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아픈 만큼 성숙해 지는 기쁨의 삶 2007.05.18

2007. 5. 19. 오전 9:45:14

글자
†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기쁨의 삶 †

오늘 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신자들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의 기쁨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쁨'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특히 성령의 은사중에 하나로서, 이 기쁨이라는 희망 때문에 신자들은 세상의 고통을 이겨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자연스런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바라는 일이 성취됐을 때, 혹은 자신의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면 그 기쁨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식들이 원하는 대학에 무난히 합격하던가, 취직시험에 합격하던가, 또 가족들의 생일, 환갑, 결혼식 등의 행사에서는 모두 기뻐하고 그런 날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반면에 슬픈 일들 무엇이든지간에 우리 또는 주변에서 없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죽음, 질병, 이별 등을 자주보면서도 나하고는 무관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아픔과 슬픔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근심에 쌓일 것이며,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을 겪어야 한다고.... 분명히 예수님의 떠나심은 제자들에게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고통도 따를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가르침이신, 낮아지고 버리고 무시당하고 또 희생하는 삶을 걸어가야 한다면,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우리의 삶이 실패한 듯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그 다음 말씀은 슬픔과 고통 뒤에 오는 희망의 말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막상 떠나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심정은 근심이 생기고 고통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잠시간일 뿐이고, 그 시간만 인내하면 이 모두는 기쁨으로 바뀔 것이며 또한 이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서에서 말하는 기쁨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기쁨이란 하느님 안에서 공동체적으로 누리는 기쁨을 뜻합니다. 구약성서에서는 축제 때나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또는 왕이 즉위할 때에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서에서는 기쁨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즉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 자체가 기쁨이며,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려 주신것도 또한 복음 기쁜 소식이었읍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도 또한 우리 신자들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 전례에서는 그 부활의 기쁨을 50일간이나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쁨은 최종적으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뜻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 기쁜 것입니다. 자녀가 성당에 잘 다니면 부모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남편이 피정을 다녀오면 아내가 기뻐하십니다. 바로 그것은 성령의 협조를 받아, 하느님을 체험,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안에서 함께 휴식을 취할 때 그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내 기쁨이 그대들 안에 있고 그대들의 기쁨이 가득 차기를” 기원하십니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끔찍한 죽음을 앞두고 기쁨에 관련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을 더 깊이 묵상하면서 정말 사랑 그자체이신 성부의 모습, 성자의 모습, 그리고 거룩하고 위대한 활동을 하시는 성령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수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누리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그분의 기쁨이 십자가의 길과 연관된다면, 본능적으로 고통을 싫어하는 우리에게 굳이 기쁨을 간직하라고 당부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주님께서 기쁨을 누리시는 이유는 아버지의 사랑을 한껏 받으신 데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존하시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십니다. 일반 세상에서도 아들이 지녀야 할 덕행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덕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며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 순종의 실천이 제도적으로 강요되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자유의지, 양심에 의해서 스스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은 순수한 사랑의 표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바지에 대한 사랑은 순수한 자유의지의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자유로운 것이기에 예수님이 아버지께 순종한 것은 가장 숭고한 자유의 표현입니다. 사랑이 강요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순종도 강제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사랑 그 자체를 향한 순수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상호적인 것이기에 예수님의 순종은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실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그만큼 많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 사랑의 열기는 ‘주님의 열기’이기에 큰 물도 사랑의 열기를 끌 수 없고 강물도 그것을 휩쓸어 가지 못합니다(아가 8,6-7 참조). 이처럼 그분의 강렬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기워 갚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시기까지’ 아버지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난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충만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민족 가운데서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행하는 사람을 환대하십니다. 성령의 은혜가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은 하느님 사랑에 경계가 없음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이에게 쏟아진다면, 우리 역시 모든 이에게 사랑을 쏟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영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부어 주신 성령은 사랑할 능력을 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우리 의식을 비추십니다. 아버지를 알아본다는 것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깨닫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느끼는 순간 형제를 사랑할 힘과 용기가 솟아납니다. 그 때 우리는 형제가 나에게 엎드려 절하기를 바라지 않고, 나 역시 아버지의 자녀임을 겸손되이 받아들여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모든 인생고에도 불구하고 한없는 기쁨을 간직할 수가 있습니다. 삶의 기쁨은 사랑의 결과이지 사랑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할 제6주간 금요일 어떤 수사님의 묵상글입니다.


[두올묵상팀]
오늘 수도원 옆에 있던 낡은 집한채가 포크레인으로 폭삭 내려앉았다.
몰론 사람이 모두다 이사가고 난 뒤의 일이다.
그냥 옆에서 지켜보는 것인데도 웬지 시원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속으로는 '저 포크레인 기사는 스트레스가 쏵 풀리겠다'고 생각하었다.
그리고는 모처럼 여유를 부리며 수도원 뒷동산을 돌아가며 산책을 해보았다.
평소에는 지나쳐버렸던 풀꽃들이 왜그렇게도 많은지 미처 몰랐다.
오늘따라 또 왜그렇게도 예쁘게만 보이던지...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계속 보이거나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 날이 오면 너희가 나에게 물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고 불만스러운 것도 많고,
해결된 것보다 해결되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다.
오해하는 것도 많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하도 많고, 맨 정신으로 알아 들을 수 없는 것이 하도 많아서
그냥 정신이 빙빙 돌며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내가 나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긴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나의 것이 아니니까, 그럴만도 하다고 여겨진다.
만일에 내가 나의 진정한 주인이라면
내가 나에 대해 모두 알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어야만 나는 매일 빠져드는 분노와 격정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격정, 욕심, 이기심 등으로 인해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날이 왔을 때,
그분은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켜 주신다.
이 해방의 그날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볼 수 없다.
해방의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그분을 만나더라도 성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희미하게 그분을 볼 수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의 방황은 아마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방황하더라도 그분을 향하면서 방황해야 할 것이다.
그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자.

이세상에서는 그 어떠한 것에서도,
그 어떠한 누구에게서도
나의 믿고 의지할 만한 곳이 없고, 희망할 것이 없다.
그분의 품안에 머물때 가서야
비로소 우리는 참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쁨과 평화는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복음의 묵상마무리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근심을 덜어놓고 다함께 차차차...입니다.
해산할 여인이 신발을 바르게 놓고 죽음을 예비하는 네가브티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자식을 순산하여 첫 미팅을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포지티브 사고방식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렇게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삶의 완전한 모범이신 주님으로부터 다양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겸손해지는 것, 낮아 지는 것, 져주는 것, 모욕을 당하는 것, 결국에는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우리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 걸어가야 할 길, 진리요, 생명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무엇이든 더 잘해야 하며 남보다 앞서야 하고 남을 이겨야한다는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근본 가치관은 남보다 앞서야 하고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하며 남보다 높은 위치에 서야지만 행복해 질 수 있다고 교육을 받아 왔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세상 속 논리에서 눈이 시뻘겋게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행복을 위해서라면 낮아지고 버리라 하는데 우리는 그 행복을 위해 높아지고 더 가져려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가르침을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숙고해 보았다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근심거리와 걸림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배우고 알고 또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식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 우리 마음 안에서 종종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만약 이런 갈등과 근심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진실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거나 혹은 모르고 있다는 표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주님 때문에 고민해 보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주님으로 인해 이미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제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 때문에 고민도 하고 실천도 하고 있으며 또 진통을 겪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제 조금만 참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테니 말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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