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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0.월요일
| 루카 복음 18장 35-4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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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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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보게 해 주십시오 장재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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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어려움에도 인내하고 하느님 사업에 열심이었던 에페소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경고는 안타까움에 앞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있는 특별한 경우가 마음에 닿습니다. “악한 자를 용납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에페소 교인들은 교회 안에 악이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근절하느라고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인 척 거짓말하는 사기꾼들을 테스트해서 그들에게 다시는 ‘그런 고얀 짓’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겠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악한 일을 용납하지 않고 고약한 짓을 밝혀낸 것을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옳은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첫사랑을 잃게 만들었을까요? 그들은 그 고약한 사람들을 용서하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끝까지 죄인으로 ‘판단’하였던 것을 지적하신 것은 아닐까요? 자신들은 전혀 죄와 상관없는 의인인양 의기양양했던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잘못된 일을 그르다고 지적하고 앞으로는 바르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회심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그저 죄인으로 몰아붙이면서 판단했다면 이것은 하느님을 향한 ‘피조물의 월권’일 테니까요. 오늘 주님의 자비를 얻은 사람은 온 이스라엘에게 죄인으로 판단 받았던 눈 먼 걸인이었습니다. 내 눈을 가리고 있는 판단의 꺼풀을 털어내고 사랑의 꺼풀을 덧입게 해주시기를 자비로우신 주님께 청해야겠습니다. ‘주님 제대로 보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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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그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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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데 열여덟 살 된 아들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어요.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아들은 여자 친구한테서 얻은 꼴사나운 색 바랜 티셔츠를 입고 식탁 앞에 앉아 있었어요. 아들이 그 옷을 입고 있는 걸 이웃 사람들이 보고 자식 옷도 제대로 못 입힌다고 흉볼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아이는 늘 패거리들과 함께 거기 앉아 있었거든요. …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난 옷차림부터 시작해 아이를 야단쳤어요.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아. 우리 관계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그날 나는 당신의 워크숍에서 해본 삶과 작별하는 연습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삶이란 나에게 잠깐 동안 맡겨진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영원히 내 곁에 두지는 못하겠지요. 나는 삶에 대해 여러 가지 가정들을 떠올려 보았어요. … 그리고 문득 이런 가정을 해봤어요. ‘만일 내일 아들이 죽는다면, 난 어떤 기분일까? 그러자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한 엄청난 상실감과 후회의 감정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속으로 계속 이렇게 끔찍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아이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상상해봤어요. 나는 아들에게 정장을 입혀서 묻지는 않을 거예요. 정장을 입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거든요. 그 애가 그토록 좋아하던 지저분한 셔츠를 입혀서 묻을 거예요. 그렇게 그 애의 삶을 기리게 될 거예요.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이 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겠구나.’그 애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선물을 줄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에게 마음대로 티셔츠를 입어도 좋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아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그 애를 사랑하는 기분은 정말 행복했어요. 이제 나는 더이상 아들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걸 알았거든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 이레 | <인생수업>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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