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날로 발전하고 생활이 편리해지고 있지만 주님께 바치는 우리의 기도에는 주님께서 채워주셔야 할 부분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의학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수명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불치병들은 없어지지 않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병들이 많이 생겨나서 병원이 오히려 더 많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고 변해도 우리 삶의 영역에서 하느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부분이 항상 남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청원기도를 가르쳐주심으로써 이런 인간 실존의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서 일곱 가지 청원은 바로 이런 인간 삶의 현실과 아울러 그 목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한계를 말씀드리며 도움을 청하는 후반부 네 가지 청원은 이 전반부의 청원들, 즉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함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바치는 매일의 청원기도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를 위해 필요한 것이 되도록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청해야 할 것인지를 분별할 시간을 가진다면, 이미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더 많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청원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아직 부족한 것을 하느님께 말씀드린다고 한다면, 감사기도는 이미 우리가 받아서 채워진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감사기도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는 동안 감사기도를 바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주님께 왜 여러 가지 기도를 다 가르쳐주시지 않느냐고 묻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청원기도만 제대로 바칠 줄 안다면 다른 모든 기도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사실 감사기도는 샘에 물이 넘치듯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면 저절로 나오는 기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기도를 바치지 못하는 것은 감사기도가 무엇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입으로만 감사하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감사기도는 하느님께 전달되지 못할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감사기도를 잘 안 드린다고 한다면, 하느님께 감사드릴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은 아마 레지오 단원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고 세속적으로 기울면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남보다 나아지려는 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에 가득 찬 기도나 바리사이 같은 교만한 기도를 바칠 수는 있지만, 겸손한 세리의 기도는 좀처럼 바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성모님의 마니피캇 같은 우렁찬 감사의 기도는 감히 생각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레지오 단원들이 바쳐야 할 가장 훌륭한 기도는 성모님께서 바치신 마니피캇과 같은 감사기도여야 합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매일 바쳐야 하는 기도문에 포함된 마니피캇, 즉 성모님의 노래는 기도문을 만들기 위해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감사기도를 진심으로 바치는 삶을 살도록 마음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이, 자신이 하는 활동 하나하나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을 내어드리는 너그러움을 보일 수 있다면, 성령을 가득히 받으신 성모님처럼 레지오 단원들의 입에서도 감사의 기도, 마니피캇은 다시 울려퍼질 것입니다! * 권용오·마티아 신부 / 안동교구 영해성당 주임
이것은 앞으로도 사회가 아무리 발전하고 변해도 우리 삶의 영역에서 하느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부분이 항상 남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청원기도를 가르쳐주심으로써 이런 인간 실존의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서 일곱 가지 청원은 바로 이런 인간 삶의 현실과 아울러 그 목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한계를 말씀드리며 도움을 청하는 후반부 네 가지 청원은 이 전반부의 청원들, 즉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함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바치는 매일의 청원기도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를 위해 필요한 것이 되도록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청해야 할 것인지를 분별할 시간을 가진다면, 이미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더 많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청원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아직 부족한 것을 하느님께 말씀드린다고 한다면, 감사기도는 이미 우리가 받아서 채워진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감사기도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는 동안 감사기도를 바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주님께 왜 여러 가지 기도를 다 가르쳐주시지 않느냐고 묻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청원기도만 제대로 바칠 줄 안다면 다른 모든 기도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사실 감사기도는 샘에 물이 넘치듯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면 저절로 나오는 기도일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기도를 바치지 못하는 것은 감사기도가 무엇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억지로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입으로만 감사하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감사기도는 하느님께 전달되지 못할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감사기도를 잘 안 드린다고 한다면, 하느님께 감사드릴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은 아마 레지오 단원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고 세속적으로 기울면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남보다 나아지려는 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에 가득 찬 기도나 바리사이 같은 교만한 기도를 바칠 수는 있지만, 겸손한 세리의 기도는 좀처럼 바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성모님의 마니피캇 같은 우렁찬 감사의 기도는 감히 생각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레지오 단원들이 바쳐야 할 가장 훌륭한 기도는 성모님께서 바치신 마니피캇과 같은 감사기도여야 합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매일 바쳐야 하는 기도문에 포함된 마니피캇, 즉 성모님의 노래는 기도문을 만들기 위해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감사기도를 진심으로 바치는 삶을 살도록 마음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이, 자신이 하는 활동 하나하나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을 내어드리는 너그러움을 보일 수 있다면, 성령을 가득히 받으신 성모님처럼 레지오 단원들의 입에서도 감사의 기도, 마니피캇은 다시 울려퍼질 것입니다! * 권용오·마티아 신부 / 안동교구 영해성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