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과 이방인
필립보가 길을 가다가 성령의 인도로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의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필립보가 그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하자
그 사람은 세례를 받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리하여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러 세례를 받고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8,26-40)
이 이야기는 그냥 한 에티오피아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전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도 성경을 읽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그리스도는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이 자신을 빵으로,
먹이로 내놓는 어버이의 희생을 먹고 자란 존재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있게 한
이 희생을 외면한 때문임을 우리는 은연 중 느끼고 있다.
에티오피아 고관은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그 희생이 생명의 근원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의 생명 안에 감추어져 있는 그 희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를 깨닫게 되면서 그는 이 희생을 자기의 존재로 표현하면서 살고자 작심한다.
세례를 받기로 한 것이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희생을 거부하는
자기의 욕심을 물속에 잠겨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물위로 솟아오르며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고관은 이제 그리스도처럼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인이 성체를 영하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자기의 몸을 성체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처럼 “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먹어라.”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온 우주를 향하여 자기의 몸을 내놓기 위해서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분은 “나는 이 빵을 먹으며 영원히 살고 싶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고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요한 6,51) 하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남을 살리기 위하여 당신의 몸을 내 놓는다.
그리스도인은 성체를 영하며 자기만 영원히 살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당신을 성체로 내놓으시는 그분의 마음까지를 자기 마음 안에 받아들인다.
그러기에 성체를 영하는 그리스도인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 몸을 먹이로 내놓는다.
그렇게 그는 자기의 몸을 희생시킴으로써 남 안에 새로 탄생한다.
지금 이 세상이 필요한 것은 자기가 먹는 빵만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라 남을 살리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 이제민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