...
같이 지내던 양떼들이 보고 싶어지고...
무엇보다 늘 우리를 돌보아주던
착한 목자가 보고 싶습니다.
늘 같이 했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그 착한 목자의 눈빛이 그리워집니다.
이제 목자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
다시는 목자를 양떼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찹니다.
해가 지고...
멀리서 목자의 지팡이 소리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있는 힘껏 울음소리를 냅니다.
착한 목자는 나를 보고...
어디에 있었냐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면서...
미안하다고...
내가 오히려 잘못했다고...
곱고 자비 가득한 눈빛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울어버립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고
다시 받아주세요 라며.
말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제 입에서는
왜 이제야 왔냐고...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냐고...
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착한 목자를 다시 만난
안도감과 행복이 가득합니다.
비록 저를 업고 있지만 우리로 돌아오는
목자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집니다.
내가 뭐가 그리 소중한 사람이라고...
당신 목숨까지 걸고..
목숨까지 바치고 나를 찾아오십니까...
그냥 잃어버린 샘 치고...
없는 샘 치면 될 것인데...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보잘것없는
못 땐 어린 양 하나를 찾기 위해 온
사방을 뛰어 돌아다니며 고생했을 착한 목자.
정말 바보 같은 착한 목자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방황을 하더라도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고 찾아오십니다.
보잘것없는 우리를 위해
바보처럼 목숨까지 바치십니다.
이렇게 일기장을 읽으면서
다시금 예수님과 하나 되기 위해
용기와 희망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며,
그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십니다.
왜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칠까요.
그것은 양을 당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목자와 양은 하나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과 하나 되기 위해 사랑했고...
사랑하기 위해 인간과 하나 되기를
원하신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목자의 모습에서
우린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길 잃은 어린양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착한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던지 서로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금
서로에게 돌아와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학사님! 부제님! 왜 신학교 갔어요?
왜 신부님이 되려고 해요? 라는
성소에 대한 질문을
아주 많이 들었던 어제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착한 목자가 되길 바라며
지금 여기 이곳에 있습니다.
착한 목자를 닮기 위해선 무엇보다
착한 목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의 지금
이 자리에서 착한 목자의 마음으로
작은 일 하나부터 진심으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이것이 자기 양을 위해 목숨 바치는 길이고,
서로 하나 되는 길입니다.
물론 어렵고 고통이 뒤따르겠지만
예수님 닮은 착한 목자,
남을 위해 목숨 바치는 바보가 되어
우리 한번 착하게 살아봅시다.
그래서 착한 목자와
양처럼 하나가 되어봅시다.
사랑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어서 말입니다.
대구 가톨릭 신학대학교
이응찬 [요한] 부제님
음악:Joe Hisaishi - Sp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