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이웃집 할머니 [류 해욱 신부님]

2006. 12. 2. 오후 12:13:58

글자
마조 도일과 이웃집 할머니


  중국의 선사 중에 아주 유명한 마조 도일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질적인 선의 창시자라고도 불리지요. 용모가 기이하여 소걸음으로 걸었고 호랑이 눈빛을 가졌다고 하는 인물이지요. 혀를 빼물면 코끝을 지났고 발바닥에는 법륜 문신 두 개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머리를 깎았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스님이 되었지요.

 

  어느 날 당대 유명한 스님인 회양(懷讓)스님을 만났는데, 회양스님은 도일 스님이 인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물으셨지요.

  “스님은 좌선하여 무얼 하려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회양스님은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다 갈기 시작했답니다.

그러자 도일스님이 물었지요.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지요.”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벽들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소?”

  “그러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소가 끄는 수레에 멍에를 채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도일이 대답을 못하자, 회양이 게송을 하나 읊어줍니다. 그 게송을 들은 도일은 즉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게송이 이렇습니다.

 

  마음자리엔 여러 씨가 뿌려져 있어

  하늘 소나기 맞으면 싹이 움트네.

  삼매의 꽃은 모습이 없나니

  어찌 이룸과 깨어짐이 있으리.


  회양을 스승으로 하여 10년 간 수행을 한 후 스승을 떠나 강서로 가서 방장이 됩니다. 그 후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선사로 수많은 제자들을 두게 됩니다. 그는 이미 유명인사가 된 후 고향을 방문하게 됩니다. 고향 사람들은 자기 고향에서 오늘날 성철스님과 같은 유명한 스님이 나온 것이 자랑스러웠고 대대적인 환영을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이웃이었던 할머니 한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대단한 인물이 온다고 이렇게 난리법석이 난 줄 알았더니 다름 아닌 쓰레기 청소부 마씨 아들 녀석이 왔구먼.”

  이 말을 들은 마조 도일은 장난 반, 감상 반으로 즉흥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권커니 그대여,

  고향일랑 가지 마소.

  고향에선 누구도 성자일 수 없나니

  개울가 옛 할머니

  아직도 옛 이름만 부르누나!

 

  깨달음을 얻은 선사이지만 마조 도일의 인간미가 엿보이는 게송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지요. 예언자나 성자가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인간이 자기가 지니고 있는 선입관을 버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참 그게 쉽지 않아요.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이 진리를 보는 눈을 가리게 합니다. 저 사람은 쓰레기 청소부의 아들이고,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라는 선입관이 마조 도일이 지닌 보리심(불교에서 진리를 보는 사랑의 마음)나 예수님이 지닌 사랑의 마음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고향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내 마음 안에는 과연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마련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우리가 사람이나 사물을 바르게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입관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요.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할 터이니, 우리가 마음의 눈을 감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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