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서는 만나서 반가운 사람도 있고
만나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때로는 기뻐서 자신도 모르게 부둥켜안고
때로는 아픔을 느끼고 눈물 짖기도 하는가 하면
인연을 원망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참으로 정 주기 힘든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세상사에 묻혀 하루를 보내고
또 한해를 흘러보내면서 세월의 무심에 빠지게됩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만남은 끊어질 듯하다가도
아슬아슬하게 다시 이어져 가는 사람들과의 인연!!!
우리는 그 인연 안에서 희로애락을 만들어 갑니다.
참으로 인연은 묘하게 우리들 안에서 이어집니다.
그렇게 신앙을 거부하고 방해까지 하던 나 자신이
신앙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과 인연을 만든 지 13년!!!
그 13년 동안 나는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며
오늘을 맞이하여 인연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와 예수님과의 맺어진 인연은 기쁠 때보다
절망 속에서 허덕일 때 맺어진 인연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과 떨어질 레야 떨어질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고 그분은 세례성사를 통해서
제게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제게 신앙을 주신 그 분이 무척 그립습니다.
그 분은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당당하게 나타나십니다.
수많은 인파들이 그분을 만나기 위해 몰려들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기도 하고 겉옷을 벗어서
길 위에 깔며 그 분의 오심을 환영하고 환호하지만
그 분이 겪어야하는 인연은 인간의 배신이었습니다.
가마도 아니고 개선장군이 타고 있는 말도 아닌
볼품없는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우리 인간의 구세주로 받아드리고 환호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면서 우리 인간과
맺어진 인연은 당신의 죽음을 내어주는 인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수난을 알고 계시면서도
위풍당당하게 입성을 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분의 도움으로 나 자신이 이렇게 변화되었지만
과연 죽음 앞에서 그분을 생각하며 초연해 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하여도 순교자는 무엇을 느꼈기에
예수님을 따라 초연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하고
두려움만 앞섭니다.
우리들은 이러한데도 예수님은 내가 흔들리고 있을 때나
세상사 온갖 근심에 젖어 시름에 빠져있을 때도
변함없이 우리 등을 토닥여 주시는 사랑으로 오십니다.
참으로 우리가 맺은 예수님과 인연은
기쁨으로 맺어진 인연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등을 돌리고 떠난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처음과 같이 한결같으신 모습으로
우리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우리 곁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예수님과 맺은 인연은 참으로
행복하고 소중한 인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마르 11, 1-11. 읽고 묵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