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의 힘으로 믿고 신덕으로 잉태하신 성모님의 봉헌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2. 오전 12:27:39

글자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신덕의 힘으로 믿고 신덕으로 잉태하신 성모님의 봉헌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자헌(自獻)이라는 뜻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자신이 지닌 행위, 나아가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뜻으로 스스로 바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특히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성모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가 모세의 법에 따라 아기 마리아를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친 사실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이 봉헌의 근거는 사람과 짐승에 맏배를 하느님께 봉헌하라는 모세법에 근거합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아이를 낳으면 사내아이는 40일 만에, 여자아이는 80일 만에 성전에 가서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맏아들, 곧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다.’”(출애13,1-2)     후에 이 법은 발전되어 “사제는 그것을 주님 앞에 바쳐, 그 여자를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한다. 그러면 피로 더럽혀진 그 여자의 몸이 정결하게 된다. 이것이 사내아이나 계집아이를 낳은 산모에 관한 법이다.”(레위12,7)라는 산모의 정결례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성경의 근거에 의해 오늘 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일생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였음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교황 식스토5세는 1585년 이 축일을 전 세계 교회의 축일로 지내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자헌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맏배 대신 교무금과 헌금을 통해서 자헌의 의미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함과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언젠가 "매사에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라는 가르침에 어느 분께서 "감사드릴 일이 뭐가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길 합니까? 제가 부자가 되기를 했습니까? 제가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된다면 감사드리고 또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돈도 펑펑 쓰겠습니다."하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하느님께서는 내 기도를 외면하시고, 내가 가난하게 살도록 아무 것도 주시지 않는 분이실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의 충족감이 채워지지 않아 얻은 것까지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며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 것도 없이 홀연히 알몸으로 태어난 나에게 지금 의식주를 나누는 가족과 이웃이 있습니다. 어찌 감사할 것이 없겠습니까? 주위를 돌아보면 온통 감사할 것 투성이입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감사함에 인색한 부류입니다. 타인의 행위에 항상 불만이고, 잘된 것은 자기가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좋을 때만 감사를 아는 사람입니다. 평소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특별한 일이 생기거나 이득이 생기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항상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드리고, 환란이 닥쳐도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행복한 사람이지요.

   우리 신앙인들의 삶은 세 번째 유형이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5,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는 신앙의 출발입니다. 감사드릴 줄 아는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하느님을 만나면 언제나 하느님 안에서 살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교만한 사람은 절대 감사드릴 수 없지요. 왜냐하면 잘된 것은 자기가 잘해서 그런 것이고, 소유한 것은 모두 자기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하느님께 돌아갈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쓰고, 이 세상을 마칠 때는 모두 놓아두고 가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누가 그대를 남다르게 보아 줍니까?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1코린4,7)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러한 감사의 표현으로 하느님께 예배드렸고, 수확의 1/10을 봉헌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1/10을 멜키체덱에게 주었고(창세14,21), 야곱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유의 1/10을 하느님께 드린다고 맹세하였습니다.(창세28,22) 신명기 안에서 십일조는 땅과 그 소출의 주인인 하느님께 감사하는 선물로(신명14.28.29장), 레위인을 부양하는 수단으로(민수18,21), 빈곤 구제를 위한 헌물(신명14,28,29장)등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마태23,23)라고 말씀하시며 십일조를 언급하셨고, 초대교회 신도들은 이를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사도행전은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2,44-45)고 증언하고 있고 그 결과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4,43)라고 전합니다. 결국 수입의 1/10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소유가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속한다는 확신의 표시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반드시 요구하지는 않지만 십일조의 정신을 담은 교무금과 헌금을 하느님께 바치도록 요구합니다. 교무금과 헌금은 교회를 유지하고, 가난한 형제들을 돕는데 사용합니다. 교회 안의 신자라면 누구나 참여해야 하는 신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이지요.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자헌 기념일을 지내면서 내 소유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모아 예수님을 '주(主)님', 즉 나의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사셨듯이 우리 역시 내 생명의 주인이요, 내 소유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