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이회진 신부님]

2006. 12. 2. 오전 12:09:51

글자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이회진신부-


 
때로 루가 복음을 읽다보면 마치 한 장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오늘 예리고의 소경을 고치시는 복음처럼 복음의 여러 장면에서

루가 복음 사가는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듯

예수님과 다른 이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곤 합니다.


머리속으로 예수님이 예리고의 군중들 사이를 지나가는 그림을 그리며

이 복음을 묵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랍비들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줄 때,

먼지 나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가르치곤 했습니다.

아직 큰소리로 연설하는 것이 통용되지 않던 시대이기에

거리에서의 랍비들 혹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두 다 잘 알아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한 눈먼 거지가 소리치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님 당시에는 “눈이 먼 사람” 즉 소경은

자신의 죄 혹은 부모나 다른 가족의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였기에

그를 불쌍히 여겨 도와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인이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행렬에 끼여 예수님을 부르다 못해

소리소리 지르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천천히 길을 걸으며 가르침을 주시는 것을 들어야 하는데

옆에서 다른 잡소리가 들려 그것을 들을 수 없다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하다못해 TV를 보다가도 옆에서 아이들이 떠들면

“조용해 못해! 시끄러워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들을 수가 없잖아.

다른데 가서 놀던지, 방에 들어가 공부나 해!”

하며 아이를 야단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걷는 그 길을 방해하는 눈먼 죄인은

사람들의 마음을 짜증과 화를 불러 일으켰을 것입니다.


신앙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우리는,

예수님께 귀 기울이며 그분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걸어간다는 우리도 역시

예수님께 너무 집중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 지 묻고 싶습니다.


성당에는 열심히 다니면서,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도

가까이 있는 가족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따라가지만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는 의미는 다른 말로

예수님의 마음이 자신 안에 머무르게 한다는 초대와 방문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찾아오는 곳, 예수님의 마음이 머무르는 곳.

그곳은 예수님이 마음이 있는 곳,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우리의 마음과 눈을 또한 둘 때

우리는 예수님이 그곳에 우리 자신과 함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한다면 그분과 함께 걸을 수는 있지만

그분의 발걸음이 여러분 안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갈 때

비로소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 머무르시며

구원의 은총과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주님께 귀 기울이듯 다른 이의 아픔과 마음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십시오.

화부터 내지 마시고…


“주님, 입으로조차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용기없는 저를 이끌어주시어, 오늘은 ‘사랑한다’고 말하게 하시고, 내일은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게 하시며, 마침내는 서로의 사랑을 이해하고 당신과 함께 나누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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