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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하느님의 음성
그렇다면 누군 특별한 은총에 있고, 누군 안 된다는 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람은 하느님 앞에 다 평등하고 그분으로부터 은총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가 있는 대신에 그분에게 드려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그 의무가 바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요, 하느님의 음성을 들어가며 그분과 대화하는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까르도네 강가에서 환시를 보고 나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뭔가 하느님의 음성과 모습을 보고 난 뒤, 완전히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본인 아니면, 부모, 아니면 조상 차원에서 아주 열정과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느님께 올렸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이런 좋은 징표로 하느님의 음성을 접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낙방의 이유가 뭔지 모르는 가운데서도 정성을 다하여 기도 하는 가운데 도전을 했고, 이젠 하느님이 나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시나 보다 싶어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하느님께서는 그 형제에게 꿈이라는 영적연결 고리를 통하여, 이렇게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검은 커다란 글씨의 수도원” 그 형제는 그래 수도원을 찾았고, 아무 걸림돌 없이 단번에 수도원에 들어와 해외유학까지 잘 다녀온 뒤, 지금은 거룩한 사제로 잘 살아가고 있다.
부활은 믿는 이들에게만 현현 되었듯이, 오늘의 삶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장에서 자신을 온전히 다하여 그분께 봉헌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드러나는 은총의 선물이 바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또는 자기들 안에서 상처주고 희망을 저버리게 할지 몰라도, 하느님은 절대로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하느님은 당신을 향해 희망하고 신뢰하면 반드시 고난의 시간을 넘어 그 뜻을 이뤄주시는 분임을 꼭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당신의 제자들을 박해하던 바오로를 당신의 으뜸 제자로 삼으신 것만 봐도 그분의 속이 얼마나 넓고 깊이가 있으며 어떤 것도 다 가능함을 우리는 그분의 마음 안에서 읽을 수 있다. 이것이 보이는 분들은 바로 하느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위기를 인내해 내고 그분께 간절히 간구하면 그분은 아무리 큰 위기도 종식시켜주시면서 그 자리에 커대한 희망이라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런 분이시기에 우리처럼 좁쌀 같은 그런 분이 아니시라 아주 큰 분이신 것이다.
한 마디 더 가미한다면, 걱정과 위기가 없는 사람은 편안함이 있기는 해도, 위기를 맞은 사람처럼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인 그분의 음성을 체험하는 그런 기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각자 받은 그분의 달란트와 그분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은총의 선물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분은 한 사람 예외 없이 당신 곁으로 오시길 기다리는 분이라는 것을 최악의 상태라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주신 생명의 신비의 성소를 잘 살아가는 것이다. |
2007.05.01 /[강론] 하느님의 음성[이인주신부님]
2007. 5. 2. 오전 8: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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