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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토
| 루카 복음 21장 34-3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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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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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은 내 몫이 아니야 민경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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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행동들인데 괜한 오해를 받고, 독기 서린 말마디에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끙끙 앓기도 합니다. 인간적인 힘으로 이겨내기 힘든 일을 당하면서 한동안 술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한 번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늪과 같은 문제 속에서 그저 답답함으로 신음하기도 합니다. 사실 걱정이란 것이 내 몫이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죠. 걱정하고 있는 것이 경험상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이 별로 없는데, 그리고 고민하는 것이 옛날에 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많은데, 또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바보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깨어 있어라”라는 말씀 안에는 우리의 근심, 걱정, 고민을 당신께 맡기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 그리고 말씀에 내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으라는 말씀이십니다. 답을 혼자가 아니라 같이 찾자고 초대하는 말씀인 것이지요. 예수님을 외톨이로 만들거나 그 반대로 나 자신을 외톨이로 만드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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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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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뜻을 100퍼센트 따르기로 한 사람에게는 엄격한 의미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 없다. 그의 영광만을 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하고 그것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훌륭한 것으로 생각할 일이요, 실패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의 제한된 안목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뜻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잘 되면 내 덕 못 되면 조상 탓이라고, 실패하기만 하면 그것을 모두 하느님의 뜻으로 돌려야 한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가 못 되는 것, 그리하여 창백한 모습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그런 새디스트는 아니시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런 외부적인 성과에 초연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삶의 연습이다. 하느님의 뜻을 100퍼센트 따르기로 한 사람은, 하느님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옷자락을 붙들면서, 자기 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와달라고 조르거나 애원하는 일이 없다. 계획이 있다면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계획을 세우겠다는 것, 그리고 그의 뜻만을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계호기이 있을 따름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있다. 물론 감이 떨어지기까지 입만 벌리고 있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으로 이해힐 수도 있지만, 자칫 주제넘게 모든 일에 우리가 기선을 잡고 끌고 나갈 때만 하느님이 뒤에서 밀어주시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선두를 잡는 분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겸허하게 가만히 서서 ‘오늘 그의 구원하심을 보라’는 데 응할 뿐이다. 오강남 | 현암사 | <예수가 외면한 그 한가지 질문>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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