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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장산성당 주임신부 박만춘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두 여인에게 당신의 모습을 먼저 나타내 보이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두 여인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신 것은 당연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여인은 예수님을 가장 잘 따랐던 사람들로서, 십자가 수난의 현장에서도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고, 무덤에 안장할 때도 그 자리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랑과 믿음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그 사랑과 믿음의 보답으로 주님의 부활의 기쁨을 제일 먼저 보고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만나시자마자 그들에게 건네신 첫 마디는 “평안하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오늘 복음 앞부분을 보면, 두 여인은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부활을 소식을 듣고, 또 ‘빈 무덤’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확인한 후, 두려움 반 기쁨 반의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주님 부활의 소식을 전하려 달려가던 중이었습니다. 이렇게 황급히 달려가던 두 여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평안하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무엇에 대한 평안함을 물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의 “평안하냐?”라는 인사말을, 마태오 복음서의 원문을 직역하면 ‘기뻐하시오’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건네신 인사는 당신의 부활로 주어지는 기쁨으로 충만한 평안함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영원히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갖고 살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절이 되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기쁨, 그리고 우리 각자도 주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긴 사순절의 여정을 보내고 부활절이 되어 단지 축제일이라는 기쁨만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도 온 몸으로 부활한 기쁨의 부활절이 아니라, 부활절이라서 그냥 기쁨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제서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봄의 기운이 완연할 무렵, 시골에 계신 백부님께 인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 학교 운동장처럼 넓게만 보이던 큰 집 마당에 연로하여 농사를 직접 지을 수 없게 되신 백부님은 소나무며 향나무, 또 꽃을 피우는 철쭉 및 화초들로 화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나무와 향나무는 푸르름을 자랑하고, 철쭉과 화초들은 꽃망울을 머금은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백부님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모습이 남녀평등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남녀평등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답변을 들으신 백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은 너른 마당에 소나무를 심고, 향나무를 심고, 또 철쭉이며 화초들을 심어 가꾸면서 남녀평등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소나무가 철에 맞추어 솔방울을 가지에 매달고, 향나무가 자신의 역할 다하여 향내를 내뿜고, 철쭉이며 화초들이 제철에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처럼, 남자는 남자로서의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여자는 여자로서의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남녀평등이라고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칠순을 넘긴 노인의 생각이라고 흘려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저의 뇌리에는 언제나 남아있는 백부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아들딸은 아들딸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 제 위치에 서지 못하고, 또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가정이 파괴되고, 그래서 사회가 파괴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각자의 모습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 곧 자기 위치와 역할을 찾는 것이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제 위치와 역할을 찾아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주님의 부활을 오늘에 증거 하는 삶이 될 것이며, 거기서 오는 기쁨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2007.04.09 /[강론] 부활을 증거하는 삶이란[박만춘신부님]
2007. 4. 9. 오후 2: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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