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수요일 2007-04-18
복 음
요한 3,16-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강 론
인간이 되신 하느님은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있지만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하늘의 이야기를 합니다. 니코데모에게... 그는 참으로 어렵지만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하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부활시기에는 매번 요한복음을 듣게 됩니다. 듣는 입장에서도 어려운 대목이겠지만 강론을 하는 입장도 어렵기도 니코데모와 매 한가지 입니다.
오늘 대목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우리를 사랑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 하나.
한국 전래 민담 한 토막입니다.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만 고려장이라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먹을 게 없어 젊은 사람도 죽을 판이니, 일도 못하고, 양식만 축 내는 늙은 부모를 산 속에 갖다 버려서 굶어 죽거나, 산짐승 밥이 되도록 하고, 산 사람이나 살아보자는 악한 풍속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늙은 어머니를 고려장하기 위하여, 어머니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 속으로 갔습니다. 지게에서 그 어머니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돌아섰을 때, 날이 어둑어둑 해졌습니다. 아들은 산길이 어두워 돌아 갈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일었습니다. 그 때 늙은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오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길 표를 해 놓았으니, 그 걸 보고 내려가거라!".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이야기 둘.
일본 전래 민담입니다. 한 청년이 사랑하는 여인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치료하는 방법은 산 사람의 생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것입니다. 청년은 그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그 어머니의 생간을 꺼내 들고, 병들어 누워 있는 사랑하는 여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한참 달려가고 있는데 귓가에 자꾸만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청년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어보니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넘어질라, 천천히 가거라". 어머니 마음입니다.
이야기 셋.
그 자식은 아주 못된 놈이었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 못된 놈이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주색잡기, 투전에 푹 찌든 놈이었습니다. 그 날도 새벽녘이 다 되어, 뒤 담을 넘었습니다. 사방이 괴괴합니다. 다만 마당 건너편 사랑채 아버지 방에서 불빛이 새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그 자식은 아버지께 들킬까봐 발끝으로 조심조심 걸어서, 자기 방 미닫이를 살그머니 열고 들어갔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집안사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였습니다. 그 놈은 히죽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 때, 건너 편 사랑채 아버지 방에 불빛이 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놈은 그 제야 알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제 놈이 몸 성히 돌아 올 때까지 매일 밤, 말없이 기다리고 계셨다는 걸. 아버지 마음입니다.
부모 마음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부모들아 자녀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따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십계명에 ‘부모를 공경하여라’는 네 번째 계명이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아니 이 보다 더 합니다. 당신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사랑하신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고 따르면 구원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고 강론하기도 힘들지만 때로는 그 자체로 너무나 귀한 말씀이기에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듣고서 바뀌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에 대한 실천과 스스로의 결단이 없으면 그저 어려운 복음 말씀으로만 남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