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2006. 11. 11. 오후 11:19:41

글자

16.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지도 방향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며, 돌아가기만 하면 받아주시고 축복해주신다. "이러한 힘을 가지신 주님은 자비로운 심판을 내리시고 우리들을 대단히 너그럽게 다스리신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시고자 하면 그것을 하실 힘이 언제든지 있으시다. 주님은 이와 같은 관용을 보이심으로써 당신 백성에게 의인은 사람들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죄를 지으면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가르치셔서 당신 자녀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셨다."(지혜 12, 18-19) "주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이 당신께로 돌아 올 길을 열어 놓으시고 희망을 잃은 자에게는 힘을 주신다."(집회 17, 24)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씻어 주실 것이며 여러분은 주께서 마련하신 위로의 때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사도 3, 19) "주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2베드 3, 9)

·형제들 안에서 자신의 몫을 자신의 것으로만 택할 때 결과적으로 형제들을 소외시키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자신도 형제들로부터 소외당한다.

자신의 것이라고 해도 주님 안에서 형제들과 함께 공유할 때만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즉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이어야 하며, 형제들과 일치하거나 적어도 형제들의 지지는 얻지 못하더라도 동의를 얻어야 자신이 소외되지 않고 자신의 것을 주장하고 이룰 수 있다.



☞수업 준비

·루가 복음 15장 1절부터 3절까지와 11절부터 32절까지(가능하면 15장 전체) 읽으십시오.

·'가톨릭 교리서'(가톨릭 출판사) 13과 및 '예수님, 어서 오세요'(성바오로 출판사) 5권 14과를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주의 사항

·이 과의 복음 말씀은 원래 아버지께 돌아가 회개하는 것이 우선적인 요점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집나간 작은아들과 같은 삶의 체험이 아직 없어서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여겨지면, 하느님 사랑과 회개의 발걸음을 가르치는 것으로 대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큰아들과 같은 경험이 형제들 사이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매개로 큰아들을 타이르시고 화해시키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연결시켜 지도해도 좋겠습니다.



여기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작은아들이 아버지께 자기에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작은아들은 재산을 받자마자 집을 나가서 돈을 신나게 써 버렸습니다. 돈이 많을 때는 친구도 많았지만, 돈이 떨어지자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집을 나간 날부터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거지가 다 되어 돌아왔지만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아버지가 자기는 열심히 일했는데도 잘 해주지 않으면서, 작은아들을 다시 받아주시고 잔치까지 벌여주시니까 화가 났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달랬습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니, 그런데 네 동생은 나갔다가 들어왔으니 얼마나 기쁘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셈이 아니냐?"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집을 떠나서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기분이 든 때가 있었습니까? 언제 어떤 일이었습니까?



말씀 다시 살게 된 아들-하느님의 사랑(루가 15, 20-24. 31-32)

15 20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31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32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묵상

1) 어떤 말씀이 마음에 듭니까?

마음에 와 닿은 말씀 :

2) 작은아들은 왜 집을 나갔습니까?

3) 큰아들은 왜 화를 냈습니까?



배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한없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1)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작은아들은 자기 혼자 일 안 하고 신나게 살기 위해, 아버지께 자기 유산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재산을 받은 작은아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다 써버렸습니다. 거지가 된 작은아들은 다시 아버지 생각이 났고, 아버지께 되돌아가서 아버지 집에서 일이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문 밖에 나가서 작은아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도 우리를 매일 기다리고 계십니다.

2)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

작은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큰 잔치를 벌이고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아버지의 말을 잘 듣고 착하게 살던 큰아들이 밖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오다가, 이것을 알고는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께서 작은아들을 혼내고 벌하시지 않고 오히려 잔치를 벌이고 환영했으므로 화가 났습니다. 또 자기는 일만 하고 동생은 놀기만 했다고 억울해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나와서 큰아들을 달랬습니다. 너는 언제나 착하게 말도 잘 듣고 일도 열심히 했으니 정말 내 아들이다. 그러나 동생이 잘못을 뉘우치는데 화를 낼 수 있겠느냐 하시면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처럼 동생도 사랑하고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3)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기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작은아들과 억울해 하는 큰아들을 서로 화해하게 하셔서 같이 살게 해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차별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회개시켜 주시고 키워 주십니다.



함께 해요

큰아들은 아버지와 동생에게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동생이 집안 돈을 다 써 버리고 들어왔는데도 아버지는 때려서 내 쫓기는커녕 잔치까지 벌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기는 말도 잘 듣고 열심히 일했는데도 아버지가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큰아들처럼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언제, 어떤 일이었습니까? 두레원과 서로 나누십시오.


그런데 두 아들의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니? 그런데 동생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니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아 얻고,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과 같다. 너도 기쁘지 않니?" 하면서 달랬습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도 동생이나 다른 형제 자매들을 용서해주고, 같이 기뻐하면서 도와줄 수 있습니까? 이 아버지의 마음과 우리 부모님의 마음에 대해서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두레원과 서로 나누십시오.


차례..


16-1. 주말 활동4-교회 공동체와 함께



☞지도 방향

·교회사는 우리 교회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교회사에 나오는 선배 신앙인들의 삶을 통해 우리 신앙의 길을 배우고 조정하여 새롭게 걸어나갈 힘을 얻기 위해서 배웁니다. 성지순례를 통해 현장에서 직접 배우고 느끼며 신앙의 힘을 얻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수업 준비

·'가톨릭 교리서'(가톨릭 출판사) 22-3과 및 '예수님, 어서 오세요'(성바오로 출판사) 6권 21과, 22과를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두레별로 자신들이 가고 싶은 성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미리 자료를 준비해 주십시오.



☞주의 사항

·가능한 일이라면 첫영성체 과정의 성지 순례는 대중 수단을 이용하여 가급적 본당 근처의 교구 소속 성지를 두레별로 스스로 찾아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전세 버스를 이용하여 좋은 성지를 찾아가기보다는 어린이들이 혼자나 친구들끼리라도 다음에 또 찾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자기 지방의 신앙 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

·우리 집안은 언제, 누구부터 천주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지금 알면 이야기 해보고, 모르면 집에 가서 우리 집 신앙의 역사에 대해 배워 옵시다.

·우리 집안에서 제일 먼저 신앙을 가지신 분 :





<우리 집안의 신앙 역사>

관 계

이름

세례명

세례일

세례본당

대부모



















































말씀 천주공경가('이벽' 지음)

어와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면은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천주있다 알고서도 불사공경 하지마소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점점 쌓인다네

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아비없는 자식봤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임금용안 못뵈었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천당지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있는천당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배움 한국 천주 교회는 평신도들이 스스로 찾아 얻은 교회입니다.

1) 한국 천주 교회는 외국 선교사들의 전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스스로 찾아 얻은 교회입니다.

한국 천주 교회는 진리를 탐구하던 이조 말기의 남인 학자들이 스스로 찾아 믿게 된 교회입니다. 남인 학자들은 1777년 주어사의 천진암에 모여 성리학(유교의 기초학문)을 공부하다가, '이벽'과 함께 서학(서양에서 온 학문)이라는 천주학(천주님께 대한 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2) 한국 천주 교회는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신앙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 강학회(책을 읽고 나서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공부하는 방법)에서는 중국에서 선교하시던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천주실의」라는 책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책들은 그 시대를 다스리던 학문인 유교를 보완하는 천주학이라는 뜻으로 '보유론'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이분들은 공부를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일반 평민들에게 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말씀'에 나오는 '천주 공경가'와 같은 가사들을 많이 지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에서는 이승훈이 최초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상 세례'를 주어 전국적으로 신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3) 한국 천주 교회는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세례자가 있었습니다.

1784년에 이 강학회 선비 중 하나인 '이승훈'의 아버지가 동지사(겨울에 가는 사절단)로 중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승훈은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가서 예비자 교리를 받고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교회가 설립되었읍니다.. 그리고 '명례방'(명동 성당 자리)에 모여 신앙을 다졌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아직 천주 교회를 잘 몰랐기 때문에, 자신들끼리 서로 주교, 신부를 임명하여 ·'가성직 제도'(가짜 성직 제도)를 만들어 미사도 드리고 고해 성사도 주면서 교회의 성무를 집행했습니다. 그러나 곧 잘못된 것인 줄 알고 없애고는 그 때부터 선교 사제를 모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4) 한국 천주 교회는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한국 천주 교회에는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아서 죽음을 당한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1791년 전라도 진산군의 '윤지충'(바오로)이 어머니의 장례에 그의 외사촌형 '권상연'(야고보)과 함께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려 하자, 집안과 정부에서 사형에 처해 순교했습니다.

5) 한국 천주 교회는 네 번에 걸친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국 천주 교회는 네 번에 걸친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신유(1801)년엔 '주문모' 신부님과 '이 루갈다' 동정 부부 등 300명, 기해(1841)년엔 한국 초대 평신도 회장 '정하상 바오로'와 '범' 주교님 등 150명, 병오(1846)년엔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등, 병인(1866∼1873)년엔 '장' 주교님과 '장주기'(배론 신학당 집주인), '황석두' 등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읍니다. 이 중 '103분'이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셨습니다.

6) 조선 말기 정치가들은 자기들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천주교 신자들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기도 했습니다.

정치가들이 다른 당파와 싸우면서 서로 정권을 빼앗고 또 빼앗은 정권을 굳히기 위해 반대당파 사람들을 천주교인을 벌한다는 명목으로 몰아서 죽였습니다.

조선 사회는 백성들을 남녀 노소, 양반, 중인, 천민으로 신분을 구분했는데, 천주교인들은 하느님이 아버지시고 나머지는 모두 다 형제, 자매라고 했기에 왕권과 사회 통치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생각해 없애려고 했습니다.

교회의 각 선교 단체들이 동양의 문화 풍습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상님들께 바치는 예절인 '제사'를 우상 숭배로 잘못 알아서 금지함으로써 박해를 받았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존중합니다.)

7) 한국 천주 교회 신자들은 피난살이를 하면서도 '교우촌'을 이루고 서로 아끼고 나누며 살았습니다.

박해는 심했지만 신자들은 기꺼이 순교함으로써 하느님을 증거했습니다.

한편 한국 천주 교회는 박해 시기에 교우들끼리 함께 모여 촌락을 이루어 '교우촌'을 만들고 선교를 계속했습니다. 그 때 교우촌의 생활을 '달레'라는 프랑스 선교사는 "모든 재산과 권리를 몰수당하고 쫓겨다니면서도 서로 먹을 것을 나누었기에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국 천주 교회사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8)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어린이용 교재에는 없습니다)

끈질긴 박해 속에서 한국 천주 교회는 1886년 한불(한국과 프랑스)조약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천주 교회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기를 바라실까?"를 생각해서 사회의 변화에 응답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을 굳게 믿고 사랑하여, 우리 교회를 주님의 뜻에 맞게 이끌어 가기로 합시다.



함께 해요

성지 순례 후 느낀 점을 써 보십시오.

느낀 점:



☞기회와 시간이 허락한다면 어린이들과 함께 우리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면서 가톨릭 기도서(49쪽)에서 '103위 한국 성인 호칭 기도'를 찾아 다 같이 바칠 수도 있습니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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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영성체 교리서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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