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박아미수녀님]

2007. 5. 5. 오전 9:39:19

글자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오래전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다. 신학원론 수업에 들어온 교수 신부님이 학생들을 향해 주먹을 내미시며 “여기, 내 손 안에 묵주가 있습니다. 믿습니까?” 하셨다. 뜬금없는 질문에 웃기만 하는 학생,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학생, 장난기 어린 말투로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학생 등 일순 강의실은 술렁거렸지만 학기 초라 서로 서먹해서인지 이내 조용해졌다. 그러자 신부님은 주먹을 펴서 묵주를 보여주시고 다시 움켜쥔 다음 “내 손 안에 묵주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믿습니까?” 하셨다. 그러자 강의실이 떠나갈 듯이 모두 힘차게 “예,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부님은 “아뇨. 여러분은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내 손 안에 묵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야지 믿는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신부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던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 이후로 결심했던 것 같다. ‘믿음은 일종의 도박이다. 그래, 용기를 갖고 온전히 투신해서 믿음의 고지에 다다르도록 하자!’ 그러나 수도 삶이 깊어갈수록 신부님이 일깨워 주신 믿음에 대한 개념에는 변화가 없지만 믿음 앞에 취하는 나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내 의지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것에서 믿음의 대상인 그분께 더 오래 시선이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결심하게 된다. 그분께서 비춰주시는 만큼만 내디디며 믿음의 길을 가자고….
믿음의 길에서 때론 토마스와 필립보같이 우문(愚問)을 던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의 가난함을 솔직하게 드러내면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당신 자신에 대한 커다란 신비를 현답(賢答)으로 선사해 주신다. 토마스와 필립보의 질문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길·진리·생명’이라는 예수님의 자아 계시적 선언을 듣거나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적인 내재를 확고하게 인식할 수 있었겠는가.

-박아미 수녀(성바오로딸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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