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007.5.3.목
| 요한 복음 14장 6-1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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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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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불이신 예수님 김동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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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가까이 있는 것이 도리어
알기 어렵다는 뜻으로 늘 함께하는 것의 가치를 다 헤아리지 못함을 말합니다.
등잔은 기름을 담아 등불을 켜는 그릇이기는 하지만 등불을 가리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등불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등잔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가리는 등잔이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그릇된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굳어지는 생각, 이웃을 함부로 얕잡아보는 생각,
잘못된 줄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 생각 등등. 그릇된 생각은 예수님을
가려버리기에 나를 어둡게 하고 공동체를 어지럽게 합니다.
마음 안에 자리한 등잔은 등불로 걷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있는 곳에 언제나 어디나 함께하십니다. 마음에도 계시고 이웃에게도 계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도 계십니다. 늘 함께하시는 등불이신 예수님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면 우리의 등잔인 그릇된 생각은 삽시간에 물러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평범하고 자잘한 일상 안에서 늘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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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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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는 미모의 평준화가 이뤄지고, 50대에는 지성의 평준화가
이뤄지며, 60대에는 물질의, 70대에는 건강의, 80대에는 목숨의
평준화가 이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30대까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불공평하고
사람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처럼 차이가 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산은 낮아지고
계곡은 높아져, 이런 일 저런 일 모두가 비슷비슷해진다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 자의 즐거움이 적게 가진 자의 기쁨에 못 미치고,
많이 아는 자의 만족이 못 배운 자의 감사에 못 미치기도 하여 이렇게 저렇게
나누고 빼고 더하다 보면 마지막 계산은 비슷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서로에게 친절하고 겸손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같이 일을 할 때 상대를 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현재
그의 일하는 모습만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삶 전체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의 현재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일을 잘한다, 못한다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은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서로에게 이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의 부분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입니다.
그 사람의 과거, 미래, 희망, 건강, 재능, 갈등, 아픔, 가족에 대해 전체적으로
알게 되면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한 사람을 판단할 때
부분이 아닌 그의 삶 전체를 보는 것, 우리는 이 중요한 일을 자칫
경솔히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본다는 뜻입니다.
정용철 | <보해가 만드는 세상> 2007년 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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