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축제 내 금요일 .. 말씀지기 묵상

2007. 4. 14. 오전 8:46:13

글자

04월 13일 금요일
7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사도 4,7-10)
 

7And when they had set them in the midst, they inquired, "By what power or by what name did you do this?" 8Then Peter, filled with the Holy Spirit, said to them, "Rulers of the people and elders, 9if we are being examined today concerning a good deed done to a cripple, by what means this man has been healed, 10be it known to you all, and to all the people of Israel, that by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whom you crucified, whom God raised from the dead, by him this man is standing before you well."(Ac 4:7-10) ▶ ENGLISH BIBLE ◀



It's easy to picture the commotion surrounding this miraculous healing. A man who once could not walk was now leaping and shouting, praising God for his mercy and goodness (Acts 3:9). Witnesses were gaping, astonished and bewildered by it (3:10). The priests and Sadducees were loudly denouncing the impropriety of common men, in the Temple, "proclaiming that in Jesus there i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4:2). And the rulers, elders, and scribes demanded to know where the power came from (4:7).
What are we to make of this story? Simply this: As amazing and dramatic as the healing of a lame man is, such restoration is only a part of something greater. The priests and elders asked Peter and John about the source of their power to heal; Peter and John answered, It wasn't just a good deed ­ that man was saved! That's the awesome reality in this story. The physical healing was wonderful, but something even better took place.

Physical healing is absolutely a cause for rejoicing! Jesus healed people of their illnesses and infirmities all the time, and we should expect God to continue to pour out his healing power in our lives today. God loves us, he cares about us, he never likes seeing his people suffer. But he also wants to open our eyes to the spiritual realm. As Peter told the elders, the really central event was spiritual: The man was saved. Yes, his leg was repaired, but his soul was restored to friendship with God!

Jesus came to do that for us, too. Because of his death and resurrection, it is possible for us to be his friends, to talk to him, and to experience him answering the longings of our hearts. Through the salvation he won for us, we can be freed from the crippling effects of sin. Our eyes can be opened to see him; our ears, to hear him. Our hearts can leap for joy, praising God for his goodness! We are no longer slaves to sin! We are children of God, free to live and act in the kingdom of God. And this is exactly where the fun really begins!


"Jesus, thank you for healing
and saving me. Today,
I want to praise you, and rejoice
in what you have done for me.
May my joy point others to you."


이 기적적인 치유를 둘러싸고 일어난 소동이 어떠했을지 쉽게 상상이 갑니다.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이 걸어 다니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면서, 소리 높여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찬양하였으니까요.(사도 3,9) 목격자들은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고 망연자실했습니다.(사도 3,10) 사제들과 사두가이들은 사도들처럼 평범한 자들이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사도 4,2)을 불쾌히 여겨 이를 큰 소리로 고발했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그 힘이 어디에서 오느냐고 다그쳐 물었습니다.(사도 4,7)
이 이야기에서 얻는 결론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한 불구자가 치유된 것이 놀랍고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육체적 회복은 보다 더 중요한 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제들과 원로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슨 힘으로 그런 치유를 하는지 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했지요. “저 사람은 육체적 치유뿐 아니라, 영적 구원을 받았소!” 이것이 이 이야기에서 경외심을 일으키는 부분입니다. 육체적 치유도 대단하지만, 실은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거지요.
육체적 치유는 기뻐 뛸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의 병과 허약함을 고쳐주셨으며, 오늘날 우리도 하느님께서 당신 치유의 능력을 우리의 삶에 계속 퍼부어 주시리라 기대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시며, 당신 백성이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결코 보고 싶어하지 않으시니까요. 그러나 또한 그분은 영적 세계를 향해 우리의 눈을 열어 주고 싶어하시지요. 베드로가 원로들에게 말하였듯이, 치유 기적의 진정한 핵심은 영적인 것으로서,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다리가 성하게 된 한편으로, 영혼 또한 하느님과의 우정을 회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는 그분의 친구가 되고, 그분과 이야기하고, 우리 마음의 갈망을 채워 주시는 그분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획득하신 구원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눈이 열려 주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귀가 열려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며 우리 마음이 기뻐 뜁니다! 우린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고 행동할 수 있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진짜 흥겨운 일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 저를 치유하고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주님을 찬송하고
제게 베풀어 주신 것들을 기뻐하고자 합니다.
저의 기쁨으로 이웃들에게

주님을 증언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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