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께 드릴 선물 - 장재봉 신부님

2006. 12. 2. 오전 12:25:01

글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2006.11.21.화

 

루카 복음 19장 1-10절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성모님께 드릴 선물     장재봉 신부
즈카르야 예언서에는 “너희를 건드리는 자는 정녕 내 눈동자를 건드리는 자다”
(즈카 2,12)라는 하느님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답은 쌀쌀한 것 같지만
속내는 이렇게 뜨거우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잘나도 아버지만한
아들이 없다고, 오늘 우리 예수님은 오랜만에 만난 어머님께 “큰 일을 멋지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계신 모습이야말로 성모님께서 가장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었을 테니까요. 성모님은 하느님의 아들을 낳아서 기르시는 일에 결코
특별함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젖을 빨고 아프면 울음소리가
커질 때에도 ‘하느님의 아들에게 우째 이런 일이…’라고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특별하고 빼어난 것만 귀하게 여기는 우리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성모님과
예수님의 삶으로 ‘경고’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때문에 내 믿음이 자라날 필요가
있을 때 격려로 함께하시지만, 믿음의 성숙기에는 오히려 ‘나를 잊으셨나’ 싶을
정도로 팽개쳐진 느낌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그만한 시련을 이겨낼 힘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탓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어머니께 의젓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설령 내 기도에
무심하신 예수님을 이해해드리는 것도 좋겠고, 내가 누릴 좋은 일을
더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참 좋을 것입니다. ''
 가족
우리 가족은 식구가 많은 탓에 그동안 제대로 다 모인 적이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되어 있는 가족사진이 없다.
그러나 이게 얼마만인가. 엄마 팔순잔치에 손자며느리에서부터 더구나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나까지 모두 모였으니. 그렇게 다 모인 가족을 보며 엄마는 무척
행복해하셨다. 이렇게 모인 형제들을 보자니 나는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 때
밖에서 얻어맞고 오면 언니 오빠들이 나의 든든한 빽이 되어 나를 때린
개구쟁이들을 혼내줬을 때 그 시원함이란. 처음엔 몇 번 얻어맞고 들어왔지만
나중에 언니 오빠 덕에 그 이후로는 맞아본 적이 없다. 그뿐인가. 학교에서도
몇 개밖에 없는 그네를 타기 위해서 눈치작전이 필요했고 힘없는 저학년들은
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는데 고학년인 언니 오빠가 있는 덕분에 나는 그네타기가
수월했다. 그 세월도 흘러 언니 오빠들이 막내인 나하고 같이 늙어간다.
시집 장가를 가 아이들 한둘 데리고 와 엄마 무릎에 앉힌 언니 오빠들과
형부들 올케 언니들 모두 서로 예전 얘기 해가며 웃고 대화하는 소리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참 좋다. 모두들 돌아간 뒤에 성모님 앞에
홀로 앉아 묵주기도를 바치는 엄마.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신다는 엄마의
묵주 자장가에 눈이 감긴다. 엄마의 기도 소망은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 내가 엄마가 되어 내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같겠지?
끊임없이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희생하시는 엄마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나도 엄마처럼 될 수 있을까?

최 수산나 | 미국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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