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의 노래 함께 죽으러 가자고 큰소리 쳤건만 막상 그분이 붙잡히는 모습 보고 줄행랑을 놓았던 자신이 미워 견딜 수 없었지. 어머니 마리아를 뵈올 면목도 없어 혼자 조용히 베다니아를 다녀왔다네. 마르타, 마리아 자매와 슬픔을 함께 나누었지. 돌아오니 동료들이 믿을 수 없는 말을 하였지. 주님을 뵈었다니, 정녕 믿을 수 없었다네. 은근히 바보가 되기를 바라며 강경하게 말했지.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못 박히실 때 튀던 핏방울, 창에 찔리실 때 흐르던 물과 피 그분의 죽음을 두 눈으로 본 나는 믿을 수가 없었지. 그분이 홀연 방 한 가운데 오셨네. “그대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 음성 들으며 나는 꿈을 꾸는 듯 했지. “토마, 그대의 손으로 내 손을 만져 보시오. 그대의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시오.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으시오.” 나는 부끄러움으로 그분 앞에 부복하여 고백했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질책이 아닌 다정한 음성으로 그분이 말씀하셨네. “그대는 나를 보고야 믿는가? 복되어라,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 이 달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요한 20, 19-29로 기도하면서 우리도 토마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기로 해요. 배경이 되는 장소는 예수님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이층 다락방입니다. 성전에 의하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잡히실 때 줄행랑을 친 이후에 이층 다락방에 함께 모여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죽음의 공포 앞에 참으로 약한 존재이지요. 베드로를 위시하여 제자들이 공포에 떨면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촉각을 곧추세우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 이때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시지요. 문이 잠겨 있었지만 아무 거침없이 그 방에 들어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시며 인사하십니다. “그대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여러분들도 거기 제자들과 함께 있다고 상상하시면서 예수께서 들려주시는 ‘평화’라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어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시는 모습을 상상 안에서 그려 보면서 당신이 바로 못 박히시고 창으로 찔렸던 예수시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는 그 자상하심을 느껴보십시오. 주님을 다시 뵌 그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여러분도 제자들이 느꼈던 기쁨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도록 청하십시오. 그런데 토마는 처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함께 있지 않았지요. 나중에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다는 말을 듣고는 믿을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하는 토마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면서 여러분에게 어떤 느낌이 오는지를 솔직하게 바라보십시오. 어쩌면 토마의 모습이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눈으로 확인하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은 결코 믿을 수 없다는 현대의 우리들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토마의 모습을 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껴보십시오. 우리는 성서의 다른 대목을 통해 토마가 용기와 열정을 지닌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까운 친구였던 라자로가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서 “자, 그에게로 갑시다”라고 하셨을 때 다른 제자들이 머뭇거렸지만 토마가 동료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이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지녔던 토마가 처음에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은 이유를 잠시 헤아려 보십시오. 그는 막상 정말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처형을 당하시자 슬픔으로 미어지는 가슴을 추수를 수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큰소리쳤지만 그도 다른 제자들처럼 줄행랑을 놓았지요. 다른 제자들에게 면목도 없고 하여 슬픔을 혼자 감내하리라고 생각하며 혼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더 이상 두렵고 외로워 혼자 있을 수 없었기에 제자들에게 돌아왔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제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토마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대가 말한 대로 해보시오. 그리고 믿으시오.” 주님을 뵌 토마는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그 감동 안에 머물면서 토마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느껴지는 느낌들을 바라보십시오. 토마가 회의론자였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기 전에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적어도 정직한 사람이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추호의 의심도 없는 믿음이란 흔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지니게 된 믿음을 예외로 한다면, 아마도 그런 믿음은 거짓 포장된 믿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어느 정도는 회의하면서 받아들이고 믿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믿음을 지니게 되고 그 믿음이 깊어가는 것이지요. 어쩌면 정직하게 의심하는 과정을 거쳐 참으로 믿게 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성적인 판단을 거치지 않은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할 수 있음을 생각하며 토마가 지녔던 정직함을 지닐 수 있도록 청하십시오. 또한 우리가 토마에게 감탄하게 되는 것은 자기가 눈으로 보고 믿게 된 다음에 철저하게 투신하는 자세입니다. 그는 주님을 뵙자 그분께 다가가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실로 온 몸과 마음으로 주님, 당신은 바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저의 모든 것이라는 전적인 신뢰로 드린 투신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느껴지는 감동 안에 오래 머물러 보십시오. 여러분들도 토마처럼 그렇게 투신하고자 하는 원의가 생겨나면 그 원의를 고백하십시오. 우리도 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며 그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에 숱한 의심과 회의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어떤 은총을 체험할 때 우리도 그분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그런 은총을 주시도록 청하면서 기도를 마치십시오. |
[강론] 토마의 노래[류해욱신부님]
2007. 5. 19. 오전 9: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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