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와 함께하는 묵상> : † 하느님의 집 통과코스 : 길->문->집 †
오늘 복음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예고하는 말씀에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뿐만 아니라 수난을 예감하는 주님의 유언 같은 간절한 당부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깊은 불안과 걱정에 잠겼음에 틀림없습니다. 혼란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요한복음 사가는 이처럼 예수님의 자기 정체성, 자기인식을 다른 여러 표현을 빌려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길, 진리, 생명, 나를 통하여..."라는 말씀을으로 성서 전반에 예시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다른 여러 사람들이 보다 깊이 이해하고 믿게 하려는 요한사가의 의도라고 봅니다.
오늘복음의 주제는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다양한 문회적 충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확실한 일들이 연이어 다가오고 있습니다. 명분을 납득되지 않는 전쟁이 자행되는 국제관계나 세대를 거쳐가며 부담을 져야만 하는 조국 분단의 굴레 같은 정치적 상황, 직장 안의 인간관계와 거취 문제, 업무 수행에 따른 결정 방향 등의 사회적 상황 그리고 취직·결혼·건강·장래 진로 등에 관한 개인 상황에 이르기까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길을 알지 못하는 처지에 종종 부딪치게 됩니다. 이러한 불안과 걱정에 싸인 우리에게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고 하시는 말씀은 놀라운 충격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위로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복음에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집에는 우리가 자유롭게 거처할 방이 많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예비해 주신 방이 바다와 같이 무척 넓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사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집(방)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성공과 실패, 선과 악, 행복과 불행의 구별을 뛰어넘어서 어떠한 처지의 인간이라도 모두 받아주시는 집입니다. 다시말하면 넓은 바다와 같은 하느님의 품. 방이 많은 아버지의 집은 스스로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독히 미워하는 나의 원수까지도 머물 방이 있는 넉넉한 자리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1요한 3, 20) 요한 복음사가가 전하는 ‘방이 많은 집’ 소식은 우리의 근심을 덜어주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느님을 믿고 의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매일 하느님을 믿고 의탁한다고 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초대받고, 또 초대받은 집으로 가야 하는 길을 잘 모릅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토마스 사도가 대신 질문해 줍니다. 오늘복음에서 토마스는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질문합니다. 우리 주변에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때에 주님께 가는 네비게이션을 개발하여 판매하면 큰 돈을 벌 것인데..., 주님께서 우리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네비게이션을 주지 않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즉, 주님을 보는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네비게이션 기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집을 가기 위해서 주님이라는 네이게이션을 보고,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전혀 체험하지 못한 처음의 네비게이션을 보고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제데로 잘 가고 있는건지, 잘못가고 있는 건지 불안하고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님에게 우리가 잘가고 있는건지 물어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묵상하는 이유는 토마스의 질문이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 연이어 질문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면 토마스는 '길을 알고 있는데, 그리고 그 길을 지금 따라가고 있는데, 이게 맞는건지 틀린건지 의문에 빠진 것입니다'...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의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간간히 의문과 불안에 빠지는 경험을 했듯이 토마사도 그런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토마스의 신앙은 오늘복음의 길에 대한 확인도 그렇지만, 지난복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확인해야지만 마음이 열리는 '확인의 신앙'입니다. 사람들은 이 '확인 신앙'에 대해 이런저런 찬반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확인 신앙'이란 완전한 확신을 얻기 위한 철저한 신앙관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느체하다가 돌뿌리에 걸러넘어지는 자들보다는 토마스적 확인신앙이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빠른 지름길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온전한, 완전함, 무결점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적당히 대강대강 믿는 척하는 신앙생활 보다는. '아는 것도 돌다리를 두드라고 가라'는 속담과 같이, 하느님의 길도 곧바로 가는 길(첩경)을 가기 위해 돌다리를 두드리면서 가는 훈련과 습관도 필요합니다.
외방선교회 정 신부님의 일화를 하나 소개합니다.
얼마 전에 네비게이션(navigation)이 생겨서 자동차에 장착을 하고 안내를 받으며 어느 성당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미리 목적지를 입력하고 예비 운전을 한 뒤 길을 떠났다.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놀라움과 신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놈 참 똑똑한 길 안내자라는 생각을 하며 흐뭇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의문이 생겼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첫 길이라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거의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미씸쩍은 마음에 그만 안내대로 움직이지 않고 길을 벗어났다. 그러자 곧 기계는 삑삑삑... 비상신호를 보내더니 먹통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내가 자의적으로 생각했던 그 골목은 막다른 길이어서 성당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차를 되돌려 길을 잘못들은 지점에 돌아왔을 때에야 기계도 다시 작동을 시작했다. 기계는 기계라고 치부하면서도 그래 너 안내 받으며 갈게.... 라고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그 놈 참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한번쯤은 경험한 일화입니다. 비록 기계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길을 안내해준다고 하면 믿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고 가다 어느새 불안하고 미씸쩍어 안내길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길을 간다면,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거나, 다시 그길로 돌아오기 위해 몇번을 우회하면서 어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집에 대한 믿음이 약한 사람들, 미씸쩍어 하고, 또 불안해 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한 고별사를 하십니다. "나(주님)를 믿고 또 아버지를 믿어라."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나(주님)을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또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의 집을 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집으로 가기 위해 통해야하는 곳(주님)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면 무엇을 거쳐서(통해서, 따라서) 가야 합니까? 바로 길입니다, 길을 따라가야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으로 가려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따라서 길은 바로 주님이신 것입니다. 또 길을 따라 마지막까지 걸어가면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난복음에서 "나는 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을 '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집으로 들어가게 하는 인도자, 즉 길이요 문인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아버지 하느님께 인도하는 목자이시며, 중개자이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아버지를 위해 겸손하게 당신 자신을 낮추어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하고는 질적으로 다르신 분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집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거처하기 때문에, 길을 통하여 집 앞의 문 까지 양들을 인도하시고 나서, '내 집이다'라고 하지 않고, 이곳이 바로 '내 아버지의 집이다'라고 소개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부장문화 유교문화권에서는 손님에게 집을 소개할 때 그렇게 했습니다.주님은 그렇게 아버지를 공경했습니다. 철저히 율법을 준수한 분이십니다. 모든 고난의 일은 당신이 직접하시고, 모든 영광은 아버지께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겸손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복음은 그동안 주님의 공생활 기간 중에 많은 복음과 기적을 보고도 아직도 믿음이 약한 사람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미씸쩍어 하거나, 불안해 하거나, 또 잘 알지 못하고 믿으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시는 고별적 말씀의 하나입니다. 토마스는 주님께서 주신 네비게이션을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과연 이것이(주님의 말씀) 하느님의 집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안내할 수 있을까? 혹시 잘못되어서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잠시 의심을 가졌을 때 마음이 불안하고, 길을 잃고 헤매었듯이...... 주님에 대한 나의 지식과 믿음도 지금까지 그러했음을 솔직히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나를 추스려봅니다. 나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의 바탕위에 그분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따라가고 있는가?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저는 당신과 함께하는 하루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속이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드러내는 척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당신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스스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바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의지력이 있다고 해도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말이지요. 더 깊이 제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듣습니다. 끝도 없이 모순된 생각과 감정, 의견에 휩싸여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흘려버리고 맙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이려 합니다, 평화를 주시는 당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아멘)................◆
-두올-
[묵상] 하느님의 집 통과코스 : 길->문->집
2007. 5. 5. 오전 9: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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