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대한 조그만한 관심에서부터 출발.. - 민병섭 신부님 /2007.05.14

2007. 5. 16. 오전 7:17:15

글자

부활 제6주일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14,23)

 

오늘 교회의 전례는 우리들에게 참된 신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이 하느님과 그리고 예수님과 일치하는 삶이야말로 바로 우리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신자들의 지상목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바로 하느님과 일치된 삶 안에서 그분과 참된 사랑을 나누며 살기 위해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하느님과의 그 순수한 사랑의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은총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며, 구원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말씀도 결국은 우리들에게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그분의 창조 목적대로 그분과 참된 사랑을 나누며 일치의 삶을 지내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일치는 바로 그 분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는 사람만이 얻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자신의 복음 서두에서 아무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에서부터 하느님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 살아남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결국 모세도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 뵙지 못하고 다만 그분의 뒷모습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도 하느님의 영광 앞에서 몸을 떨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집회서 43,31에서 집회서의 저자는 “그분을 뵙고 그분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느냐?”하고 우리들에게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볼 수 없었던 하느님의 참된 모습은 바로 그분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완전하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드러난 하느님의 모습은 어떠하며 우리들은 어떻게 하여야 그런 하느님과 일치된 삶을 살을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출애굽기에서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를 사랑의 신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야훼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베푸는 신, 거슬러 반항하고 실수하는 죄를 용서해 주는 신이다”(출애 34,6). 또한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하면서 우리들이 이웃을 아니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때에야 하느님을 닮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6,43이하). 한편 요한 사도도 자신의 편지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정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고 우리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구약의 무서운 그리고 질투가 심하며 조그마한 잘못에도 용서보다는 벌을 먼저 하시는 그런 징벌의 그리고 분노의 하느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아니 그 보다는 꺼져 가는 불도 끄지 않으시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시는, 그리고 언제나 우리 자신들이 찾기만 하면 항상 우리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여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인 것입니다.

 

[형제 이야기- 볏단 날라다 준 형제, 사랑이 깃든 그 장소를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하느님은 솔로몬에게 그곳에 성전을 세우게 함]

 

우리가 참으로 우리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참으로 참된 그리스도 신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그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 우리도 사랑 자체가 되도록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랑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 곧 우리가 자주 말하는 대로 혼이 빠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바오로 사도도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사람이 비록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좋은 선행이나 위대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고 한다면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우리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간직한 참된 신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성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웃에게 언제나 부드러운 태도로 조심스럽게 대하며 언제나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깨끗한 양심, 오늘의 사회에서 참으로 어려운 말일 것입니다. 혼탁할 때로 혼탁한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미 우리들의 양심이 무디어져 있으며, 그로 인해서 죄를 죄로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하기에 주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은 주님 안에 우리들의 마음을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며, 매일 매일 자신의 생활을 하느님 앞에 점검하며 창조 때의 순수한 양심으로 되돌아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남들에게 부드러운 태도, 즉 진심에서 우러나온 태도로 이웃을 대한 다는 것 또한 무척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더구나 나에게 직접적으로 손해를 끼친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속이 부글부글 끌어오는 그런 사람을 부드럽게 대한다는 것은 속이 뒤집히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을 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이웃을 대한다는 것은 자신을 도려내는 큰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며,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성령, 즉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이것을 이루도록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어려운 우리 자신을 희생하며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의 참된 사랑을 간직하는 것도 바로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들에게 오셨다고 해서 무슨 기적적인 사건을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에 당신의 사랑을 심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가장 작은 일에 충실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임할 때, 성령은 우리들 안에 더 큰 사랑의 불을 지펴 주시는 것입니다.

 

이태리의 유명한 성인 중 필립보 네리가 있습니다. 하루는 성인께서 신자들에게 우리 모두는 성인 성녀가 되기 위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았다는 내용의 강론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사제관에 들어갔는데 한 부인이 상당히 부산하게 문을 열며 신부님을 찾았습니다. 무슨 큰 일이라도 생겼나하고 마중나간 신부님께 그 여인은 오늘 강론의 말씀을 참으로 감명깊게 들었다고 하면서, 자신도 이제 성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결심을 말하며, 신부님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쉽게 설명을 하여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당신이 문을 조용히 열고 닫는 일부터 잘 하면 성녀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바로 우리 이웃에 대한 조그만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할 때 우리는 쉽게 하느님의,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닮은 사랑을 간직할 수가 있으며, 바로 그분과의 일치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본받고 그분과 일치된 삶을 원하면서 우리 형제들에게, 우리 가정에 그리고 자신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만들어 줄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우리 이 미사를 지내며 참으로 주님의 사랑이 우리들을 변화시켜 그분과의 일치를 이루게 만들어 달라고 청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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