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
-정현진 신부 -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는데, 사람들이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창조될 그 처음부터 하느님은 이미 계셨고, 이 세상에 빛이 되어 이미 와계셨습니다. 예부터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 세상의 이치와 진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아왔던 이유가 바로 세상에 흐르고 있는 하느님의 빛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상가들, 철학가들이 그 진리를 찾기 위해 그렇게 일생을 바쳤던 이유는 이 세상에 처음부터 주어졌던 그 법칙을 알아내고,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갈 때만이 인간은 진실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합니다. 잘 살던 사람도 자살을 하고 못사는 사람도 자살을 합니다. 잘 사는 강대국 사람들의 행복지수와 매년 기근으로 굶주리며 살아가는 어느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같다고 합니다. 잘 산다고 해서, 돈이 많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 가진 것 없어 못산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불행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살든 못살든 모든 사람이 사는 게 고통스럽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진리를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것은 하느님이 나타나 주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선 이런 우리에게 “나는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린 어떤 잘못을 하면 하느님께 벌을 받으리라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은 하느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빛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선 우리들에게 당신께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지도 또 원하시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과 행동들이 왜 우리가 따라야 할 진리이고 왜 그분이 이 세상에 빛이고 우리에게 행복이 되는지를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깨달은 바를 믿고 이 세상에서 실현하고 살아가기를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신의 말씀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갈 때만이 참으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을 따르기를 바라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교회의 신자 수를 늘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셔야만 사람들이 진리를 깨달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거부, 진리에 대한 거부는 결국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때로는 귀찮고 힘들어서 피하고 싶어지더라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갈 때 나의 삶도, 이 세상의 모습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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