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은경축을 맞으시는 6분의 수녀님께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그것을 비상한 재주나 성공 혹은 부자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갓난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용트림을 보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신비감을 갖게 하며,
어린 아이들의 밝그레한 웃음 소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자신의 생명에 감사하며 사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운과 위안의 그늘이 함께 할 때
우리는 행복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한 선물이
오랜 시간 우리와 하나의 공동체 자매가 된 것을 기뻐하며 축하하고자 합니다.
외형적으는 하느님과 공동체에 대한 약속을 했다는 서원 25주년을 축하하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하느님과 공동체와 함께 걸어온
사랑과 은총의 시간들을 기억하며 축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 삶 안에서 많은 이들이 많은 것을 거부하며 살고 있고,
또 거부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소중하고, 사람이 있음에 세상이 아름다워야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여전히 많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이 그늘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또 다른 선물로 여기 계신 6분의 수녀님들을 준비하셨습니다.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마저도 품에 안고 갈 선물을 준비하시어
먼저 그 선물을 여기 사랑의 까리따스 공동체에 주셨고,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이들을 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25년이라는 시간을 하느님과 공동체와 함께 걸어오며,
또 세상에 그리스도의 삶을 증거하며 지내는 동안
어찌 그 모든 시간이 다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했겠습니까?
분명 그 안에는 “산모의 진통”만큼 커다란 아픔과 좌절,
그리고 심지어는 거부당하고 외톨이가 되었다는 고통마저도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이분들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우리와 세상을 위해
“산모의 진통”을 기꺼이 살아오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꼭 있고 싶어하셨던 곳, 사랑과 믿음이 진정 필요했던 그곳에서
수녀님들은 자신의 삶을 봉헌했을 뿐만 아니라 아픔마저 가슴에 안으며
우리와 세상, 그것이 참 기쁨이 되고, 참 희망이 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이 전하는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기쁨”에 대해 응답하며 살아 오셨던 것이죠.
그래서 감사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 그리고 우리와 세상에 아름다운 희망이 되어 주었고, 또 그렇게 살아갈
6분의 수녀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 삶이 고단하고 희망이 가물가물거리며 힘이 들 때
고개들어 주님을 쳐다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왜 사냐고 물으시면
“당신 때문에요!”라고 대답하며 한 번 웃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도 여러분을
당신의 “빼앗기기 않을 영원한 기쁨”으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멘.”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그것을 비상한 재주나 성공 혹은 부자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갓난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용트림을 보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신비감을 갖게 하며,
어린 아이들의 밝그레한 웃음 소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며
자신의 생명에 감사하며 사랑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운과 위안의 그늘이 함께 할 때
우리는 행복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행복한 선물이
오랜 시간 우리와 하나의 공동체 자매가 된 것을 기뻐하며 축하하고자 합니다.
외형적으는 하느님과 공동체에 대한 약속을 했다는 서원 25주년을 축하하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하느님과 공동체와 함께 걸어온
사랑과 은총의 시간들을 기억하며 축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 삶 안에서 많은 이들이 많은 것을 거부하며 살고 있고,
또 거부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소중하고, 사람이 있음에 세상이 아름다워야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여전히 많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이 그늘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또 다른 선물로 여기 계신 6분의 수녀님들을 준비하셨습니다.
아픔과 슬픔 그리고 죽음마저도 품에 안고 갈 선물을 준비하시어
먼저 그 선물을 여기 사랑의 까리따스 공동체에 주셨고,
그리고 세상의 많은 이들을 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25년이라는 시간을 하느님과 공동체와 함께 걸어오며,
또 세상에 그리스도의 삶을 증거하며 지내는 동안
어찌 그 모든 시간이 다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했겠습니까?
분명 그 안에는 “산모의 진통”만큼 커다란 아픔과 좌절,
그리고 심지어는 거부당하고 외톨이가 되었다는 고통마저도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이분들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우리와 세상을 위해
“산모의 진통”을 기꺼이 살아오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꼭 있고 싶어하셨던 곳, 사랑과 믿음이 진정 필요했던 그곳에서
수녀님들은 자신의 삶을 봉헌했을 뿐만 아니라 아픔마저 가슴에 안으며
우리와 세상, 그것이 참 기쁨이 되고, 참 희망이 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이 전하는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기쁨”에 대해 응답하며 살아 오셨던 것이죠.
그래서 감사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 그리고 우리와 세상에 아름다운 희망이 되어 주었고, 또 그렇게 살아갈
6분의 수녀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 삶이 고단하고 희망이 가물가물거리며 힘이 들 때
고개들어 주님을 쳐다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왜 사냐고 물으시면
“당신 때문에요!”라고 대답하며 한 번 웃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도 여러분을
당신의 “빼앗기기 않을 영원한 기쁨”으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