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 영흥에서 인천이나 부천까지 편도로 한 시간 반 쯤 걸리고, 게다가 길이 조금 막히기라도 하면 두 시간 이상씩 걸리기도 하다보니 볼일이 있어 오가게 되는 거리가 짧지만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꼭 지루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 들녘이 누런 벼들로 황금물결을 이루었고, 지난 추석 전후까지 온 동네가 포도 익는 향긋한 냄새로 가득했었고, 이제는 수확이 끝나가는 황량한 들판과 시들은 잎사귀만 몇 개씩 달고 있는 앙상한 포도나무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로서는 그동안 지나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의 모습이 그저 하나의 풍경이요, 들녘에서 익어가는 벼나 포도나 그 밖의 결실들도 그냥 하나의 정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 자동차로 인해 바삐 돌아가는 듯 느껴지는 도시의 일상에 익숙해져있었기에 지나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농·어촌의 정적이고 조용한 모습에서 마치 살아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곳 영흥에서 일년 가까이 살게 되면서 그렇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면서 혹은 낮시간 묵주기도나 묵상을 위해 산보를 하다보면 넓은 들녘의 논과 밭, 과수원에서 바쁘게 일하시는 농부들의 모습을, 또 물이 빠진 넓은 갯벌에서 열심히 바지락이나 굴을 채취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곳을 정적이고 조용하게만 느꼈던 것은 자동차로 바쁘게만 다니다보니 들녘과 갯벌에서 그토록 바쁘고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을 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그러한 것들을 보며 느끼는 또 하나는 그동안 대형마트나 상점에서 산처럼 쌓인 쌀이며 과일이며 농산물들을 보면서 그것을 그저 하나의 상품으로만 생각했을 뿐, 그 하나하나에 하느님의 은총과 농부들의 노력과 숨결이 담겨 있음을 잘 느끼지 못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적 사고’에 젖어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계절과 알맞은 햇빛과 바람과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또 벼이삭 한포기 한포기를 어루만지고 포도 한송이 한송이를 어루만지는 농부들의 땀과 노력으로 그러한 소출이 있을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식사를 하면서 이 음식들이 그저 고픈 배를 채워주는 것의 의미가 아니라 새 생명을 주고 있음에 대한 찬미와 감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메오라는 소경이 예수님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다시 보게 해주십니다. 저는 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바로 나의 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두 눈이 성해 볼 수는 있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해 제대로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는 오늘의 나의 모습을 보면서. 김재욱 신부 | 영흥 성당 주임 |
[인천]연중 제30주일 2006.10.29. 다시 보기 - 김재욱 신부님
2006. 10. 29. 오후 3: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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