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독서 : 예레 33,14-16 내가 다윗의 정통 왕손을 일으켜 주리라. 제2독서 : 1데살 3,12-4,2 주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여러분의 마음을 굳건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복음 : 루가 21,25-28.34-36 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왔다. 신앙의 새해가 열리는 날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신앙의 해(나해)를 마무리 하고 새로운 각오로 새출발을 하고자 마음을 다져 먹는다. 금년은 새로운 직책을 맡았기에 처음 시작하는 마음이 다른 해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쁜 소식을 독서와 복음이 선포하고 있는데도 괜시리 인간적인 걱정과 두려움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음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오늘 복음에서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절) 는 가르침이 있는데도 그 가르침의 뜻을 깊이 깨닫지 못해 걱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지난날 대림 제1주일에 준비했던 강론 자료를 다시 음미해 보며 마음의 위로를 삼는다. 토머스 키팅 신부와 함께 걷는 <깨달음의 길 1> (성찬성 옮김) 에는 우리 세계의 끝이라는 주제 아래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길이 실려 있다. 대림절 맞이 묵상으로 여겨저 옮겨 본다. 대림절은 하느님의 빛을 주제로 경축하는 전례시기다. 예수 안에서 육화된 이 큰 빛은 온갖 부류의 어둠과 환상과 무지에 맞선다. 자연의 생명 주기를 조금만 고찰해 보면 우리 세계는 끊임없이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궁 안의 세계는 출산으로 끝나고, 유아기는 세 살쯤 끝나며, 유년기는 사춘기가 오면서 끝이 난다. 사춘기는 청년기에서, 청년기는 장년의 위기에서 각각 끝이 나고, 그런 다음 노년을 거치면서 노쇠해지고 마침내 죽음을 맞는다. 성장의 체험이나 육체적인 기력의 쇠퇴는 인생의 시기를 하나하나 거치면서 그것과 결별하도록 강요한다. 이처럼 육체적 삶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감정적 집착이나 선입견 및 사전에 포장된 가치관으로 개인화된 세계와 결별하도록 초대하고 계신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림절, 특히 세말이라는 주제가 주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세상 종말에 관한 것이 아닌 - 심지어는 우리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세상이 끝나는 육체적 죽음에 관한 것도 아닌 - 생명의 자연적. 영적 진화 속에서 끝맺음하는 온갖 세계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시간 새로운 차원의 신앙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우리가 갖가지 관계 속에서 살아온 이전의 세계가 끝을 맺고 있다. 먼저 세례자 요한이 그리고 나중에 예수께서 "회개하라."는 말로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그 말이 갖는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분들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너희 세계가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소식을 듣기 싫어하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이 사람을 없애버려라!" 회심의 과정은 변화에 자신을 여는 일로, 자연계의 생명이 진화하듯이 영적 생활 역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여는 일로 시작된다. 우리의 정신세계는 자연적인 성장과 우리가 일찍이 어린 시절에 아무런 통제력을 지니지 못했던 사건들과 은총의 소산이다. 은총은, 지금 있는 자리를 떠나 우리가 복음을 새롭고 철저하게 이해하는 순간마다 태동하는 새로운 가치들에 마음을 열도록 초대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활동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단 한 번만 회개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의 초대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이 초대는 전례를 통해 한 해에도 여러 차례 반복된다. 대림절과 사순절 동안이 특히 그렇다. 물론 이 초대는 다른 시기에도 실의, 개인적인 비극, 어떤 충동이나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하던 비밀스런 동기를 갑작스럽게 인식하는 깨달음 같은 것에 따라 재현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위기란 도피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의 빛을 보다 많이 받아들이도록 초대하시는 목소리다. 하느님의 빛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빛이 드러내 보이는 무엇, 즉 하느님의 생명에 해당하는 무엇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생명을 더 많이 받을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이 순수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그만큼 더 깊이 자각하게 된다. |
대림 제1주일(다해) - 아쉬운 마무리와 새로운 출발...이석재 신부님
2006. 12. 3. 오전 7: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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